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손창섭의 '잉여인간'에서 보는 이 시대의 잉여인간
민병식
잉여인간이라는 말은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의 단편소설 ‘잉여인간의 일기’가 1840년대에 출간되면서 널리 유행하던 말인데 잉여인간이란 쓸데없이 남아도는 인간이란 뜻이다.
이 작품은 한국 전쟁 이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고발하는 형태로 전개가 된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한국 전쟁의 후유증을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인물들이다. 작품은 1958년에 발표 되었고 6.25 전쟁의 후유증과 전후 급변하는 사회구조로 인해 적응하는데 어려움에 처한 소시민의 유형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 손창섭(1922-2010)은 전후(戰後)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1973년 일본인 아내 우에노 지즈코와 딸 도숙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뒤 국내 문단과 소식을 끊고 있었던 재일(在日) 은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단편 ‘신의 희작(1961)’에서 “껄렁껄렁한 시나 소설이나 평론 줄을 끄적거린다고 해서 그게 뭐 대단한 것처럼 우쭐대는 선민의식. 말하자면 문화적인 것 일체와 문화인이라는 유별난 족속 전부가 싫은 것이다.”라며 이 땅의 시인과 소설가들의 선민의식을 냉소했다.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집필생활을 시작하여 1952~1953년에 순수 문예지 ‘문예’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됨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주인공 서만기는 치과의사다. ‘만기 치과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와 간호원 홍인숙 이외에 날마다 출근하다시피하는 두 사람이 있는 데 바로 서만기의 중학교 동창인 채익준과 천봉우, 이 두 사람이다. 채익준과 천봉우는 매일 같이 서만기의 병원을 찾아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운다. 채익준은 병원에서 구독하는 신문을 광고까지 모두 읽는 사람이다. 그는 단순히 신문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툭하면 비판하고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격분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격분에 함께 흥분하지 않으며 서운해 하는 인물이다. 채익준은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분노하지만 해결할 능력도 없고 타협점도 찾지 못한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대안은 없다. 아내가 새벽에 생선을 받아다 파는 벌이로 생계를 꾸리는 집안의 가장 역할도 못하는 남자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어려움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한편, 키만 멀쩡하게 큰 천봉우는 신문도 건성으로 읽고 그냥 앉아 있다가 간호원인 인숙만 흘끔거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것도 지겨우면 낮잠을 잔다. 허리와 목을 꼿꼿이 펴고, 깍지 낀 두손을 무릅 위에 얹고 얌전히 자는 스타일이다. 그는 자신이 6.25를 겪고부터 수면부족이라고 하는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잠이 든다. 그러면서 버스 안에서 잠이 들어도 내려야할 정류장을 놓친 적이 없다면서 자면서도 소리를 다 듣는다고 말한다. 전쟁 때 피난 갈 기회를 놓친 그는 숨어서 지냈는데 언제 빨갱이의 공습에 대한 걱정으로 언제 한 번 마음 편히 잔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다.
봉우는 어떤 일에서건 관심과 열정이 없다. 전쟁 통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세상에 대해 흥미를 잃어 버렸다. 그러니 아내에게도 남편다운 관심과 구실을 다 하지 못한다. 그의 아내는 사업과 친정을 핑계로 한 달에 절반은 집을 비우며 불미스러운 소문을 달고 산다. 봉우의 아내는 주위의 평판이 좋지 않은 부도덕한 여자다. 8개월 만에 첫 아이가 봉우의 아이가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둘 째 아이도 마찬가지다. 둘의 결혼이 유지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것은 봉우의 무관심과 무기력 덕분일 것이다. 봉우는 익준에 비해서도 더 수동적이며 무기력하다. 삶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상실한 채 전쟁이 남긴 잉여인간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간호원인 인숙을 볼 때면 묘하게도 눈이 떠져 있다. 인숙이 퇴근을 하면 졸졸 따라가고 인숙이 전차를 타면 따라서 타고, 그녀가 가는 골목길 까지 따라가고,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어떤 말도 못하고, 짝사랑만 할 뿐이다.
주인공 서만기는 온화하며 교양있는 인물이다. 세 인물 중 가장 정상적이지만 그에게도 삶은 고달프다. 병원이 세들어있는 건물의 건물주인 천봉우의 아내가 노골적으로 유혹을 한다. 봉우 아내의 만나자는 유혹을 거절하지만 병원을 나가달라는 협박에 못이겨 밖에서 몇 번을 따로 만나는데 끝내 만기는 봉우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다. 만기는 식솔이 10명에 동생 들의 학비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아무리 일주일 안에 병원을 비워달라고 하고 인숙의 3개월 급여도 밀려있는 판에 만기는 어쩔 줄 몰라 하나 인숙이 50만환을 주면서 병원 개업을 하라고 한다. 잉여인간 탈피를 위한 희망의 복선이다. 만기는 벅찬 현실을 이겨내기가 버겁지만 욕정과 욕망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인물이다. 쓸모없는 두 친구도 포용하는 인간적인 따뜻함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만기가 익준과 봉우 두 친구와는 극명히 대비되는 점이다. 또한 도움을 주는 인숙을 통해 병원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도 따뜻한 삶과 믿음이라는 휴머니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잉여인간, 소설에서는 그들의 인생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라 그렇게 선택되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왜곡된 구조가 가져온 선택하지 않은 비정상의 삶이 우리 주변에 있을 것인데 그들이 잉여인간인가.
자본으로부터 소외되어 선택되어진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누군가와 함께 같이 살아가자는 공동체 의식 발현이 있어야할 것인데 그 사랑의 마음을 아끼고 사는 사람이 잉여인간일 것이다. 자신만을 위해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마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 바른 마음을 갖고 있으며 엄청난 지적, 정서적 양식을 갖고 있는 듯 행세하나 표리부동한 사람, 더불어 나도 타인이 볼 때는 잉여인간일지 모른다.
사진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