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6slEd0OrCW4?si=Y8axCqZBH3LYFfJL
Friedrich GULDA play's MOZART Piano Concertos K.466, 537
'테러리스트-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 (Friedrich Gulda)
(16th May 1930~27th Jan. 2000)
프리드리히 굴다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주 대단하다는 칭찬부터 그런 놈도 제대로 된 고전음악 피
굴다는 1930년 빈에서 아마추어 연주가인 교육자 집안에 태어났다. 7세 때부터 롤크스 음악원의 펠릭스 파초프스키(Felix Pazofsky)에게 사사하고, 12세에 빈 음악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여기서는 명교수 브루노 자이들호퍼(Bruno Seidlhofer)에게 피아노를, 루돌프 제르킨의 스승이기도 한 요제프 마르크스(Joseph Marx)에게 음악 이론을 배웠으며, 1946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 우승하여 전후 빈의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비슷한 때 데뷔한 외르크 데무스(Jorg Demus), 파울 바두라-스코다(Paul Badura-Skoda)와 함께 빈의 삼총사라는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굴다는 셋 중에 가장 젊었다). 우승 다음 해인 1947년부터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했으며, tape 녹음이 본격화한 1949년에 Decca와 계약했다(내가 아는 가장 이른 시기의 녹음은 49년의 베토벤 소나타 14,31번이다).
그는 1950년 카네기 홀 데뷔에서 성공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그 즈음부터 장기인 베토벤의 레코드로 음반 시장에서도 알려졌다. 젊었을 때부터 베토벤 연주로 유명했으며, 박하우스나 켐프의 뒤를 잇는 정통 독일-오스트리아계의 베토벤의 명수로 불렸다. 매우 탁월한 기교에 뒷받침된 빠르고 활기가 넘치는 베토벤의 연주는 지금까지도 한 번은 들어 볼 가치가 있다. 그 외에는 바흐와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연주가 유명한데, 스케일이 큰 모차르트는 특히 정평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의외로 쇼팽, 드뷔시와 라벨 같은 프랑스계 음악도 잘 연주했으며, 독일-오스트리아 음악에 자신의 레파토리를 한정시킨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만년까지 권위에 도전하는 태도를 견지하여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받은 베토벤 링(Beethoven Ring)을 아카데미의 경직성에 항의하여 반납해 버렸으며, 콘서트 연미복 대신 캐주얼 차림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테러리스트-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붙게 했으며, 그의 녹음을 인기 있게 하는 데는 불행히도 선입견과 장벽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다. 특기할 점은 50년대 후반부터 재즈에 관심을 쏟아서 자작의 재즈곡 연주를 리사이틀에 넣기 시작했는데, 찬반 양론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는 만년에 장난으로 자신의 부고 기사를 내고 모인 문상객들 사이에 천연덕스럽게 나타나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70세 생일을 약 5개월 남긴 2000년 1월 27일 심장 마비로 '진짜로' 사망했다. 이미 그는 죽었으며, 80년대 이후에는 클래식 레파토리의 녹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만년에 녹음한 실황들은 재즈 레파토리나 자작곡 및 편곡 등이 많다
페터 코세(Peter Cosse)는 Philips 피아니스트 시리즈의 2편(Philips 456 820-2)의 해설에서 베토벤 협주곡 1번의 1951년의 뵘 지휘와 70년의 슈타인 지휘의 녹음을 비교하며, '양가죽을 쓴 늑대같은 재능(ein genialer Wolf im Schafspelz)'이라고 말했는데, 젊은 시절 아직 양복을 입고 연주하던 굴다의 모습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며, 나중에 재즈 쪽으로 더 기울어진 이 뛰어난 - 고전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아까운 - 아티스트의 본질을 한 마디로 잘 압축했다고 생각한다.
출처 - my.dreamwiz.com/fischer/
https://youtu.be/Sf9eZdeS8es?si=VWzJwPAtQeQre86v
LUDWIG VAN BEETHOVEN - GROSSE SONATE FÜR DAS HAMMERKLAVIER OPUS 106 - FRIEDRICH GUL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