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8 05:29
"구체적 실적 없다" vs. "이긴 여론조사 결과도 많다"
박원순이 갑자기 여당 후보에게 뒤지는 이유는
박원순, 정몽준 오세훈에 지는 여론조사 결과 공개돼
‘강력한 성과물’ 없는 박원순에 대한 냉정한 평가 시작됐나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선 가도에 경고등이 들어온 걸까.
최근 ‘내년 6월 서울시장 선거 가상대결’에서 민주당 소속의 박 시장이 새누리당 일부 후보들에게 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시선을 끌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박 시장은 서울시장 선거 구도에서 ‘절대 우세’라는 평가를 받았다. 새누리당의 홍문종 사무총장이 지난 6월 “새누리당에 박원순 시장의 인기를 추월할 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다”며 걱정을 토로할 정도였다. 몇 달 만에 뭐가 달라진 것일까.
- 박원순 서울시장.
최근 여론조사 중 박 시장이 여당 후보에게 지는 결과 공개 된 것은 처음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뷰가 23~24일 이틀간 만 19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7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박 시장의 양자대결에서 정 의원이 52.2%, 박 시장이 40.3%로 나타났다. 정 의원이 박 시장을 11.9%포인트 앞섰다. 이 조사의 질문 내용은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새누리당 정몽준, 민주당 박원순 두 사람이 대결할 경우 내일이 선거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겠느냐’였다.
박 시장은 새누리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의 양자대결에서도 4.3%포인트 지는 것으로 나왔다. 오 전 시장 48.1%, 박 시장 43.8%였다.
이번 조사는 유선전화를 대상으로 ARS(자동응답시스템)을 통한 RDD(임의번호걸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 중 박 시장이 단순 지지율 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지는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 조사가 사실상 처음이다.
앞서 ‘투표율 56% 미만’이라는 조건에서 정몽준 의원이 박 시장을 이긴다는 조사는 있었다. 정치컨설팅 업체 윈지코리아가 17일 내놓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시장과 정 의원간 가상대결에서 박 시장 47.6%, 정 의원 42.0%로 박 시장이 앞섰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투표율이 56% 미만이면 정 의원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12일 19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를 섞어 ARS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또 11월 초에는 한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가상대결에서 오 전 시장이 간발의 차이로 박 시장을 이기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유선전화만 대상으로 한 조사, 여당에 유리한 측면박 시장이 새누리당 후보에게 밀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인만큼 이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각자의 정치적 시각에 따라 그 분석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분석을 말하기 전에 우선 객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번 리서치뷰 조사가 유선전화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유선전화 대상 조사는 표본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새누리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야당 지지세가 강한 젊은 층보다 여당 지지세가 강한 중·장년층의 응답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유·무선을 섞어 하는 게 일반적인데 왜 유선전화만을 대상으로 조사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운 조사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 오세훈 전 서울시장.
무대 위에서의 냉정한 중간평가 시작?이번 조사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발적 현상’인지 예단하긴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박 시장이 여당 후보에게 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는 작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박 시장의 ‘성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시작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치평론가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원의 분석이다. “박 시장은 1000만 서울 시민의 수장으로 지난 2년동안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오세훈 지우기’에 치중했다는 비판도 있다.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감성적 접근과 행보에 대한 긍정 평가는 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떠나 유권자들은 손에 잡히는 가시적인 성과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신비로움은 잦아들고 무대 위에서의 냉정한 중간 평가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시장이 ‘민주당 소속 박원순’이라는 것 때문에 지지율 손해를 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바닥을 헤매고 있는 민주당 지지율이 박 시장에 대한 지지율까지 함께 깎아 먹는다는 얘기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상당히 위축돼버렸다. 최근의 대결정국 와중에 정부여당도 잘하는 것이 없지만 민주당에 대한 실망도 큰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 시장’인 박 시장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과적으로 박 시장이 인물 경쟁력이 있다 하더라도 민주당의 낮은 지지도에 덜미를 잡혀 있는 형국이다.” 실제 리서치뷰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도는 52.2%인데 민주당 지지도는 20.6%에 불과했다.
이 외에 새누리당이 최근 박 시장에 대한 집중공세를 펴는 것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본격적인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보이는 것 등도 박 시장의 지지도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박 시장 측 “일희일비 안 한다”하지만 박 시장 측은 이번 조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한번의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할 것이 전혀 아니다. 박 시장이 많이 앞서는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많다. 차분하게 시정(市政)을 펴 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박 시장만의 가시적 성과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무슨 거대한 사업을 한 게 없다는 지적은 있다. 하지만 시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구체적 사업들을 펼쳐나가는 박 시장의 시정 스타일은 인정받고 있다. 시정 지지도가 60%정도 나오지 않느냐”고 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아직 7개월이나 남았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7개월은 긴 시간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의미 있는 판세 변화의 조짐인지, 아니면 단순한 일회성 돌출 결과였는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