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평생 죽음을 의식했던 뭉크는 예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87)
색을 표현해야 하는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저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 고흐는 그것을 영삼의 원천으로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냅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 말을 알코올 중독 수준이 너무 심각하다며 자신을 나무란 의사에게 했다고 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노랑을 보기 위해 자신을 속이며 압생트를 계속 마셔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던 반 고흐가 생명을 활활 태우며 꽃피운 대표작이 바로 <해바라지>입니다.
(116-117)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미술 천재 클림트. 고전주의 양식을 따라 그리기만
해도 마음 편히 먹고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타협하지 않고, 시대의 반항아로 살았습니다. 예술가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빈에도 꽃피우기 위해, 스스로 황금빛 창을 들고 아테나 여신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반발과 저항을 이겨내고, 결국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의 분리주의 정신은 곧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라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거장들을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되었습니다.
(130)
“자기신뢰야말로 용기의 초석이고, 자기신뢰는
위험이란 요소와 친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략) 용기란 고뇌하며
위험에 맞서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중략) 삶은 거센 물결과
고통을 헤치고 나아가는 투쟁이자, 끝없이 밀려드는 적들과의 투쟁이라고 했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이 각자에게 선사한 것을 즐기기 위해 홀로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열아홉 살 에곤 실레의 정신입니다. 자신이 자연에게 준 것을
삶에서 즐기기 위해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 위험을 기꺼이
껴안으며 투쟁하는 것. 그 의지는 끝내 그만의 솔직하고 뜨거운 예술 세계로 실체를 드러냅니다.
(163)
“예술가의 삶은 기나긴 고난의 길이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 길이리라.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로 떠나자. 그 길은 야생의 시를 간직하고 있다.” – 폴
고갱
(288)
“삶에서처럼 예술에서도 사랑에 뿌리를 두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 마르크 샤갈
(326)
“예술가만이 유일하게 창조 행위를 완성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을 외부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것은 관객이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작품이 지닌 심오한 특성을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써 창조적 프로세스에 고유한 공헌을 합니다.”
뒤샹은 작품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간파했고, 작품은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객을 관찰자가 아닌 창조자로 보았죠. 과거의 어떤 예술가가 관객을 이렇게 보았던가요? 그는 작품에 어떤
의미를 의도적으로 담기보다 의미를 열어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의미를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전시장은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생각의 놀이터’가 됩니다. 관객이
작품을 보며 자유롭게 생각의 놀이를 펼치는 창조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333)
어느덧 거장의 칭호를 받는 79세 뒤샹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예술가로 살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