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 후기] 대학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다양한 실험
대학 통합 네트워크가 이루어졌을 때, 교육의 질이 올라가야 통합의 의의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서열이 해소되는 것만으로는 이 지난한 작업의 동력을 구성원들에게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학서열해소 방안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3차 간담회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의 질을 끌어올린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지자체, 대학, 기업의 협업이 만들어낸 지역 대학의 변화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대학 간 네트워크 작업은 ‘지역혁신플랫폼’을 들 수 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대학들이 서로 연합하여 대학과 지역 기업을 연계하는데,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 경남, 충북, 광주전남에서 참여하고 있는 이 사업은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내용을 대학이 교과 편성에 적극 반영하여, 이를 이수한 학생들에게 인턴쉽 및 취업 기회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지자체가 지역대학을 살리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기업과 대학이 능동적으로 협업하여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경상대학교 손정우 교수는 울산경남 지역혁신플랫폼인 USG공유대학의 운영주체로 일하고 있습니다. USG공유대학은 울산경남의 6개 대학이 연합하여, 공동 교육과정(제조엔지니어링, 제조ICT, 스마트공동체 분야)을 운영하고 이를 지역 기업으로부터 인증 받을 예정입니다. 서울대 수준인 1인당 4000만 원 상당의 교육비를 투입한 교육과정에 총 300명을 선발하여 현재 첫 학기를 이수하는 중입니다. 이 학생들은 졸업 후, 지역에 있는 LG전자, LH 등 주요 기업에 취업할 수 있습니다.
USG공유대학은 대학통합 네트워크의 현실적인 사례로, 자원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개별 학교, 학과 이기주의, 대학 간 서열 등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령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대학입학자원이 감소한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니 반대 분위기가 수그러들었고, 서로를 협업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원 대학 학점을 기준으로 선발함으로 학교 서열 간 차등을 두지 않아 대학서열 완화에도 점차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6개 대학 간 원격 수업이 가능한 화상 강의실 등 표준시설을 구축하고, 학칙과 학사제도를 개선하는 등 참여 대학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각 대학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전에는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기 어려웠을 문제까지 타협에 이르러, 이러한 의사소통 역시 고등교육의 질을 높이는 과정이 되고 있다고 전합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이 이공계열에 집중돼 있어, 인문사회계열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 숙제입니다. 또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행정 및 교육서비스 비용에 중복이 발생할 수 있어,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학생에게 선택 받으려면 교육의 질 끌어올릴 수밖에 없어
한동대 김재호 교수는 26년밖에 되지 않은 한동대학교가 학생교육중심 대학을 표방하면서 인력양성에 진정성을 갖고 임한 것이 오늘의 위상을 이루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중도탈락률 2%로 사립대학 최저)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2학년에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고,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어, 정원 없이 매년 학생들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하는 특성상 교수들은 교육과정 및 콘텐츠, 교육의 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덕분에 13개 학부에는 우열이 없어, 학부 간 자원의 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동대 사례는 대학 통합 네트워크 운영 시 전공 쏠림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지 시사점이 있습니다.
공학인증제가 통합 네트워크에 끼칠 득과 실
거제대 손호재교수는 공학인증제도의 기본 철학과 운영방향을 소개했습니다. 공학인증제는 국제적 등가성을 갖는 제도로, 학생 입장에서는 인증 받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졸업했다는 자격을 검증받을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검증된 학생을 선발해 곧바로 다음 단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육기관 시스템에 신뢰성이 확보되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통합 네트워크에 들어오는 대학들이 공학인증제를 채택한다면 학교 간 서열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 전공 전문성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다만 행정절차의 경직성으로 인해 참여율이 낮아지는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필수요소를 간소화 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합니다. 또한 ‘인증’의 속성상 엄격한 평가체계로 이뤄져 있는데, 빠르게 변하는 산업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산과 인력 보장하는 법률 제정해야
방송대 임재홍교수는 대학 간 여건이 천차만별이므로 네트워크 시 대학교육의 질이 반드시 상향평준화할 수 있는 연합체제로 가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핵심은 ‘충분한 예산과 인력 확보’입니다. 기존의 보조금 사업방식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과거 프라임사업만 해도 신수요 학과를 개설해서 3-5년간 예산을 지원했지만, 지원금이 없어지자 폐과하고 교수들은 본래 소속학과로 복귀했습니다. 낭비가 가장 심하고 효과 없는 사업으로 손꼽힐 정도입니다.
결국, 대학통합네트워크에 들어온 학교에 인력과 예산을 보장하려면 ‘국립대학법(국립대학회계법)’을 제정하거나 최소한, 특별회계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현재는 교원 규모도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다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라, 교원 1명 증원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구성원들의 각성과 협업으로 이루어질 대학 통합 네트워크
이날 간담회를 시청한 시민들에게는 한동대학교의 ‘학생중심교육’이 특히 주목 받았습니다. 13개 학부 내에서 원하는 전공 조합이 300개 이상 가능하고, 30여 개의 핵심 전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들이 요구하는 창의성과 책무성은 전공교과만으로는 습득할 수 없어, 다양한 비교과활동이 이들이 역량을 끌어올린다고 합니다. 학생 75%가 기숙사생활을 하고 4년 동안 전공불문하고 팀 플레이를 하면서 다양한 전공을 경험하는 시스템이 학습공동체로서 역량을 강화시킵니다. 대학통합 네트워크에서도 어떻게 하면 이런 환경을 만들고, 교수들의 헌신을 끌어낼 수 있을지, 새로운 도전과 협업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