# 생명은 똑같은 가치이다
/ 정념 스님
[발문]
남이 나와 똑같은 무게의 생명이라는
질량을 안고 있으며, 똑같은 값어치의 목숨을
지니고 있음을 얼른 깨달아 내가 행복하려면
그런 나와 조금도 다름없는 남을 먼저
행복하게 해주려고 앞장서야만 할 것입니다.
요즘 우리 세상을 살펴보면
이기심의 극단적인 대립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도 손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양보를 하면 어쩐지 자기만 손해를 보고
피해보는 것 같아서 끝까지 자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혼하는 부부들이 서로 아이를 맡지 않으려고
미루다가 고아원에 보낸다고 하는 이른바
이혼고아들이 급증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고,
심지어는 자식들이 여럿 있어도
서로 부모를 모시려고 하지 않아 굶주리고 병든 채
쓸쓸히 마지막을 맞는 노인들도 속출하고 있지않습니까?
예전에는 지도자가 권력을 휘두르면서
국민들에게 양보의 미덕을 강압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손해 보면서도
숨죽이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유를 만끽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려고만 할 뿐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은 영원히 남일 뿐이고,
원수는 영원히 원수로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철저한 중생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별심인 것이지요. 절대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심은
이런 중생심과 완전히 정반대 차원의 경지입니다.
부처님은 무엇보다도 다른 이를
나와 똑같이 소중한 생명체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비둘기의 몸무게만큼 살을 베어내려다
왕은 결국 제 몸을 다 내주어야만 했다는 [대지도론]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그 가치가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중생에게 이런 부처님의 동체대비를
그대로 실천하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차별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남이 나와 똑같이 고통을 싫어하고
즐겁기를 원하는 생명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이 나와 똑같은 무게의 생명이라는 질량을 안고 있으며,
똑같은 값어치의 목숨을 지니고 있음을 얼른 깨달아
내가 행복하려면 그런 나와 조금도 다름없는
남을 먼저 행복하게 해주려고 앞장서야만 할 것입니다.
양보라는 것은 나의 행복을 조금 줄이고
남의 행복을 먼저 챙겨주는 일입니다.
겸손이란 것은 이런 나의 양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드러내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미덕들이 바로 극단적인 이기심이 가득찬
세상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아니겠습니까?
비둘기를 살리고 매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부처님을 흉내 내지는 못하여도
그 마음만큼은 잊지 말고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실천해보려고 노력해봅시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모는 동체대비를
구현하시는 부처님이요,
우리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난 불자(佛子)이기 때문입니다.
- 정념 스님 / 월정사 주지 -
비둘기이야기 - 대지도론
비둘기 한 마리가 매에게 쫓겨 날아다니다
수행자인 시비왕에게 날아들었습니다.
비둘기는 왕의 겨드랑이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매가 가까운 나무 위에 앉아서 시비왕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먹을 비둘기를 돌려주십시오. 그것은 나의 먹이입니다.”
비둘기를 내주면 잡아먹힐 것이 뻔하였으므로
왕은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매가 하소연하였습니다.
“저는 중생 아닙니까? 그런데 왜 굶게 될 저는
가엾게 여기지 않고 비둘기만 구제하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시비왕은 매의 끼니를 위해 비둘기의 무게와
아주 똑같은 양의 자신의 살을 베어서 주기로 하였습니다.
시비왕은 자신의 살을 도려내어 저울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둘기 무게가 더 나갔습니다.
왕은 모자라는 양만큼 계속 자신의 살을 도려내었고
결국은 온몸의 살을 다 도려내어서야 비둘기의 무게와 똑같아졌습니다.
하지만 매는 제석천왕이 시비왕의 마음을
시험해보기 위해 모습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온몸의 살을
다 도려낸 시비왕은 문득 자신의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스스로를 이렇게 책망하였습니다.
“나는 스스로 견고해야 하고 흔들리거나 번민하지 말아야 한다.
온갖 중생들이 큰 고통의 바다에 빠져 있으므로
맹세코 그를 제도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나약해지고 고민하는 것인가? 이 괴로움은 아주 적은 것이며
지옥의 괴로움이야말로 크고 한량없는 것이다.
나는 지혜와 정진과 지계와 선정이 있는데도 오히려 이런 괴로움에 상심하는데
하물며 지혜가 없는 지옥 안의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스스로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자신보다 더 큰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을 지옥중생을 걱정하는
시비왕 앞에서, 매는 본래의 제석천왕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제석천왕은 왕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살을 베어서 몹시 아프실 것입니다.
고통스럽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왕은 말했습니다.
“내 마음은 오직 기쁠 따름입니다. 조금도 괴롭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 마음이 진실하다면 저의 몸이 처음대로 회복될 것입니다.”
왕의 진실한 마음이 통하였는지 몸은 본래대로 회복되었고
하늘에서는 이런 기적을 기뻐하며 장차
시비왕은 부처가 될 것이라 예언하며 크게 찬탄하였습니다.
- [대지도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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