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도 휘황한 넓은 도로보다
좁고 질척한 골목이 좋고
좁은 골목 양쪽으로 작은 주점과
국숫집 빈대떡집
싸구려 보세 옷 가게 등의
낡은 문짝과 천박한 페인트칠의 간판이
좋다
좋다기보다
마음이 내 집 온 것 같이
편한 느낌이어서다.
윗도리로 눌러 놓은 아랫배도 쑥 내밀어 보고
촌뜨기처럼 가게 전 이곳저곳 흘깃거리며 걸어도
그 누구의 시선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곳이
시장 골목이고
먹자골목이다
골목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주택가 골목길 또한 매양 찾아 다람쥐처럼
드나들다 보니 대낮에 길을 걷는 것도 언제나 골목길로 잡아
때론 목적지와 반대로 걷길 다반사이고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다
물어물어 빠져나온 적도 많다
걷다 보면 대궐 같은 단독 주택 앞에 서서
높은 창문을 올려다보느라 목젖이 아플 때도
있는데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어야 하듯
그 주변엔 반드시 작고 누추한 서민 주택이 있게 마련이다
비탈지고 좁은 언덕길 양옆으로 작고 낮은 그리고
한없이 길게 이어 붙인 집들이 골목길 좌우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봄 여름 가을엔 부엌문 앞에 둔 크고 속 깊은
고무 다라이 안에 코스모스 맨드라미 채송화 등등
온갖 서민의 꽃들이 함박웃음으로 답하는 곳
겨울엔 반겨주는 꽃도 없고 모기장으로
방문이고 부엌문이고 죄 열어 두던 길옆 집들마저
꼭꼭 닫아걸고 아는 체 없이 냉냉한 곳
골목길은 좋다.
걷느라 숨도 차고 다리도 뻐근할 때쯤이면
골목 끝 집이 보이고
그 집은 길 쪽으로 마루가 나 있어
쉬어가기 좋아 반가운 나의 집아닌
나의 마루가 되었다.
마루와 붙은 단칸방엔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방문 앞 좁고 긴 노란색 마루에서 예전 내가 살던
살았던 예감이 드는 것이 너무나도 친근하고도
슬픈 감정이입까지 들게 해줘서 좋은 나의 마루다
폭이 좁아 하체가 큰 사람은 반 만 걸치게끔
된 마루
마루에 앉으면 등 뒤 문풍지 바른 방문 안에서
할머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뒤란 쪽 정지문 여닫는 소리
“거 누기요? 하고 물어주지 않은 할머니
아직도 하얀 창호지 바른 문에 까맣고 윤나는
동그란 문고리
할머니는 왜 이곳에서 혼자 사실까?
봄 여름 가을 할머니 집 앞에만 꽃이 없을까?
오래 사셨으니 그간 키우던 것도 귀찮아
다 뽑아 버리셨나 나처럼
그깟 고무다라이 속에 흙 퍼담아 나르고
비료 얻어다 줘서 고추 모 한두 개 심어 봐야
누가 따 먹는다고
집에서 그렇게 키운 것은
왜 그렇게 싱겁고 아무 맛도 없는지
고추, 상추 실파까지 죄다,
할머니 집은 시 땅이라서 돌아가시면
시에서 회수한다고 들었는데
요 며칠 할머니는 기척이 없으시다.
내가 사나흘 십 분씩 앉아 있었는데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어딜 가셨나
좁고 긴 마루가 있는 골목길 이 집이
내 마음에 들었는데
나는 골목길 인생
평생 좁은 곳 좁은 하늘 좁은 땅
작고 청결하지 못한 곳에서 몸의 세포가 자라고
스러지고 다시 생성되고
그러다 이젠 차차 소멸의 시기를 가는 나로선
어떤 맞춤한 유전적인 내 안의 성향이
이렇게 골목만 찾는 것 같다
돼지껍질 태우는 냄새
정어리 청어 굽는 냄새
국수 말이 멸치 육수의 배릿하고 씁쓸한 냄새
시커먼 어묵 솥에서 꼬챙이에 꿰인 제 몸들을
얼마나 불릴 수 있는가 시합하는 꼬챙이 끝에 묻은
담뱃진 같은 그을음까지 정겨움으로 보이는 내 시선
추운 저녁 무렵
미원 맛뿐인 어묵 국물을 마구 들이켜 대는
추레한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
문득 떠오른 글 귀하나 ..
사내는 제 앞에 놓인 밥상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거기엔 날 깍두기 한 접시
쿠릿한 냄새 풍겨대는 새우젓 한 종지와
거시랑물 (설거지물) 같은 멀건 우거지 국물 한 대접
아하! 참 그럴듯한 골목길 주점 풍경 그대로다
채만식 작가의 작품 속 서사였나 그랬지 아마,
골목길 인생만이 좋아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정답고도 달콤씁쓸한 골목길 이야기?
글쎄,
첫댓글 누부야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그관경이 눈앞에 펴쳐지는 생동감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하나 점점더 옛것이 그리워지는 삶의 무게속에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진답니다 ㅎ
제가 유년기를 천둥벌거숭이 처럼 뛰놀며 마냥 행복하게 지냈었던 제 고향 공주 시골집 툇마루가 생각납니다.
햇살 따스하던 봄 어느 날 봄 나물 뜯어 머리에 이고 가시다 울집 툇마루에 무거운 짐 내려놓고 잠시 쉬시며 이름모를 아주머님들이 제 손에 쥐어 주시던 싱아 맛같은 울운선님 멋진 글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
운선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옵소서
운치있고 정감어린 글
여러번 읽어야겠습니다 ㅋㅋ
그래서 내 맘에
골목길이 생기길
기도합니다
네 시골 향수 나네요. 잘 읽어어요
오늘은 시골장날 구경했읍니다.
기차타고 순천으로ㅡㅡ
장날풍경은 정말 시골풍경입니다 여러가지 나열해놓은 생선이며 아채,
과일은 제철의 넉넉함을 맛보이고 먹음직 스런 순대국집의 가마솥에는 추운겨울윽 바람이 하얀 김 사이사이 흐르고 지나가는 나그네는 침을 꿀떡 ㅡㅡ
아무래도 나는 촌놈 중에 촌놈인것걑읍니다.
시골 장터 마음에 푸짐함을 느낌면서 잔치국수의 주막에 넉넉한 한사발 하고 기차역에서 답글 씁니다.
모두가 엉거주춤 서있지만 모두가 시골의 냄새에 젖어있는것 같읍니다.
겨울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건강 조심하십시요
마치내가 그 골목길 천천히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것처럼......
어머니 품속같은 따스한 느낌 입니다~~~
콘크리트 빌딩숲 에서는 느껴볼수 없는......
사람사는 모습들..... 사람냄새나는 정겨운 풍경들......
참 좋습니다 운선님 ~~ !
먹거리 볼거리많은
재래시장이나 골목길
사람냄새가 정겹지요
글 잘읽고갑니다
고무다라이에 키운
맨드라미 봉숭아
가끔 접하면
발걸음 멈추게 하는
정겨움입니다
골목길보다
대로를 좋아하는 난
운전을 해서일까요? ㅎㅎ
미리 설날하려고
새벽부터 서둘러 방금 대구도착했어요
명절전후 움직이기에는
그 복잡함에 부대낌이
이제 힘들어서ㅠ.ㅠ
나는 어린시절에
들판에서 농부아가씨로 살았기 때문에
들판의 풍경이 보이는 마을에 살고파요.
들판길이 보고파~
우리 초가집에는 내 방이 따로 없는데,
내친구 순이는 순이방이 따로 있었어요.
순이2는 언니와 둘이서 방을 함께
쓰는데, 나는 내 방이 없었어요.
저녁 때가 되면
순이는 자기방을 따뜻하게 하려고
군불을 땠어요.
2023년,
야옹이들은, 내 방을
야옹이 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내 방을 갖지 못한 것으로 보여요.
정말로 이쁘다.
이 글을 거듭 읽으면서 나는 눈물이 살짝 난다.
아름다운 우리말, 토박이 옛말, 사라지는 우리말이 잔뜩 들어있기에.
정말로 잘 쓴 글이다.
저도 예전 시골에서 살던 때를 떠올립니다.
수십 년 전에... 지금은 모두 꿈꾸는 것 같지요.
엄지 척! 합니다.
어린시절
막내라고 잘 안붙여주는
언니 오빠들하고
같이 놀겠다고
담요 뒤집어 쓰고
뛰어다니던 골목길을 기억합니다.
어디서 이렇게 멋진 글을
맘껏 읽어보겠어요.
우리 운선님.
정말 감사합니다^~^♡
때로는 오롯하게 혼자만이 즐기며 옆도보고 뒤도보는 처음가는 길도 좋더라구요
오늘도 자연과 걷기하는 이 시간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골목길을 가본적이 없어도 눈에 그려지 듯한데, 글을 따라가 보는 그 풍경들이 왜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해진 골목길 모퉁이에 서서 나는
누군가 나를 기다리지
안나 뒤리번 거리다가
반달 만큼이나 날 닮은듯 내 얼굴을 쓰담아 본다 ㅡㅡ
밤은 깊어가고
추위는 얼굴 꽁꽁 얼리려하고
바지에 넣었던 손도
이젠 입김 호호호
귀를 잡는다
사무엘은 고도를 기다리면서 멍청해
졌지만 ㅎ ㅎ ㅎ
멍하니 투벅 투벅
내 잘곳은 어딘겨 ᆢ
숨바꼭질 놀이는 골목길에서 했지요~
우리동네는 아직도 여기저기 골목길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