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FC의 창단과 함께 K리그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하다. K리그 챌린지에 이제 막 뛰어든 팀이지만 K리그 전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가대표 출신인 김영광, 조원희, 김재성 등을 영입하면서 웬만한 K리그 클래식 구단 뺨치는 스쿼드를 구성하면서 K리그 팬들은 물론 언론에게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랜드FC의 등장은 새로운 구단의 참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랜드FC가 펼치는 팬을 위한 마케팅이 우리 K리그, 특히 시민구단들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 조원희 등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영입한 이랜드FC. 하지만 팀의 '모토'와 마케팅 방식이 더욱 돋보인다.)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이 정치를 자신과는 먼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정치의 기본 목적이 '민의의 반영'임을 망각한 듯, 그저 '권력'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시민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서민 계층과 괴리된 이른바 탈(脫)정치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유권자의 대다수를 이루는 소시민들은 진정한 자신들의 대표를 갖지 못하고 '엘리트' 정치인을 자신의 대표로 내세운다. 정치인들은 그렇게 결국 정치권력을 손에 넣으면 평범한 이들을 대표하기 보다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가장 큰 관심을 쏟을 뿐이다. 시민들이 정치 참여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정치인들이 시민들을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의 '시민'을 팬으로 두고, 성적을 '권력'으로 치환한다면 현재 K리그의 위기 역시 현재 한국 정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성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K리그에서 축구팬을 제대로 대변하는 구단들을 찾기 어렵다. 시민과 괴리된 정치인들처럼, '팬'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구단은 제대로 된 애정과 관심을 이끌어낼 수 없다. 팬을 도외시한 구단의 운영은 K리그 그리고 각 구단의 존재 이유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정치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시민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한 과정인 것처럼, K리그와 각 구단들 역시 팬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K리그와 각 구단의 존속을 위해 '팬'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업구단이라면 기업의 홍보라는 목적을 위해 많은 팬들을 유치해야 한다. 시민구단이라면 지역민들을 대표한다는 창단의 목표에 어울리도록 많은 팬들을 유치해야 한다. 그리고 구단의 운영에 있어 자립하기 위해서도 팬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성적'에 뒤따라오는 K리그, FA컵, ACL챔피언스리그 등의 상금으로는 팀의 운영이 불가능하다. 많은 팬들이 선사할 1차적인 입장 수익은 물론이고, 대회 상금, 중계권료도 K리그 자체의 팬이 많아지면 규모가 커지게 될 것이다. 리그와 구단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팬들의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팬이 따르지 않는 프로스포츠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이랜드FC의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는 그 핵심에 바로 '팬'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팬들을 위해 SNS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동시에 팀에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전지훈련에 팬들을 초청하고 팬들이 특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팬'을 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비록 이랜드FC가 이랜드라는 든든한 기업 구단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마틴 레니 감독을 필두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성적의 측면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사실이라곤 해도, '팬'을 위한 마케팅이 K리그 구단들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랜드FC의 마케팅은 '축구팬'이라고 지칭되는 두루뭉술한 집단을 목표로 삼지 않고 확실한 타겟을 두고 있다. 잠실의 올림픽경기장을 연고로 삼지만 그들은 분명히 '강남'의 서울 시민 전체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들이 분명히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경기장을 직접 찾을 수 있는 축구 팬이고, 실제 경기장을 찾을 수 있는 팬들을 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서쪽 스탠드만 관중석으로 개방하면서 경기장 규모를 가변석 5천석 정도 수준으로 줄인 것을 보면, 그들이 처음부터 목표를 크게 잡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K리그에서 높은 평균 관중 수를 기록하고 있는 구단은 탄탄한 투자를 기반으로 한 기업구단들이다. 전북, 수원, 서울, 포항 등 기업구단들은 ‘성적’으로 지역 내 축구 팬들에게 어필하고 즐거움을 주고 있다. 리그 내 스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고, 이기는 경기를 자주 펼치니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실 기업 구단의 경우 기업의 이미지가 걸려 있기에, 성적이 중요시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시민 구단의 경우는 분명히 다르다. 현실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시민구단들이 성적으로 팬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팀이 지역민, 지역 축구팬들을 위해 창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목적이 애초에 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레 생겨난 팀들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팀 창단 과정에 깊이 관여한 것도 아니고, 창단되고 몇 년 되지 않았으니 지역을 대표한다는 느낌도 없다. 구단의 차원에서도 지역에 기여하겠다는 모호한 목표만 되뇌었을 뿐이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축구를 좋아하는 시민들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지역 내 축구팬들과 연관이 전무한 시민 구단들에게, 축구팬들은 기대와 애정을 느끼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느끼는 괴리감과 비슷하다. 결국 시민구단은 단순한 우리 지역 연고의 팀이 아니라 ‘우리 팀’이 되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랜드FC가 다른 K리그 구단들 특히 시민구단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선 시민 전체를 대표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노동당이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탄생한 정당이듯, 우선 K리그의 시민구단은 프로축구단답게 지역 내의 축구팬을 대표해야 한다. 시민 구단의 존재가 큰 차원에선 시민의 복지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복지'나 '혜택'이라는 것이 꼭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해야할 필요는 없다. 도서관을 설립하면서 지역 내 모든 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볼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이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민 구단 역시 모든 시민들을 대표할 필요는 없다.
시민구단에게 중요한 것은 경기장을 찾을 수 있는 '축구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이다. 나의 고향 부천이나, 현재 생활하고 있는 대구나 정말 많은 생활축구인들이 있다. 열정적인 '조기축구' 인구가 충분히 있음에도, K리그 그리고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구단인 부천FC나 대구FC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드문 편이다. 주말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축구를 하러 나서는 조기축구인들이 축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K리그를 찾지 않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지역의 '조기축구'인들은 원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기에 팀에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의 노력만 기울이면 될 것이다. 비시즌 기간 동안 선수들이 지역 내 동호회와 연습 경기를 몇 경기 치르는 것만으로도 관심은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주말을 이용하여 동호회에서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선수들과 직접 스킨십하고 뛰어난 실력을 눈앞에서 바라보면 팀과의 유대감은 자연스레 생길 것이다. 물론 성적이 중요한 프로의 세계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팬들이다. 특히, 생활체육으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축구를 잘 알고 관심이 높기에 경기장을 찾아서도 제대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민구단은 무엇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을 대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회성으로 경기장을 찾을 이들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경기장을 찾을 수 있는 충성도 높은 팬들을 확보하는 것이 시민구단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생존전략이다.

(△ 이번 시즌 승격을 이룬 광주FC의 남기일 감독. 승격을 이뤘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 고전이 예상되는 만큼 '성적'을 기반으로 팬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출처:광주FC 홈페이지)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추천 받은 ‘자급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내가 농사를 시작했을 무렵, 우리집 논의 넓이는 한 구획에 1아르(약30평)가 평균이었다. 효율성 있게 일하려고 그것을 10아르 크기로 바꾸었더니, 기존에는 2~3미터 앞에 있는 벼를 보던 눈길이 10~20미터 앞으로까지 멀어졌다. 논이 커지자 벼 한 포기 한 포기가 보이지 않게 되어 논을 보되 벼를 보지 않는 내 자신이 의식되었다. 먹을거리 또한 널리 유통되자, 생산자는 소비자를 보지 않고, 소비자 또한 생산자를 잊어버렸다.” 사실 세계화 시대에 식량 ‘자급’의 문제를 논하는 이야기이니 축구와 얼마나 크게 관련이 있겠나 싶지만, 따지고 보면 K리그의 구단들이 축구 팬들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승'이나 '1만 관중', '2만 관중' 같은 목표들만 보다보니, 눈앞 1, 2미터 앞에 있어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축구팬들은 놓치고 만 것은 아닌가.
결국 유럽 리그와는 팬들을 두고 경쟁하고, 자본을 내세운 타 아시아 리그와는 선수들을 두고 경쟁해야만 하는 현실에 놓인 K리그의 생존 전략은 바로 경기장에 많은 지역팬들이 찾아 ‘자급’하는 것뿐일 수밖에 없다. 팬과 괴리된 구단에게 팬들이 돌려줄 수 있는 것은 무관심뿐이다. “승리와 우승만이 목표라면 아마추어와 다를 바가 없다. 프로팀은 성적 외에도 즐거움과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나눌 방안을 찾고 있다”는 이랜드FC가 K리그 구단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제가 되어주길 바란다. 국민들과 괴리된 정치 때문에 나라가 갈피를 못 잡듯, K리그도 팬들을 망각한다면 끝내 갈 길을 잃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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