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쩌다 보니 숭악한 배신녀가 되었다.
88차 답사 임박한 날까지 신종플루 거들먹거리며 포크창 들고 '답사무효'를 목청 돋아 질러대놓고선
철저하게 배신을 때린 내밀한 사연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행로 바꿈이었다.
ㅋㅋㅋ 결코 가증스럽고 비열한 의도로 꾸며진 음모극은 아니었다는 걸 믿어 주시기를.
푸르뎅뎅한 공범자가 있었느냐 물으면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보탬을 줬다고 할까?
어쨌거나 배신녀는 웸메걸스 이후 2009년 모놀답사 처음이니 발목에 짤랑거리는 금방울이라도 달고 싶을 만큼 좋았다는.....
느티나무가 도처에 숲을 이루고 있어 '느티나무산'의 의미를 지닌 수수한 다갈색의 고장 괴산.
비놀이 뜨니까 어련하겠냐고 우산을 챙기라 했는데 부챗살처럼 노랗게 퍼져 까무라치는 가을 햇살.
첫 걸음인데도 첩첩한 산주름의 고즈넉한 괴산의 품이 푸근해서 순순히 안겨버렸다.
보통 괴산을 '확 튀지 않고 밋밋해 보이지만 질기고 두터운 고집과 꼬장꼬장한 느낌을 간직한 고장'이라 하는데,
우리 현대사에 맞물려 파란이 굽이치는 생애를 보낸 '임꺽정'의 벽초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 그런 인상이 짙은 듯하다.
비좁고 차디찬 내 머릿속엔 '괴산'하면 단원 김홍도 유적지와 홍명희 선생, 그리고 울 대장 님 고향이라는 게 전부.
모놀이 첫 의식을 치른 산막이 옛길,
발걸음 닿아 길이 되더니 길이 도리어 발걸음을 부르는 길.
누구든 한 번 이 길을 걸으면 단번에 몰입하게 될 길.
시간이 곰삭은 듯 수면은 미동도 없고 나무잎들조차 잠든 듯 평온하고 잠잠하다.
청정한 숲길을 걷는 동안 간간이 아가 고추에서 졸금거리는 듯한 산비알 바위틈 물소리가 귀를 우려내고
그 외에 소리를 동반한 무늬라면 오독오독 대추알 깨무는 듯 담소를 나누며 걷는 주황빛 모놀꽃들뿐.
그래, 이런 풍경과 연애질이 그리워 오랏줄에 묶인 나의 일상을 끊어내고 배신녀라 해도 좋아 하며 달려간 것이지.
단아하다는 표현이 꼭 맞을 듯이 나무들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원림을 이루고 있다.
비단빛 호수 물결은 '지금 이대로 교감' 쉼 쉬는 천혜의 비경으로 속 가슴께까지 헤집고 들어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련한 울림으로 문득문득 나를 멈짓하게 만들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엔 이 곳은 어떤 고요로 일렁일까.
복숭아빛 엷은 물안개 피어 오르면 이 곳은 어떤 빛깔로 떨까.
괴산 군민 가마솥,
군민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은 훈훈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크고 단단하고 무거운 것을 보면 주눅이 든다.
"와 크다!" 하며 넋놓고 있는데, 솥뚜껑 열리는 쇳소리에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열린 것이 아니고 기계의 힘으로 꺼먼 입이 쩍 들리는 거대한 힘에 그간 가마솥에 갈무리했던 추억에 흠집을 입혔다고 할까?
달랑 옥수수 한솥 쪄서 나눠 먹고 가마솥이 전시용으로 있는 것이 왠지 비효율적이고 아깝다는 생각이.....
폐휴지나 고철 조각 팔아 생계를 잇는 등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거대한 가마솥을 보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모놀 100회 때 이 가마솥에 찹쌀 몇 가마 쪄서 1만 5천여 명이 인절미 만들어 잔치하면 제격일 것 같은데,,,,말랑쫄깃.
김시민 장군 사당 '충민사' 뜰에서 땡땡이 치기 -레오언니 사진 보쌈해 옴-
모놀답사를 떠나면 언제나 대장 님은 넉넉하게 나온 배만큼 푸짐하게 보여주고 빡세게 공부시킨다.
공부, 먹고 살기 위해서 마지못해 하는 것에 진저리 난 나는 밖에서는 100% 날라리를 소망한다.
ㅋㅋㅋ 집에 와서 답사자료집 읽어보니 @%#^#^#%&#&#^ 그만하면 충민사에 대해 엔간히 알겠더구만!
홍범식 고택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나 조선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경술국치를 당한 1910년 8월 29일, 군수로 재직 중이던 벽초 선생 아버님 홍범식은 뒤뜰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 자결하였다.
열 통의 유서 중 위의 유언내용은 큰 아들 벽초 홍명희 선생께 남겼다는 것.
천성이 인애로워 부드러웠지만, 불의를 보면 불끈할 정도로 의(義)를 사모하는 의절을 갖추셨던 벽초 선생의 아버지,
아버님이 순국하시던 그 해가 벽초 선생이 스물 셋이었는데, 그 슬픔 삭인 눈물이 수천 바가지는 됐을 게다.
해산 후 탈이 난 어머니를 세 살 때 잃고 나라의 불운으로 아버지까지 잃었으니......
흘러, 흘러간 그 아픔이 우리가 보듬어야 할 역사였노라 보여주는 듯 강물 흐르듯 하염없이 흐르는 구름이 처연했다.
제월대 주차장 한 켠에 세워진 벽초 선생의 문학비,
바닥엔 문인들의 이름이 박힌 통일 노룻돌이 타일처럼 촘촘이 깔려 있다.
민족지도자로서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 한복판을 가로지른 민족문학의 최고봉 벽초 홍명희 선생!
나 역시 존경하는 마음이 커서 '임꺽정'의 걸쭉한 어휘노트를 따로 만들 정도다.
점잖고 의로운 이야기는 대장 님을 비롯하여 울 모놀 문장가들이 짱짱하게 써줬으니 번복하는 건 시간도둑 되는 것.
그렇다고 걍 패쑤~ 할 내가 아니다.
저속하고 짓궂은 모놀인으로 낙인이 됐으니 그 전공을 살려 벽초 선생에 대해 몇 줄 써야 내 겨드랑이가 잠잠하다.
타임머신이 있으면 냉큼 올라타고 둘러 볼 곳이 벽초 선생이 첫밤을 치른 창호지문 밖이다.
그 시대 양반 자제들이 조혼을 하는 것이 단골 풍습였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13살,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나이다.
벽초 선생은 13세에 3살 연상인 명성왕후 민씨의 일족인 민순영과 결혼을 했다.
나는 몹시 궁금한 것이다, 13세 나이로 첫날 밤을 어찌 보내셨는지.....
세대가 껑충 차이나 손가락 침 듬뿍 발라 창호지 문 뚫고 신방을 못 본 것이 오랑우탄처럼 가슴을 칠 일이다.
설익은 나이에, 그때는 야동도 없어 학습해 놓은 것도 없었을테니 연상의 색시와 실뜨기하며 보냈나 싶었는데,
웬걸! 훗날에 국어학자로 이름을 날리는 아들 홍기문을 16세에 얻었다는 그 능력에 나는 정말 조사들어 가고 싶다.
조기 작업 획득으로 나중엔 고작 15살밖에 차이 안 나는 아들과 맞담배를 피우며 토론한 파격적인 벽초 선생.
굴곡이 많은 시대를 타고나서 고뇌할 일이 많아서였을까?
벽초 선생은 선비의 향기가 폴폴 풍겼다지만 엄연히 따지면 요즘말로 불량한 끽연가.
신교육을 배우기 위해 3년제 종교의숙(오늘날로는 분명 초등학교 과정인데)에 다니실 때
할아버지께서 학교 갈 때마다 2전 5리 백동을 한 닢씩 주시면 몰래 족족 담배를 사서 피우셨다니 헐~
대부분 어릴 적부터 신동이면 신체는 좀 허약하기 마련인데,
어쩌자고 벽초 선생은 머리, 정신, 신체까지 완벽하고 조숙하게 갖추셨는지.....
부인 민순영은 총명하긴 했으나 별로 미인도 아니고 다정다감하기는커녕 쌀쌀맞은 성격였다는데
역정의 시대를 겪어내고 북한에 머물기까지 벽초 선생은 내놓고 애정표현을 짙게 하셨다고,,(질투하는 건 아님)
그 시대엔 쌍둥이 낳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았는데,
한꺼번에 하나 낳기엔 힘이 남아 넘쳤는지 딸 둘을 한꺼번에 얻는 기록도 세웠으니 만세! 만세! 대단하다.
고산정에 올라 마을을 에돌아 흐르는 괴강을 보며 식민지 시기의 고단함을 문지르셨을
벽초 선생의 한숨소리가 바람결에 들릴까 싶어 집중, 집중했는데 모놀인들 웃음소리에 동조하느라 그만 놓쳤다는,,,,
원풍리 마애불좌상
아찔한 암벽에 감실을 파고 그 안이 꽉 차게 나란히 새겨넣은 두 불상.
한쪽 불상은 누가 다 코를 파먹어버리고, 불상 군데군데 뚫린 총탄자국은 한국전쟁 때 생긴 상처라니 에구.....
암벽에 벌집이 톡 도드라진 걸 모르고 '불상에 사마귀가 났네'라고 했더니 어이없다는 듯 나한테 눈 흘긴 님은 누군교?
-수옥폭포- -이인문의 <수옥정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 때 피신했다는 수옥정과 마주 보고 있는 수옥폭포.
수직으로 호방하게 쏟아지는 폭포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익히 많이 봐온 자태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본 거냐고? 아이구, 차돌같은 머리 또 굳어버렸구나.' 콩콩 쥐어박으며 답사 다녀와서도
간간이 물음표 던지다가 체념했는데, 오늘 아침에 변기 앉아 쉬하는 중에 "아하!" 생각났다.
'강산무진도' 산수화로 유명한 이인문의 그림!
허리춤을 올리는 둥 만 둥 책장으로 달려가 책을 꺼내 넘겨보니 이인문의 <수옥정도>'맞다 게보린!'이었다.
울 모놀인들은 진작 알고 있었는데 비움이만 모르게 쉬쉬했다면 배신자들!
2009년 첫 답사를 9월에 다녀오고 더 늦기 전에 잠깐 짬을 내어 몇 자 적으려니
맞은쪽 책상에 앉은 분이 눈웃음치며 나를 아까부터 부른다. 할 일도 많고 찾는 일도 잦고,,,,,
영그느라 벼 포기 몸 튀트는 가을에 모놀인들과 함께 한 괴산,
하루 다녀오는 걸로 매정하게 발길 끊기엔 넌지시 잡아끄는 포근한 고장
삶이 사소한 것처럼 느껴질 때 바스러진 감정의 편린들을 모으러 한 번 더 걸음할까나?
배신녀의 처지였지만 괴산에서 검박하고 소탈한 '잘 익은 마음 한 자락'을 보듬고 돌아왔다.
푸지게 먹여주고 입혀주고 이야기 빚고 보고 느끼고 놀게 해준 대장 님을 비롯하여 울 모놀분들 감사, 감사요!
|
|
달민 님, 첫 답사라 가슴에 꼭꼭 쟁여놓은 그 재주 끄집어내지 않았다는 걸 알아요. 다음 답사 때는 울 모놀인들 뻑, 가게 해주실 거죠? 초콜릿의 그 달치근함이 아직 제 혀끝에 남은 듯해요.
무슨 짓을 한고야~~눈을 땔 수 가 없잖아~~재주가 메주인 날 낳아주신 부모님이 잠깐 원망스럽따!!!!
무슨 짓?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저야말로 언니네 아버님께 묻고 싶어요. 대체 어떻게 하셨기에 곱고 재주 짱짱한 7공주를 탄생시키셨는지...... 아무리 졸라도 하도 은밀해서 말씀 안 해 주시겠지요?
답사사진이 풍경화 같아서 몽땅 퍼갈껀데 괜찮으실까요? ^^a 직접 그려도 큰작품 나올것같은데 함 그려보세요.. 언니랑 유화물감냄새도 잘 어울릴듯해요..^^*
라팔 까꿍^^ 땡땡이치는 인물사진만 냅두고 시답지 않은 사진 몽땅 퍼가도 상관없기에 자물쇠 오늘만 풀어놓을게요. 저는 그림은 좋아하지만 그릴 수 있는 소질은 없고, 다만 학교 때 수업 안 듣고 책상 밑에 연습장 펴놓고 잘 생긴 남자 선생님이라면 콧구멍 벌렁거리는 것까지 리얼하게 스케치하다가 앞으로 불려나가도 "이것이 정녕 네가 그렸단 말이냐?" 감탄하게 만들었지요. ㅎㅎㅎ
비움님^^
감하고 갑니다..환한 미소가 매력적이고..부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