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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한건의 무거운 입에서 떨어진 말은 차범근과 포마스키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재직하는 것을 그만두고, 맨체스터에 비하면 연봉도 쥐꼬리만한 국가대표팀에서 근무하고 싶다니. 둘은 어이가 없었다. 서로 쳐다보며 멍한 눈길들만 주고받을 뿐이다. 차범근은 당황한 나머지 차만 홀짝홀짝 들이켰고, 포마스키는 한건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건도 물러섬 없이 포마스키의 눈을 당당하게 바라봤다.
“맨체스터의 스카우터께서…….흠,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군요.”
몇 분간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겨우 포마스키가 먼저 운을 뗀다.
“한국은 상대팀 정보입수에 대해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압니다. 상대팀 정보는 축협에서 지원해 주는 거니까요.”
한건은 당당히 의외의 발언을 했다. 축협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에 정보입수에 대해서는 취약점을 가진다. 차범근은 이자가 어떻게 축협의 일까지 아는 것인가, 의아했다.
“그게, 무슨 말씀……?”
“감독님, 전 한국 축협이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독님께 정보를 갖다 드리는 그런 일을 맡고 싶습니다.”
“으…….으음. 흠. 맨체스터의 스카우터라 하셨으니 능력을 의심할 순 없겠고. 도대체 우리 대표팀에 오시려는 이유가 뭐죠?”
포마스키가 얼른 물었다. 그도 이자의 정체가 궁금하긴 궁금했나 보다. 차범근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한건이 그의 비밀을 다 말해주었으면 했다.
“오늘 자 신문을 읽으셨겠죠? 대영 제국 축구 합방. 그 로버트라는 친구가 제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놈도 같이 스카우트를 하려고 아랍에미리트전을 보고 있었죠. 그러더니 그놈이 전반전이 끝나고 나서 이상해졌습니다. 갑자기 얼렁뚱땅 영국 대표팀으로 가겠다는 거였죠. 전 무슨 미친 소리냐고 몰아붙였습니다. 우리가 아스날과 맨체스터에 들어가기 위해 코치 연수, 스카우터 연수를 받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 안 나냐고 말입니다. 그 녀석은 기억난다 하면서도 영국 대표팀으로 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왜 로버트가 갑자기 자신의 모국인 영국을 위해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경기 내내 그는 경기를 보는 게 아니라…….”
“아니라?”
“우리 붉은 악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의 ‘훌리건’과는 격이 다른 우리 응원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던 거죠. 나라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느꼈던 겁니다.”
“그래서요?”
“저는 2년 전 월드컵 당시 이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영국에 있었죠. 그래서 그 열기를 직접 경험해본 적은 아랍에미리트전이 처음이었습니다. 영상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그 감동을 느낄 뿐이었죠. 그런데 직접 겪어 본 그 뭐라 할까……. 느낌이라 하겠습니다. 그 느낌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본 우리 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경기장에서 그들과 직접 호흡하며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는 말씀입니다. 저로 하여금 마음속에서 저절로 애국심이 솟아오르게 하는 아드레날린이었습니다. 그 아드레날린이 다시금 제게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요.”
한건은 긴 말을 마치고 일단 깊게 숨을 내쉬었다. 말하면서도 붉은 물결이 눈앞에 아른거림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차범근과 포마스키의 반응이다. 한건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음……. 괜찮으시겠습니까?”
한건은 재차 독촉했다. 그도 급했다. 빨리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다. 마침내 차범근은 결심한 듯이 고개를 들었다. 포마스키는 차범근만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그의 방침은 언제나 ‘결정은 감독이 내리는 것’이니까.
“좋습니다. 박한건 대한민국 리틀 월드컵 대표팀 스카우터.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건은 한국팀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데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월드컵에서의 감동적인 순간들, 언론을 통해, 비록 TV로 본 것이지마는 잊을 수 없던 순간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생된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붉은 악마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단결력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되었다. 한건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미래의 영상을 상상하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한건이 스카우터로 정식 취임한 그날 밤, 차범근은 코칭 스탭 회의를 소집했다. 또한 이번 회의에는 와일드카드로 뽑힌 설기현과 이영표, 송종국이 동반 참석했다.
“자, 선수들에겐 처음이겠군. 종국이, 영표, 기현이 인사해라. 오늘부터 스카우터로 일하시게 된 박한건 스카우터다.”
“안녕하십니까!”
차범근은 회의에 앞서 한건부터 소개했다. 다행히도 송종국, 이영표, 설기현은 차범근이 느꼈던 푸근한 첫인상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그들도 별 거부감은 없으리라. 차범근은 생각한다.
“자, 회의 안건으로 넘어가 보죠. 첫 주제는, 평가전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놀랍게도 나흘 뒤 미국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와 3연속 평가전을 갖습니다. 모두 이번 리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팀이며, 상당한 강호들입니다.”
차범근은 여기까지 말한 뒤 모여 있는 사람들을 휙 둘러본다. 선수들은 자신감에 찬 표정이고, 코칭 스탭들은 당장 컨디션부터 조절시켜야 하니 낭패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자, 우리는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여러 전술을 시험해 봤습니다. 4백도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주었고, 3백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난, 3백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3백에서는 한 골도 내주지 않았는데, 4백에선 한 골을 내줬기 때문이죠. 하하하하.”
차범근은 농담을 해 가며 회의의 분위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이끌어나가려 애쓴다. 한건이 처음 느낀 차범근의 인상 그대로였다. 외유내강. 요 네 글자가 차범근의 감독 스타일에 딱 어울렸다.
“자, 지금 나온 프레젠테이션은 미국의 예상 베스트 11입니다. 저쪽 감독이 알려 온 로스터에서 지난 월드컵을 비롯하여 요즈음의 미국 선수들의 실력과 활약 내역을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4-4-2 시스템을 사용하며, 투톱의 랜던 도노반과 에디 존슨은 위협적입니다. 에디 존슨 대신 프레디 아두도 기용이 가능하며, 아두는 이번 대표팀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디 존슨은 프레디 아두와 같이 청소년대표팀을 이끌던 주 공격수로,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발재간이 좋습니다. 그 외의 미국에 대해 자세한 건 포마스키 코치가 말할 겁니다.”
차범근은 여기까지 설명하더니 미국에 대한 설명을 수석코치 포마스키에게 넘겼다.
“미국은 스피드와 기동력을 중시한 축구를 구사합니다. 좌측에 다마커스 비즐리와, 우측의 조시 울프가 양 날개를 맡아 수비진을 뒤흔드는 사이에 생기는 빈틈으로 찔러 줘서 빈 공간에서 골을 성공시키는 패턴이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한국팀도 저번 2002 월드컵에서 랜던 도노반이 좌측에서 드리블 돌파로 공간을 만들고 오브라이언이 빈 공간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연결되어 골을 내줬습니다. 이렇듯 미국은 빈 공간을 만드는 공격을 합니다. 그렇다고 제공권이 약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에디 존슨이라는 190대의 장신 스트라이커가 있기 때문이죠.”
포마스키는 미국의 공격에 대해 자세히 말한 뒤 여러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미국의 공격 루트를 철저히 설명했다. 송종국과 이영표는 포마스키의 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도노반과 비즐리, 울프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미국의 와일드카드는 백전노장 미드필더 클라우디오 레이나, 장신 수비수 에디 포프, 미국의 핵 어니 스튜어트가 뽑혔습니다.”
포마스키는 와일드카드 선수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미국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모두 마쳤다. 차범근은 수고했다고 말하며 다시 일어나 선수 대표로 참가한 이영표와 송종국, 설기현에게 미리 작성해 둔 프린트를 나눠주었다. 거기엔 수비, 미드필더, 공격을 맡은 선수들이 참고할 사항과 차범근이 의도하는 움직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너희는 대표팀에서 맏형이다. 너희들이 선수들을 포지션별로 소집하고, 지금 강의 들은 것과 거기 쓰여 있는 프린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선수들에게 움직임을 지시해라. 미국전은 요즘 들어 극대화되고 있는 반미감정으로 인해서 경기가 과열될지도 모른다. 흥분하는 선수 없게 잘 다독이고. 기타 질문 있나?”
“글쎄요…….없습니다.”
“저도.”
“저도 없습니다.”
차범근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재차 말한다.
“좋아, 그럼 기본 포메이션은 3-4-3으로 두고 자, 돌아가서 남은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감사합니다!”
이영표와 송종국, 설기현은 프린트를 들고 일어서 숙소로 향했다. 차범근과 코치들도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회의를 끝마치고 각자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제 그들도 한 마리의 맹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승리에 대한 집착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 안녕하십니까, MBC의 최창섭입니다. 제 옆에는 박문성 베스트 일레븐 기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박문성 해설위원? ]
[ 네, 안녕하세요. ]
[ 오늘 우리 한국팀과 미국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
[ 글쎄요, 한국팀은 일단 저번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엄청나게 급상승한 전력을 선보였거든요? 글쎄요, 미국 팀도 분명 피파 랭킹 공동 10위에 이르는 강호긴 합니다만. 일단 두 팀이 상당히 비슷한 전력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는 것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
[ 두 팀이 막상막하라 이 말이시군요? ]
[ 그렇죠. 오늘 경기가 그래서 더 기대되는 경기이기도 합니다. ]
[ 자, 선수들 입장하는군요. 곧 있으면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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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종일 바빠서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첫댓글 잼있네여.... 한건의 국대 스카우터라.......ㅎㅎ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한건을 주시점으로 놓고 스토리를 진행해 볼 ㅇㅖ정입니다^^
그럼, 한건과 로버트의 대결구도가 더욱 심화되는 건가? 한국과 대영제국의 대결도 볼만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