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탓인지...늦은 밤까지 에어컨은 켜있고 TV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진다. 딸은 무엇을 하는지 테블릿PC를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아내는 불편한 자세로 잠깐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한다. "이젠 자야지..." 대답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아침부터 일이 트러지려고 그랬나 보다.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소녀상UCC를 찍는 현장에 도착하려 속도를 냈다. 그런대로 착착 맞아들어가는 시간이 좋았는데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딸이 아직도 자고 있는것이 아닌가? "지금이 몇신데...일어나 학교가라..." 듣고도 믿기지 않는지 시계를 보고는 이내 멍하니 앉아 있다. 잠시 후 일어나는가 싶더니 "쾅..." 자기방으로 놀란 토끼마냥 들어갔다.
전화벨 소리가 난다. 성급히 달려가 집어드니 바로 끊어졌다. 다시 핸드폰에서 전화벨소리가 들려온다. "학교 갔어..." "아니..." "선생님한테 전화왔어..." "알았어...준비해서 보낼께..." 하지만 꿈쩍도 안한다. 다시 전화가 오고 바꿔줬다. "라면에 물 좀 넣어줘..." 컵라면을 앞에 갔다 놓는다. 시간에 맞춰 UCC 촬영가긴 글렀다. 늘하던 설거지를 하면서 어제 저녁 먹다 남긴 음식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몇가지를 주섬주섬 먹었다. "학교 갔다 올께..."
"쌤... 어디 계세요..." "아직 집입니다..." "빨리 오세요..." 전화는 오늘따라 많이도 온다. 가는길에 운암 농협에 들려 건네주라는 신분증을 아내친구 책상위에 놓았다. "바쁜가 봐요..." 오른손을 들어 신호를 하고는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나왔다. 시청 소녀상 옆자리엔 꽃송이가 놓여있다.
"도착했어요..." "차 한잔하고 가죠...지하 일층입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울린다. "우리 아이가 과외를 못하게 되었어요..." "예...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통장잔고가 이렇게 비워졌다. 아직 10시밖에 안되었는데...
"필봉산 농성장에 몇번을 가봐도 없던데요... 만약 글까지 쓰지 않았다면 늘 그런 모습인줄 알았을 거예요..." "그곳에 있는것은...보여지는 모습을 신경써야 합니다만 쉽진 않네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약수터 앞에 앉아 시간에 따른 행동을 더듬어 본다. "일상이 매번 반복이지만 간혹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인 순간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눈에 내가 보여질 수 있을까?..."
어제 현수막 몇장을 손에 쥐고 나타난 대우해양조선 관계자들이 정의당 당원 모집 현수막 자리에 공사안내문을 걸어놓았다. 이들도 하청업체 건설노동자인데...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하겠다는 정당 현수막을 제거해도 된다는 자세가 실망스럽다. 만약 어제 정의당 현수막 관련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변화를 운명처럼 마주한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2016년 12월 초순...촛불항쟁의 목소리가 "탄핵"으로 국회에 제출되어 표결을 기다리던 때다. 오산시민행동이 '박근혜 구속 수사' 현수막을 걸고 롯데마트앞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할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이야..." 술 취한 건설노동자가 컷터칼을 쥐고선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경찰이 오고서야 행패를 멈췄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아침 일찍 인력사무소에 나갔는데 일배정을 못 받았어요...돌아오는 길에 술을 마셨는데 현수막을 보고 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일을 벌였습니다..." 듣고 있던 우리나 경찰도 사정을 이해하자고 다독이면서 정리되었지만 '왜 이래야 하는지...이런 대접을 받아도 아무말 못하는 것인지 묻질 못했다.'
"지금 어디세요?..." "필봉산에서 글쓰고 있습니다." 오늘 유난히 이곳에 오기 위해 많은 과정을 밟아야 했다. 조금 순조롭고 편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SUV차량이 공사현장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선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어디서 용기가 솓았을까... 발거움은 이미 사무실로 들어섰다. "8월1일부터 공사라고 쓰여있던 데요...어떻게 되는 겁니까?..." "터널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 도로 확장공사를 하는 겁니다..." 현장소장이 자신의 권한은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라며 도돌이표 발언을 계속 한다. '이들과 다시 부딧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정의당 경기도당 사무실이 있는 골든프라자 10층... "관리자가 바뀌면서 복도와 엘리베이터가 개선 되었어요..." 우중충한 모습으로 기억되던 건물이 새것처럼 깔끔해졌다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다. "오산환경운동연합" 방명록에 쓰고는 문상을 했다. 복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많은 젊은이들이 앞을 오고간다. 두눈이 충혈되어 슬픔을 억누르는 모습... "우리에게 아픔은 언제쯤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