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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어디까지 왜곡되고 있나!(6) 우리나라 역사 정립(歷史鼎立)은 새로 해야 한다.
우리 역사 어디까지 왜곡되고 있나? (6)
우리나라 역사 정립(歷史鼎立)은 새로 해야 한다.
이 을형 법학박사 / 숭실대 법대초대 학장 / 한일문화교류협회 회장 / (사)한배달 학술위원 |
상고시대 환국·배달국 역사, 세계 학자도 인정하고 있다.
필자는 2016년 8월 요하문명(遼河文明;서기전4,500년~6천년)의 발상지인 적봉지역(赤峰地域)을 답사하며 홍산문화(紅山文化)의 유적(遺跡)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자에 따라 그 연대를 달리하나, 이 유적은 우리나라 동이족이 주도한 5대문명중 맨 처음의 문명역사(文明歷史)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국정교과서는 일제가 우리나라 역사를 축소하기 위해서 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를 조선총독부하에 두고,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며 단군조선을 고조선(古朝鮮)이라 가르치고 있다.
이는 조작한 역사로 우리나라 역사가 세계의 석학들도 1만 2천년이 넘는 역사라고 하고 있는데도, 1945년 우리가 광복되어 1948년 대한민국이 다시 건국되었는데도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에 의해 5천년 밖에 아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때문에 일반 국민도 이 범주(範疇)에서 역사의 시원(始源)을 찾으려 하는 이가 많은 상황으로 세계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자기 나라의 역사와 세계문명국임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석학들도 인류 최초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이라고 하고 있어서, 유네스코UNESCO)에서도 여러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한국의 역사를 인정하고 인류 역사의 시원국(始源國)이 한국(韓國)이라 말하고 있는데도 무지한 상태다.
그 증거로 우리 민족이 거주했던 만주지역(滿洲地域)에서 탄미(炭米)를 발견하고 그 DNA를 측정(測定)한 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 것이 판명됨에서 농사기술도 고대부터 매우 앞선 것으로 판명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 탄미(炭米)는 군량미(軍糧米)로 추정(推定)되는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 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그 추정 연도는 1만 7천년전이다고 하고 있다. 이 내용은 이미 유네스코가 인정하고 발표한 것을 필자도 2019년 8월 8일자 ‘스카이 데일리’에 인용하여 보도한바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광복이 되고 대한민국이 건국한지도 70년이 넘는데도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역사밖에 모르는데서, 다시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이를 다시 반추(反芻)해서 쓰게 됨에 마음 아픔을 금할 수가 없다.
더구나 기가 차는 것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말이 아니다. 우리는 1만 2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그런데도 5천년 역사라 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 역사 교육이 말이 아닌데서 울분을 금치 못한다.
오늘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고대사(古代史)며, 우리 민족이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세계 시원국가(始源國家)이며, 그 역사 또한 위대함을 살펴보고자 한다.
위대한 우리 역사, 제대로 바르게 정립(鼎立)해야 한다.
세계의 석학들도 우리나라 역사가 고조선(古朝鮮) 이전의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을 인정하고 있는데도 우리 역사를 5천년 역사라고 저명한 인사들 까지도 역사무지(歷史無知)함을 보며 개탄(慨歎)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외국인 학자들도 우리 상고사를 인정하고 하물며 지나의 사학자들도 우리의 광역(廣域)이 유라시아의 80%라고 지나(支那)의 홍콩대 임혜상(林惠祥)교수 같은 학자도 말을 하고 있으며, 우리 <삼성기(三聖記)>에도 환국시대의 인구도 1억8천만이었다고 나와 있음도 부인(否認)하는 자가 있으니 기가 찰 일이다.
이런 자들은 우리의 대륙역사(大陸歷史)를 반도(半島)안에 가두어 놓고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이 왜곡(歪曲)한 역사 내용만을 우리 역사라 하는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우리 역사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고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우리는 유구(悠久)하고 세계시원(世界始源)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역사가 제대로 정립(鼎立)되어 있지 않고 있다. 그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 왜곡 역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이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얼마든지 지난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는 고대역사도 제대로 정립도 안 되어 있고, 9세기 이전의 역사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삼국시대인 서기전 2세기~9세기 역사도 정립 한 것 같으나 아직까지도 안 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상고 때 부터 각국(各國)의 위치(位置), 지명(地名)을 바로 정립하는 일이다.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이 왜곡(歪曲)한 잘못된 위치(位置)와 지명(地名)을 일치시켜야 한다. 상고사가 없는 지나(支那)와 일본은 우리의 위치와 지명을 반도 쪽으로 몇 번이고 이동시켰기 때문에 고대 우리나라 역사의 각국의 지명 위치가 너무나 잘못되어 있고, 지명들도 바꿔놓아서 혼선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다음으로 명칭(名稱)과 국가간(國家間), 지명이 중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왕칭호(王稱號)를 사용한 사로신라(斯盧新羅)와 간(干; 칸, 한,)에서 왕(王)으로 칭호(稱號)를 바꾼 경주의 신라 역사와 태수(太守)의 낙랑(樂浪)과 왕(王)의 낙랑국(樂浪國)을 아직도 사학자 중에는 이도 구분못하는 자가 있다.
여기서 그 지명(地名)을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삼국(三國)을 살펴보면, 모두 대륙에서 건국하고 대륙에서 패망을 하였는데, 고구려(高句麗)의 예를 든다면 북평(北平), 태원(太原), 서안평(西安平), 은산(銀山), 용도(甬道)와 신성(新城)이 있어야 한다. 이곳이 반도에 있는가! 없다. 모두 대륙의 지명들이다.
한족(漢族)의 동이전(東夷傳)에는 서안평(西安平), 북평(北平), 태원(太原), 광주(光州), 섭라(涉羅)가 있어야 한다. 이곳은 거의 요동(遼東)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연구를 안함으로 역사 지명도 모르고 있다.
또한 백제(百濟)는 박산(薄山), 대산(大山), 백마(白馬), 평원(平原),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獨山), 황산(黃山), 사비성(泗泌城), 하수(河水), 석문(石門), 대방(帶方)의 백제(맥제)가 있는데, 이 지명이 반도가 아닌 대륙의 지명인 것이다.
한족(漢族)의 동이전(東夷傳)에는, 대방(帶方), 청하(淸河), 성양(城陽), 광양(廣陽), 진성(晉城), 고평(高平), 항성(項城), 동명(東明), 덕안(德安), 백마(白馬), 대산(大山)의 지명이 있는 곳으로 반도가 아니다.
신라(新羅)는, 항성(項城), 연주(兗州), 사지연수(泗之漣水), 우이(嵎夷), 덕안(德安)이 있어야 한다. 이 덕안(德安)이 강회(江淮)에 있다. 그런데 반도식민 학노(學奴)들은 반도(半島)에 이는 것 같이 가르치며 역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그리고 왜(倭)는 회계(會稽), 단주(澶洲), 이주(吏洲), 담이(儋耳;南越)등의 지명(地名)이 있어야 한다. 이곳은 양자강(揚)子江) 이남의 대륙으로 왜(倭)도 일본 열도에 있지 않고 양자강 이남의 대륙에 있어서 일본 열도가 아니다.
공통 부분으로서, 신라(新羅). 백제(百濟), 고구려(高句麗), 왜(倭)가 오늘의 지나(支那)대륙에 있는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있는 부분으로 낙랑왕국(樂浪王國)과 왕(王)의 칭호(稱號)를 사용한 사로신라(斯盧新羅)와 간(干; 칸, 한,)에서 왕으로 칭호를 바꾼 반도의 신라(동신라)가 있었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위치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낙랑왕국(樂浪王國)과 왕칭호(王稱號)를 사용한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와 칸(干; 칸, 한,)에서 지증왕(智證王)때 왕(王)으로 칭호(稱號)를 바꾼 경주, 서라벌(徐羅伐)의 신라(新羅;東新羅)가 있는 사실의 기록이 없다.
그런데 한족(漢族)은 우리나라 국가(國家)들의 위치를 정확(正確)하게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동이각국(東夷各國)의 지명(地名)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데, 모두 다 그 지명(地名)들이 반도에 있지 않고 대륙(大陸)에 있는 것이다.
지나(支那) 사서(史書)에 의한 동이(東夷) 국가들의 위치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이미 지나(支那)의 제일 남쪽에 왜(倭)가 있고, 왜(倭)의 북쪽에 한(韓)이 있고, 한(韓)의 북쪽에 예(濊)가 있으며, 예(濊)의 서쪽에 낙랑(樂浪)이 있고, 예(濊)의 북쪽에 고구려(高句麗)와 옥저(沃沮)가 있고, 부여(夫餘)의 서쪽에 선비(鮮卑)가 있다고 했다.
이를 더 자세히 말하면, 부여(夫餘)는 장성(長城)의 북쪽에 있다. 진(晉)이전, 고구려(高句麗)는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서안평(西安平)이 후한서(後漢書)에 기록이 되어 있다.
위서(魏書)에는, 광주(光州), 섭라(涉羅)가 있고, 신구당서(新舊唐書)에는 은성(銀城)과 신성(新城)이 기록되어 있다. 대방(帶方)은 서안평(西安平)에 있으며, 석문(石門)에 접하여 있다고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북평(北平), 태원(太原), 서안평(西安平), 은산(銀山)=은성(銀城)이라고 하는데, 같은 곳이다. 용도(甬道), 신성(新城)이 있어야 한다. 한족(漢族)의 동이전(東夷傳)에는 서안평(西安平), 북평(平), 태원(太原), 광주(光州), 섭라(涉羅)가 있음을 이미 밝힌 그대로 대륙이다.
예(濊)의 지명으로는 창해(滄海)에 있어야 한다. 이는 사서(史書)와. 한서(漢書)의 기록이다. 이 같이 우리나라는 반도가 아닌 대륙 인 것을 말을 하고 있다.
백제는 진평이군(晉平二郡), 성양(城陽), 광양(廣陽), 광능(廣陵), 대방(帶方), 조선(朝鮮), 청하(淸河), 낙랑(樂浪) 이상이 남제서(南齊書)에 기록되어 있고, 항성(項城), 백마(白馬), 대산(大山), 웅진(熊津), 동명(東明), 덕안(德安)이 신구당서(新舊唐書)에 기록 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석문(石門), 제성(諸城), 하수(河水), 숭산(崇山), 백마(白馬), 황산(黃山), 평원(平原), 동명(東明), 항성(項城), 덕안(德安), 독산(獨山), 동성(桐城), 잠산(岑山)등 기록이 있다.
신라(新羅)는 강회(江淮)지역에 있다고 [사기(史記)]와 구당서에 있다고 했는데 항성(項城)이 신구당서(新舊唐書)에 쓰여 있고, 연주(兗州)가 구당서(舊唐書), 연수(漣水)가 당서(唐書), 우이(嵎夷);우(虞)가 있다. 삼국사기에 석문(石門), 황산(黃山), 독산(獨山), 동성(桐城), 잠산(岑山), 덕안(德安)이 다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왜(倭)도 처음부터 대륙(大陸)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다. 왜(倭)의 지명(地名)으로는, 회계(會稽), 담이(儋耳;南越)가 삼국지(三國志)에 쓰여 있고, 이주(吏洲)가 후한서(後漢書)와, 북사(北史)에 쓰여 있다.
그리고 위 지명(地名)이 있는 곳에서 활동한 우리나라 고대역사(古代歷史)의 인물(人物)들도 모두 반도(半島) 아닌 대륙(大陸)에서 출생해서 대륙에서 그 생을 마쳤다. 또한 그 무덤들도 대륙에 다 있다.(以上은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동이강역도(東夷疆域圖)’ 9面~11面, 參照引用하였음 밝힌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지 않은 국내 사학자(史學者)중 학자 아닌 사학자(詐學者)가 말하는 역사는 허구(虛構)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자(箕子)가 나서 자란 곳이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이고 그 무덤이 몽성(蒙城)에 있는데, 어찌해서 한반도 있다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기자묘(箕子墓)를 만들어 놓고 기자(箕子)가 반도에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무지가 창피도 하지 않은 지, 실체도 없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의 역사 왜곡에 우리는 단호(斷乎)하게 나서서 역사를 바로 세워가야 한다. 우리 역사는 왜곡되리 만큼 그런 역사가 아니기에서다.
결어(結語)에 대신하여
우리 역사는 현대 과학적으로 우리가 대륙역사임을 말해 준다. 일식에 관한 NASA의 관측에서 보듯 고구려(高句麗)는 바이칼 호수(湖水)이고, 신라(新羅)는 가장 많은 관측(觀測)을 했는데, 반도(半島)가 아니고 모두 대륙에서다. 백제와 일본도 관측한 곳이 반도나 일본 열도가 아니고 다 대륙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의 강역(疆域)은 상고시대(上古時代)로 부터 고대(古代)도 반도가 아니고, 대륙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타이완(臺灣)에서 관측한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일본의 국호는 670년부터 사용했는데, 그 곳이 타이완이다. 숨길레야 숨길 수 없는데도 무지(無知)한 학노(學)奴)들은 역사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고대(古代)에 기후 변화(氣候變化)와 자연현상(自然現象)에서도 우리 영역은 반도(半島)가 아닌 대륙이었다. 그것도 아세아(亞細亞)뿐만 아니라, 유라시아를 지배한 역사임을 바로알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황하(黃河)와 산동(山東)을 중심으로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하며 무한히 발전해온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세계 5대 문명(世界五大文明)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文明)의 발상지(發祥地)도 지금의 이라크의 지경이고, 3800년 전에 쓰여진 [함무라비 법전]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관(史觀)부터 바로하고 우리와 같은 동이(東夷)의 나라들의 아시아인을 수용할 줄도 알아야 바른 역사가 된다.
그들은 다 우리의 형제들이기에 폭넓게 그 역사(歷史)도 제대로 수용(收用)해야 한다. 그들은 고대(古代)부터 우리와 형제 같은 사이다.
한편, 왜(倭)=(日本)는 서기전 50년~서기670년 까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왜(倭)가 있었던 담이(儋耳)와 남월(南越)은 지금의 광서성(廣西省)인 것이다.
그런데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하지 않고 670년 타이완(臺灣)에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쓴 것을 숨긴다. 이 곳은 왜(倭)라 부르기 이전, 노자(老子)가 산 곳이 담이(儋耳)이기도 하다.
4세기 이전 기록이지만 649년 당태종(唐太宗)이전까지 발행한 양서(梁書), 북사(北史), 남사(南史)까지도 왜(倭)가 회계(會稽), 담이(儋耳), 남월지(南越地)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649년 이전의 장안(長安)중심의 한족(漢族) 정사(正史)에서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숨기고 왜곡하여 왔던 것이다. 왜(倭)는 고대 삼국시대에도 우리의 제후국으로 동이(東夷)의 일부(一部)이지 결코 다른 민족이 아님에도 현재 반도와 일본의 상황으로 왜곡(歪曲)하고 있는 것이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해석을 반도로 왜곡(歪曲)한 것은 근시안적(近視眼的)인 해석 때문이다. 진실은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에서 반도, 동북(東北)아시아와 중동(中東)까지도 우리가 지배(支配)한 것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환국(桓國)때부터 12부족들이 축제에 떡과 술을 나누던 훈족, 퉁구스족 여진족, 몽골족, 말갈 등, 아이누인까지 우리와 관계없는 듯 말하는 무지는 이제 그만해야 하며, 일제(日帝)가 심어놓은 단일민족(單一民族)이라는 민족사관(民族史觀)은 이제 왕조사관(王朝史觀)으로 역사를 제대로 재구성해야 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한동억, 인류시원의 역사이야기.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石井進外,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引用하였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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