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개의 표징, 회개의 여정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2026.10.2.연중 제26주간 금요일
욥38,1.12-21;40,3-5 루카10,13-16
“주여, 당신은 나를 샅샅이 보고 아시나이다.
앉거나 서거나 매양 나를 아옵시고,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으시나이다.”(시편139.1-2)
오늘 화답송 시편 139장은 제가 좋아하는 시편으로 빛나는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사실 눈만 열리면 모두가 스승이요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이런 회개와 더불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가 뒤따릅니다.
회개의 여정을 통해 날로 주님을 닮아 참 나의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궁극 목표입니다.
새롭게 생각나는 몇 가지 회개의 표징들을 나눕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지금의 레오 14세 교황도 저에게는 고마운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분주한 분이 교황일 것입니다.
하루하루 자기가 없는, 온통 주님과 교회에 내어 놓은 자기가 없는 공인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이
바로 빛나는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오래 전 <정주>라는 자작시도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산처럼 머물러 살면
푸른 하늘
흰 구름
빛나는 별들
아름다운 하느님
배경이 되어 주신다”<1997.8.11.>
무려 여기에서 29년전 이 시에 대한, 지금도 영구보존중인 <생활성서(1998.11월호;12쪽, 이혜정)>에 나오는
기자의 표현입니다.
“참 좋다. 하느님 안에 항구히 머물러 살면 그렇게 좋은 것을, 왜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리저리 헤매는 걸까.”
늘 거기 그 자리, 제 사랑하는 정주의 불암산은 저에게는 언제나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어제 방문했던 두 분 역시 저에게는 고마운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아랫집 친화력이 뛰어난 수녀님은 고백성사 차 다녀가면서 가져올게 없어 떨어진 밤 8개를 주워와 정성껏,
곱게, 정겹게, 깎아 놓고 갔습니다.
결코 잊지 못할 초유의 사랑 체험에 감동했고 몇 분에게 자랑을 한 후 오후 늦게 나눠먹었습니다.
또 한 분은 30년 이상 30대 중반부터 제 영명축일 전후로 고백성사도 볼 겸 방문하는 분으로
지금은 60대 중반이 된 분입니다.
그 사이 초등학교 남매 아이들은 모두 장성하여 가정을 이뤘습니다.
방문하자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저를 덥석 안고 “오래 사세요.” 말했고 저도 웃으며 화답했습니다.
“아, 자매님, 많이 발전하셨습니다. 더욱 발전하세요.”
저를 용감히 껴안는 모습을 빗대어 한 화답에 모두 유쾌하게 웃었으니 이야말로 <청담淸談의 유우머>입니다.
자매님의 30년 이상 한결같은 정성의 사랑이 빛나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이처럼 눈만 열리면 곳곳에 널려있는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요 회개 없이는 겸손도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회개의 여정에 충실해야
비로소 무지에서 벗어나 참 나를 아는 겸손의 지혜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참회의 회개와 자비송으로 시작하는 매일의 미사전례는 <회개의 생활화>에 얼마나 좋은 도움이 되는지요!
오늘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도 회개를 촉구하는 시편입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편95,7.8)
오늘 복음은 회개하지 않는 세 고을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합니다.
더불어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예나 이제나 무지한 인간의 본질은 변함이 없고 유일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행복선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불행선언이 예고되는 회개의 절박성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그대로 오늘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복음입니다.
사랑의 기적들이 의도하는 바도 회개에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 역시 선교사들은 물론 이웃 형제의 말을 주님 말씀으로 받아들여 회개하라는 뜻이겠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형제들의 배경에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자리하고 있음을 알라는 것이며, 형제들 하나하나가 주님 보내신
회개의 표징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욥기 38장은 온통 하느님의 욥에 대한 추궁으로 가득합니다.
“네가 누구냐?” 욥에 물으신 하느님은 자신을 <땅의 주재자, 바다의 주재자, 빛과 어둠의 주재자, 기후의 주재자, 하늘의 주재자, 동물 세계의 주재자>로 우주 만물 모두의 주재자로 선언하시며 욥의 무딘 마음을 두드리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마침내 주님은 “불평꾼이 주님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
욥을 꾸짖자, 지체 없이 깨끗하게, 참으로 쿨하게 회개하는 욥입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손을 제 입에 댈 뿐입니다.
한 번 말씀드렸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 말씀드렸으니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욥의 유구무언, 역시 회개의 참 좋은 표지입니다.
참된 회개에 참된 겸손입니다.
회개의 여정은 겸손의 여정이요 날로 주님을 닮아가면서 무지에서 벗어나 참 나의 실현에 이릅니다.
바로 이것이 참다운 삶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회개의 여정에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시편 139장 마지막 절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제게 위험한 길이 있는지 보아주시고,
영원의 길을 따라 저를 인도하소서.”(시편139,24). 아멘.
*참고; 로마 전례력에서는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9.29일 지내고,
10월2일에는 수호천사 기념일을 나누어 지낸다.
그러나 수도승 전례력에서는 대천사와 수호천사를 9.29일 함께 경축한다.
- 이수철 신부님 -

|
첫댓글 “주님, 제게 위험한 길이 있는지 보아주시고,
영원의 길을 따라 저를 인도하소서.”(시편139,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