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年(매년) 6月이 오면 가슴시리게 적셔오는 한 篇(편)의 詩(시)가 떠오른다.
6.25전쟁 때 젊은 피로 목숨 바친 거룩한 넋을 기리며...
國軍(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廣州(광주) 山谷(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國軍(국군)을 만났다.
山(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國軍(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向(향)해 눈을 감은 國軍(국군)을 본다.
누런 Uniform(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標識(표식, 표준어는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大韓民國(대한민국)의 少尉(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薔薇(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香氣)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痛哭(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大韓民國(대한민국)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窒息(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祖國(조국)의 山脈(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 凡(범)치 못할 銃(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鐵帽(철모)가 씌워져 怨讎(원수)와 싸우기에 한 番(번)도 卑怯(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强(강)한 大韓(대한)의 魂(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山(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李舜臣(이순신)같이, Napoleon(나폴레옹)같이, Caesar(시이저)같이, 祖國(조국)의 危險(위험)을 막기 爲(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進擊(진격)! 進擊(진격)! 怨讎(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怨讎(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暴風雨(폭풍우)같이 Moscow(모스코바) Kremlin(크레믈린) 塔(탑)까지 밀어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同生(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少女(소녀)도 있었노라. 내 靑春(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無數(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祖國(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美風(미풍)이 이처럼 多情(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慰安(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祖國(조국)의 軍服(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愉快(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暫時(잠시) 疲困(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祖國(조국)을 爲(위)해 싸웠고 내 祖國(조국)을 爲(위)해 또한 榮光(영광)스리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Nightingale(나이팅게일)의 永遠(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苦生(고생)하는 내 나라의 同胞(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爲(위)해 울지 말고 祖國(조국)을 爲(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나르는 봄나라 새여! 或是(혹시) 네가 나는 어느 窓(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少女(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祖國(조국)을 爲(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祖國(조국)이여! 同胞(동포)여! 내 사랑하는 少女(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幸福(행복)을 爲(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所願(소원), 물리치지 못한 怨讎(원수), 나를 爲(위)해 내 靑春(청춘)을 爲(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卑怯(비겁)하다. 降服(항복)보다 奴隸(노예)보다 卑怯(비겁)하다. 둘러싼 軍士(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大韓民國(대한민국) 國軍(국군)아! 너만은 이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 番(번) 버린 祖國(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暴風(폭풍)이 온다. 大韓民國(대한민국)이여!
이리와 獅子(사자) 떼가 江(강)과 山(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兄(형)과 아우는 Siberia(서백리아, 시베리아) 먼 길에 流浪(유랑)을 떠난다. 運命(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 하려는가? 아니다. 運命(운명)이 아니다. 아니 運命(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運命(운명)보다는 强(강)하다. 强(강)하다.
이 怨讎(원수)의 運命(운명)을 破壞(파괴)하라. 내 親舊(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檀君(단군)의 피와 魂(혼), 싸울 곳에 躊躇(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祖國(조국)의 生命(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祖國(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屍體(시체)를 담을 작은 棺(관)도 辭讓(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 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幸福(행복)해질 祖國(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所願(소원)이노라.
山(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國軍(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向(향)해 눈을 감은 國軍(국군)을 본다. 누런 Uniform(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標識(표식, 표준어는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大韓民國(대한민국) 少尉(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薔薇(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香氣(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痛哭(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1950年 8月 그믐 廣州(광주) 山谷(산곡)에서
-毛允淑(모윤숙, 1910~1990) 詩人 지음-
나이팅게일: 지빠귀과의 새로 휘파람새와 비슷함. 밤꾀꼬리. 서백리아: 시베리아의 한자식 표기. 西伯利亞.
해석 이 시는 한국전쟁을 제재로 한 계몽시이다. 12연의 자유시로 기·서·결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은 국군 소위가 말하는 대목을 중심으로 앞뒤에 서사와 결사가 결합되어 있다. 국군 소위의 애국·애족심을 명확한 시어와 강한 호소력의 남성적 어조로 노래한다. 1~3연은 기 단락으로, 화자가 국군 소위의 시신을 발견하고 통곡한다. 4~11연은 서 단락으로, 국군 소위의 입을 빌려 노래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장렬히 전사한 군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12연은 결 단락으로, 3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기 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만들어 재배치함으로써 수미상관의 구성으로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詩의 특징 전쟁이 막 지나간 현장에서 쓰여 진 시다. 소위는 소대장이다. 전쟁터 앞장에 서서 적의 총탄을 철모에 맞으면서도 ‘돌격 앞으로’를 외쳐야 한다. 시에 삭혀지지 않은 감정이 다소 묻어 있다하더라도 전쟁의 잔혹함을 눈으로 직접 보며 쓴 시라 탓하고 싶지 않다. 73년이 지난 현재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동의하고 싶지 않은 곳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자기의 신념에 의하여 군대를 보이콧해도 군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대체복무를 시키라는 시대다. 그것도 ‘양심적 병역거부’다. 그러나 이 시는 나라가 풍전등화에 놓여있고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비참하던 1950년 8월에 쓰여 진 시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제목 자체가 큰 울림을 준다. 남자도 아닌 여자의 가슴에서 이런 시가 탄생되었다는 것에서 그녀를 ‘여장부’ ‘여걸’이라고 '뛰어난 시인'이었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작자의 낭만주의와 애국주의가 융합을 이룬 작품으로 전몰용사의 주검을 통하여 애국심을 감동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1950년 8월,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그 때, 작가가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경기도 광주 근처 산골에서 숨어 지내다가 국군의 시체를 보고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시집『 풍랑(風浪)』, 문성당(文星堂) 1951년 간행에 수록됨 영운(嶺雲) 모윤숙 시인이자 친일 반민족행위자
출생: 1909년 함경남도 원산시, 사망: 1990년 6월 7일 서울특별시 학력: 함경남도 원산보통학교 수료 함경남도 함흥 영생보통학교 졸업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수료 경기도 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 이화여자전문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영문학 전공) 선과 2년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등단: 1933년 시집 『빛나는 지역』 수훈: 1991년 금관문화훈장, 1971년 3.1문화상 저서: 정경, 구름의 연가, 풍토, 논개, 내가 본 세상, 포도원, 모윤숙 시 전집, 모윤숙 전집,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생애 및 활동상황: 작가의 초기의 詩는 자유분방 함과 발랄, 화려한 이미지를 주로 형상화했다.
1935년 『시원』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했다. 1940년에는 시 「조선의 딸」, 「이 생명을」을 써 경기도 경찰서에 구류가 되기도 했고, 일제의 창씨개명에 반대도 했지만 그 후의 그녀의 활동에 따라 친일 반민족행위자라는 그런 불명예스러움의 얼룩이 남았다 그러나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해 민족주의적 이념의 조국애와 민족애를 고취함 한국현대시인협회장, 통일원 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 문학진흥재단 이사장 등을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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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쟁은 이유 불문하고 있어선 안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위정자들의 꼼수 때문에 국민들만 희생을 당하는 것이지요.
요즘 풍요를 누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작은 행위 하나하나가 나라사랑과 직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