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 새벽예배 | 강신규 목사] 인정과 주목에 대한 집착 마태복음 10장 24-33절 | 2024. 3. 4
https://www.youtube.com/live/E2k8Txnryr0?si=1kzdAbN6DjUW0KvN
이스라엘이 당한 패배와 수치 44:9~16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구원의 은혜를 간구함 44:17~26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
[오늘의 말씀 요약]
시편 기자가 이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기에 자신들이 대적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비방거리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기억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자신들을 도우시고, 인자하심으로 구원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
이스라엘이 당한 패배와 수치 44:9~16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셔서, 자신들이 패배하고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9절). 과거에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도우신 하나님이 이제는 함께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헐값에 파신 것 같습니다. 패배한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들로부터 종일 수치와 모욕을 당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략과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크고 견고한 여리고성도 무너뜨릴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작은 아이성 앞에서도 패배하고 맙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이 패배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나요?
내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이루려 한 일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했나요?
--------
구원의 은혜를 간구함 44:17~26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들이 전쟁에 패해 비참한 상황에 처했지만, 하나님을 잊지도 않았고 언약을 어기지도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망의 그늘 아래 살게 하셨음에도 그들은 하나님 이름을 잊어버리지도, 우상에게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성도는 절망 속에서 끝까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속한 공동체는 절망 속에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23절),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26절)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렇듯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해 간구한 것은 무엇인가요?
내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이 절실한 일은 무엇인가요?
한절묵상:시편 44편 18,26절
성도가 걸어야 할 인생길은 '하나님'이라는 외길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혹독한 현실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다른 길로 걸음을 옮기지도 않습니다. 그가 간절히 도움을 구하며 부르짖어야 할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깊은 고통과 절망을 도리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참된 성도는 어떤 고비를 만나든 항상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손길을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 삶을 세심하게 인도하고 계신다. - 웨슬리 D. 트레이시
오늘의 기도
하나님! 고난의 끝이 보이지 않고, 고난의 이유조차 찾지 못해 절망스러울 때도 솔직하게 부르짖게 하소서. 어떤 순간에도 주님 따르는 삶을 포기하지 않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붙들고 도우심을 간구하며 오직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 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시인과 그의 공동체는 하나님을 배반한 적이 없는데 전쟁에서 져서 위태롭습니다. 시인은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 구원을 구합니다.
본문의 명제: 너희는 늘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으며, 우리과 동행하시면서 우리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승리를 안겨 주시고, 주님의 손길에 의지하고, 주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우리를 훈련시켜 나가시고, 더욱 더 성장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주님과 더 깊고 풍성한 나눔이 되도록 노력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시는 그분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더록 성실히 맡겨 주신 역할을 감당해 나가자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9-22절 시인은 이스라엘이 패전한 이유가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지 않으셨기 때문이라 호소합니다. 시인은 언약을 어기지 않았고, 주의 길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고난이 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 패전했는지 알지만 왜 패하게 하셨는지 알 수 없어서, 그는 하나님을 붙들고 따집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만난 욥의 심정이 이와 같을 것입니다.
무고하게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필 내게 이런 고난이 오는지, 왜 나만 이런 실패를 거듭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주님의 손을 벗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상황이 절박할수록 절박한 기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23-26절 시인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깨어 일어나 구원하시라고 부르짖습니다. 자녀의 고통에 귀를 막지 마시고, 구원을 바라는 그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시라고 소리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1-8절)의 터 위에서, 시인은 원초적인 기도를 맘껏 토해냅니다. 나의 정제되지 않는 마음의 소리도, 주님은 넉넉히 들어주실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실패에도 절망하지 않고, 고난이 깊을수록 더 간절히 주님을 붙들게 하소서.
이 시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시가 아닌 민족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시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때로는 민족적인 문제나 한국교회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셨던 하나님(1-8)
지금 이스라엘은 굉장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아마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괴롭히던 히스기야 시대였을 것입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시인은 과거에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애굽에서 건져 내어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 칼과 군대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팔과 주의 얼굴 빛으로 승리하게 하신 것을 기억했습니다. 시인은 과거에 이스라엘을 도우셨던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나의 왕이시여 야곱을 구원하소서.
지금 우리를 도우소서(9-26)
과거에 하나님이 큰 구원을 베푸셨는데 지금은 이웃의 손에 완전히 멸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이웃에게 욕을 당하고 조소거리가 되었습니다.(13) 하지만 의지할 이는 주님 밖에 없어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언약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17) 그리고 주님이 깨셔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옛적에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지금도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26) 과거나 지금이나 주님의 인자하심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도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과거에 부흥운동이 일어날 때는 정말 굉장했지 않습니까? 그때는 모든 백성들이 교회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자기는 교회에 안가도 자식들은 교회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가 힘을 잃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조소거리가 되었습니다.
자기도 교회에 오지 않고 자녀들도 교회에 보내지 않습니다. 히스기야 시대에는 나름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요즘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간절히 찾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주여 우리 한국 교회를 다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일어나셔서 우리를 도우소서.
이스라엘 백성은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고 강대국의 포로가 되어 버렸고, 과거 조상들에게 역사하셨던 여호와의 능력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강력히 임재하셨던 하나님은 과거의 이야기에만 화석처럼 박혀 있어 찾을 수 없는 절망과 낙심만 남은 상태입니다.
여호와의 도우심이 없는 그들은 이제 조롱거리와 웃음거리이며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수치만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 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언약’(17절)을 소홀히 하지 않고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고 ‘그 발걸음’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18절) 고백합니다.
로마서 8장은 오늘 절망과 탄식 가운데 호소하며 여호와를 죽음 가운데에서 붙드는 시편 44:22의 믿음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내려는 수많은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과 칼이 우리를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종일토록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어린 양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으며,
어떠한 권세나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깨달아,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두려움 없이 나아가고, 생명과 평강의 열매가 맺히는 성령의 사람으로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루의 시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비록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처럼, 마치 열방에게 넘겨진 것처럼 되었을지라도 여전히 주의 언약을 잊지 않기에 여호와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는 시로, 전형적인 탄원시입니다. 시편기자는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비방거리가 되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기억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자신들을 도우시고 인자하심으로 구원해 주시길 호소합니다. 본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여호와를 향한 하소연, 시편기자의 항변,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간청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본 시편 44편의 배경에 대해 학자들의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우선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대 나라가 완전히 망한 후에 이 시가 지어졌다는 의견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라는 문장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점령하고 부하들을 보내 예루살렘의 값나는 물건들을 남김없이 약탈합니다. 그 때 성전의 기명들이 몰수이 바벨론으로 옮겨진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음은, 바벨론의 침공이 있기 전 시리아의 침략을 받을 때라고 보는 주장입니다. ‘우리를 잡아 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라는 문장 때문입니다. 실제로 시리아의 왕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가 돌연 유대로 쳐들어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유대인들을 살해하고, 포로로 잡아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아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이 고대 서아시아 여기저기 흩어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벨론의 침략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시가 저작되었다는 견해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문장 때문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에 의해 적어도 세 차례의 공격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유대나라가 회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내적인 증거 곧 시인이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마지막 견해가 지지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 백성들은 여전히 주를 잊지 않고 그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는 열강을 의지한 관계로, 유대는 여호와의 징계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
회사가 망한 콘도 회원권은 골칫거리입니다. 처분해 버리면 좋겠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고, 문제는 재산으로 잡혀 있어서 세금이 나간다는 점입니다. 그런 경우 누가 헐값으로 달라고 하면 얼른 팝니다. 설령 손해가 나더라도 넘기고 싶은 것은 갖고 있지 않는 것이 한결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그렇게 헐값으로 팔아 처분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그토록 이스라엘이 골칫거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의 마음이 개운하셨을까요?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이방나라에 내주고는 시편기자가 말한 대로 편히 주무셨겠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설령 부모를 배반하는 자식이 있더라도 자식은 자식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산에 묻을 수 있지만, 부모는 자식을 마음에 묻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지만 정상적인 부모는 그렇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70년 후 유대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정복자가 피 정복민족을 외부의 무력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범죄로 인하여 치셨지만 징계 중에서도 자녀를 잊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심각한 눈으로 범죄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도 혹독하게 다루실까요? 물론입니다. 아마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보다 완전한 구원을 주셨으니, 골고다에서 우리 죄 값을 그분의 외아들이 대신 치렀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 모르고 짓는 죄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말이 안 됩니다. 사람이 짓는 죄는 거의 다 알고 짓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범죄는 일고의 제고가 없다는 점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관계로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연약한 육신을 갖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귀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헐값으로 팔리는 그런 이야기가 우리들에게는 다시는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진행형입니다. 믿음은 상승곡선이어야 합니다. 업그레이드 없는 성화는 없습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영광스러운 그날까지, 성화의 고공행진을 이어나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버림받아 수치를 당한 백성 (44:9~16)
하나님은 평안과 환난의 주권자이십니다(사 45:7 참조). 시편 기자는 현재 그들이 겪는
모욕과 수치를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과거에 그들과 함께하시며 구원하셨던 하나님은 ‘그러나 이제는’(9절)
그들을 버리시고 패배하게 하신 분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들이 겪고 있는 모든 환난이
‘주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군대가 패배한 이유도
하나님이 ‘함께 나아가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내버려 두심’의 결과는
승리와 패배, 영광과 수치로 확연히 드러납니다. 오늘의 패배와 모욕과 수치를 하나님의 주권으로
고백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 기초해서 미래 회복과 해결의 열쇠를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 고난당할 때 누구에게 탄원해야 할까요?
고난 중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핍박자에게 비굴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백성 (44:17~26)
우리는 자기 죄와 허물의 결과로 고난을 겪기도 하고, 신앙 때문에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시편 기자는 지금 그들이 당하는 고난은 죄로 인해서가 아니라, ‘주를 위하여’(22절)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은 죄에 대한 징계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증명하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지 말고, 끝까지 그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치 주무시는 것처럼 잠잠하실 때에라도 성도는 다른 신을 찾지 말고 순전한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에 기대어 현실의 고통과 마음속 모든 것을 토로할 때,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돕기 위해 일어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상황이 힘들다고 말씀을 어기고 신앙의 길에서 떠난 적은 없나요?
‘주의 인자하심’에 호소하며, 일어나 도와주시길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마음의 비밀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제 수치를 가져가 아룁니다.
저를 미워하는 이들 때문 에 너무나 괴로워 하나님께 고통을 토로하오니, 일어나 저를 도와주소서.
애매히 비방당하고 욕을 먹는 상황에서 저를 버려두지 마시고 건져 주소서!
믿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따라서 당연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에서 겪으셨던 치욕을 우리도 통과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시44:13)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에서 능욕을 당하신 것은 원수 복수자 때문입니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시44:15~16)
따라서 우리도 십자가의 길에서 이 능욕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원수 복수자는 크고 붉은 용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시44:19)
여기서 승냥이는 히브리어로 "תנין"(탄닌)으로 바다괴물, 용을 뜻합니다 그래서 KJV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용의 처소에서 우리를 꺾으셨도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십자가의 길에서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시44:22)
그러나 우리는 어떤 고난이 와도 이 십자가의 길에서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시44:17)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용의 홍수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계12:16)
그리고 그 날에는 용을 죽이실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27:1)
그러므로 우리의 십자가의 길이 아무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의 길 같아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로 인해서 넉넉히 이기며 갈 수 있습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6~37)
➲ 인생에 간섭을 인정하는 삶이어야 합니다(9~26절).
시인은 ‘주께서 우리를 버렸기 때문에,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9절)패했다고 호소합니다. 그 결과 수치를 당하고 물품들을 탈취 당했습니다(10절). 맹수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진 양의 신세가 되었고, 이스라엘을 헐값에 넘기셨다(11~12절)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욕을 당하고, 조소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잊지 아니하며...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고...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17~18절)다고 항변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비밀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결코 다른 신에게 구하지 않았음을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구원을 요청합니다. ‘...깨소서...영원히 버리지 마소서...얼굴을 가리지 마소서...고난과 압제를 잊지 마소서...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23~26절). 하나님만이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심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형통한 삶을 원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입니다. 환난의 극한 고통 속에서도 주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내 자신을 향하여 늘 선포해야 합니다. 삶의 여정이 고난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은 하나님이 내 인생을 간섭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면 하나님이 울리시는 경고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지 신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소리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역사임을 고백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과 연속되는 실패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만큼은 결코 식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시 44:1~26절)...
1.민족이 당한 위기/4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달려온 이스라엘이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떠난 이스라엘은 고통과 어려움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자신들이 당한 어려움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창피를 당하는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살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떠난 인생은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과 같이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들은 즐거움을 노래하지 못합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이 고난을 당한 이후에 후회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없는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믿음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2.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니
민족이 당한 어려움 속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과거의 잘못을 떠났습니다. 과거에 범했던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앞에 주의 길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 상황은 좋지 않지만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짐으로 자신들의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주님께서 하루 속히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해결자 이심을 믿고 그분께 도움을 구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주의 길을 떠나지 않고 믿음의 길에 서 있는가?
시편 44:9~26 그분의 신실하심을 누리는 삶
시편기자는 어제의 말씀을 통하여
조상들을 승리케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이 대적과 싸워 이길 것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종일 자랑하고 영영히 감사한다고 했지만
오늘 말씀은 주님께 불평으로부터 시작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9)로 시작해서 14절까지
6번에 걸친 주님에 대한 불평이 있다.
1.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 하십니다.(9)
2.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약탈해 갑니다.(10)
3. 주께서 우리를 양처럼 잡아 먹히게 하셨고 이방민족 가운데 흩었습니다.(11)
4.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에 넘기십니다.(12)
5.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케 하시고 조소와 조롱거리가 됩니다.(13)
6. 주께서 열방중에 말거리가 되게 하시며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셨나이다.(14)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원망 같이 들리기도하고
이스라엘이 당하는 수치를 설명하는 것 같기도하다.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보인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17)
내가 주를 잊니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17)
이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내가 불평 할 수 있는 조건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께서 ....라고 불평하던 시각이 변하여
우리가(내가)라는 시각으로 17부터 20절까지 8번 반복해서 나타난다.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던 시각이
내를 향한 시각으로 내면을 살피는 시각으로 돌아오자
주님께 기도하게 된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23)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절망으로 치닫고 사망의 권세는 회복이 어렵다고 조롱의 손가락질을 하지만,
세상보다 크고 사망을 삼키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모든 악한 권세와 사단의 영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가고
오직 여호와의 영광과 승리를 선포하는
주님의 자녀 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파탄과 신음 가운데 있는 의료계에 새 힘과 소망을 부어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그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opKFsIL_U1Q?si=56XhUCROHfzUhK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