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여백이 있는 삶
이것이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는가, 걱정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시간도 없다면.
나뭇가지 아래에 서 있는 양과 소의 눈길에 펼쳐진 풍경을 차분히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숲을 지나면서 풀숲에 도토리를 숨기는 다람쥐들을 바라볼 시간도 없다면.
한낮에도 마치 밤하늘처럼 빛나는 별들을 가득 품은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도 없다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웨일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William Henry Davises)의<Leisure>라는 시다. 국내에는 여러 사람을 통해 <여유>또는 <가던 길 멈춰서>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서는 부족한 종의 번역으로 소개해보았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신다. 말세의 모습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4
이 시대는 빨리 왕래하며 빨리 교류하는 속도의 시대다. 그러나 속도는 풍경을 죽이고 생각을 죽인다. 속도가 곧 성공이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영혼을 돌아보는 것을 '느림'이라고 하고 '여유'하고 하자.
시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걱정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고 한다. 나뭇가지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소처럼 물끄러미 풍경을 바라볼 틈만 있어도 충분하다. 다람쥐가 풀숲에 도토리를 숨기는 것이나, 별빛을 가득 품어 반짝이는 시냇물까지 보면 더욱 좋다.
아동문학가 박희순 님은 <참 오래 걸렸다> 라는 시에서 "가던 길 잠시 멈추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고, "잠시 밭밑을 보는 것이 시간 걸리는 게 아닌데 집 마당에 자라고 있는 애기똥풀을 알아보는 데 아홉 해나 걸렸다고 말한다.
별은 그대로 있는데 별을 보는 사람은 줄었다. 여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30퍼센트의 모자람을 100퍼센트로 만들 수 있는 것은 70퍼센트의 채움이 아닌, 마음의 여유다.
'어린 왕자'가 만난 네 번째 별의 사람은 쌓아 놓기만 하는 상인이었다. 그는 덧샘의 기쁨만 알았다. 이 상인은 세 가지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고 했다. 풍뎅이의 요란한 소리, 신경통, 그리고 어린 왕자다.
쌓는 일 때문에 자기 몸 돌볼 시간도 없이 신경통에 걸렸다. 여유와 여백을 주는 풍뎅이 소리가 소음으로 들렸다. 순수한 꿈을 전해주는 어린 왕자도 시간을 빼앗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에게 잠시 멈춰 시를 읽는다든가 음악을 듣는다든가 사색에 잘김 비움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비움은 상실이 아니다. 피리는 속을 비워야 소리를 내듯이 큰 비움이 큰 울림을 낳는다. 덧샘이 '좋은 것'이라면 뺄샘은 '아름다움'과 '기적'을 불러온다. 잠시 멈춰 서는 쉼표는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휴식이다. 그 여유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커피라이터 정철은 한글 자음 열넷 중 여유와 웃음을 주는 마지막 '히읗(ㅎ)자를 예찬한다.
'남들 다 앞으로 보내고 자신은 맨 뒤에 서는 글자다. 여유다.
여유는 웃음을 낳는다. 그래서 우리는 히읗을 사용하여 하하호호 웃는다
행복도 히읗이고 희망도 히읗이다. 너무 앞서가려 하지 말고 서툰 휘파람이라도 불며 여유 있게 가자. 행복도 희망도 행운도 여유에서 온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다. 하늘의 능력을 펼친 제자들이 돌아와서 사역 보고를 하자. 예수님은 이들에게 "저기 고지가 또 있다!' 하며 채촉하지 않으시고, 이제 좀 쉬라고, 안식을 말씀하셨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막 6:31
예수님은 사역에서도, 그리고 자신의 삶과 제자들을 양육하는 훈련에서도 누구보다 인간미 있는 여유와 여백이 있는 삶을 사셨다.
네티즌들 사이에 <3초 여유>라는 향기로운 나눔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세요.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중략)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려요.
그 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르니까요(중략)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내가 화낼 일이 보잘것없지는 않은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다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3초만 그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세요.
그 아이가 크면 분명 내 아이에게도 그리할 것이니까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이기는 예리한 칼이 되기 위해 게으름을 벗고 실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예리하기만 한 칼날만 있다면 서슬 푸른 상처를 낸다. 철저한 자기 깨어짐, 겸손 부드러운 여유, 자기 절제, 인내, 성실함, 건강한 유머 감각 등이 한 사람의 날카로운 실력, 곧 칼을 더욱 빛내주는 칼집이 된다. 여유는 칼집이다.
출판사 : 규장
지은이 : 한재욱
첫댓글 내가 화낼 일이 보잘것없지는 않은가.
아멘 주님께영광
주님께서 하십니다.!!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