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잘 아는 영화판 관계자들 이외에는 오달수와 오광록, 이른바 [양오]를 혼동하는 경우가 아직까지는 많다. 무엇이 그들을 비슷하게 만들었을까? 사실 자세히 뜯어보면 그들은 닮지 않았다. 그들의 외형적 공통점이 있다면, 오른편 코 밑의 점인데 그것도 위치와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더구나 오달수는 얼굴에 점이 하나 더 있다. 오광록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의 점이 수박씨라면 오달수는 해바라기씨라는 것이다. 그는 이 비유를 아주 재미있는 유머로 생각하고 들려주었지만 나는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잠복근무]의 조폭 두목 배두상처럼 클로즈업으로 잡고 독특한 뉘앙스로 대사를 했더라면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봐도 오달수와 오광록은 비슷해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화려한 스타의 그늘 밑에서 개성 있는 조역, 오히려 주역보다 더 돋보이는 조역을 하고 있다는 점, 연극판에서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며 생성된 살아있는 연기를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세속의 찌든 때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성북동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정말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를 인터뷰하다니. 술집이나 대학로 극장에서가 아니라 인터뷰하기 위해 그를 만나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영화사를 거치지 않고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곧바로 눌러 약속시간을 잡은 경우도 그가 처음이다. 청담동 근처에서는, 방송국이나 촬영장이 아니라고 해도 밤거리를 걷다가 아니면 헬스클럽이나 와인 바에서 배우들을 자주 만난다. 그러나 그가 이런 데 나타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장소로 그는 자기 집 근처의 카페를 추천했다. 성북동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천변풍경]의 소설가 이태준 선생의 한옥을 개조한 카페 [수연산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자세한 위치를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6년 전 우리는 연극을 함께 했었다. 우리는 연출자와 주연 배우로 처음 만났다. 연극 한 편을 올리고 나면, 같이 일한 사람들은 모두 한 식구가 된다. 서로의 은밀한 상처까지 보여주지 않으면 막이 올라갈 수가 없다. 연극은 마치 태초에 신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또 하나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창조의 고통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때로는 천정이 쩡쩡 울리도록 고함을 치기도 하고 발로 탁자를 걷어차며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갈등은 허구의 인물들과 그들이 겪는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오광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나는 책꽂이에 꽂혀 있는 장정일을 다시 꺼내야만 했다. 1999년 여름, 남산 감독협회에서 개최된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시사회가 끝나고 나는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 봐]를 영화화 한 그 작품은 가학과 피학을 부딪치며 체제의 완고한 금기에 도전하는 저항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옷을 어디까지 벗었는가 하는 문제는 호사가들의 관심에 불과했다. 그 영화는 한국 사회의 답답한 지배체제를 송두리째 조롱하고 비웃고 있었다. 매우 잘 만든 영화였지만 나는 불만이 있었다.
이미 그 원작 소설 자체가 외설 시비에 휘말려 출판 금지 되어 있었고, 작가 장정일은 구속되었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장정일이 [내게 거짓말을 해 봐]라는 작품을 왜 썼는지에 대한 이해가 영화에는 없었다. 나는 장선우 감독이 그것을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책 속에서 장정일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상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장 은밀한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 화법을 빌리지 않고 포르노적 상상력으로 위장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소설 속의 아버지는 주인공과의 개인적 혈연관계를 떠나, 우리 사회의 답답한 관료주의나 억압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아버지는 원작과는 달리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플래시백으로 삽입된 짧은 한 컷으로 아버지의 그림자가 비치는 정도였다. 내 생각에, 아버지라는 존재의 강압적 모습이 살아나지 않으면 그 영화는 프로노그라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설이 갖고 있는 가치를 올바로 밝혀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그것이, 구속되어 실형 선고를 받은 절친한 후배 작가에 대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장정일에게 전화를 해서 연극 공연의 동의를 받았다. 그리고 홍대 앞 극장 [씨어터 제로]를 운영하던 심철종을 찾아가 연극으로 올리자고 말했다. 곧바로 캐스팅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조각가 J 역을 맡을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 배우협회 수첩을 넘기다가 그를 발견했다. [허재비 놀이] 등을 통해서 그는 대학로에서 의식 있고 의미 있는 연기를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더구나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점이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원작과도 딱 맞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8월말, 더운 여름날이었다. 홍대 앞 피카소 거리 골목에 있는 술집이었다. 무용하는 후배가 가정집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국수집 앞 노상에, 우리는 탁자를 내 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그가 좁고 어두운 골목을 걸어왔다. 나는 마치 마른 짚더미가 비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얼굴은 어두웠고, 무척 말랐으며, 지금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힘을 주고 꽉 잡은 손에서 나는 청정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를 만나본 사람은 안다. 그가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얼마나 꼭 잡는지,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그의 인간적 관심의 표시다. 맞잡은 손을 통해 인간의 기운이 오고 간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교감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탐색전이 끝난 뒤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의 말은 느리고 낮았으며 목젖이 부르르 떨릴 만큼 울림소리가 강해서 듣고 난 뒤에도 여운이 지속되었다. 여름날 저녁의 바스라지는 햇빛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아직 세속에 무관심하고 적응이 안 된 환속한 스님 같은 분위기가 그의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그는 성북동 어디에 살고 있지만 배낭 하나 들고 여기 저기 떠돈다고도 했다. 그 이후 Y 역에 당시 서울예대 휴학 중인 이지현을 캐스팅하고 두 달 동안 연습을 했다.
대학로 연극판에서는 오광록이 [내게 거짓말을 해 봐]에 출연한다고 하니까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공연은 반응이 좋았다. 연장공연을 했고 지방공연까지 포함해서 2000년 2월말까지 4달 이상을 공연했다. 당시 여성신문 기자는, [소설도 읽었고 영화도 보았고 연극도 보았는데, 그 중에서 연극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연극 [내게 거짓말을 해 봐]는 노출 씬으로 관객들을 자극하려는 삼류 연극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해서 J의 내면적 상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의 고통의 근원을 드러내는데 영화와 차별을 두었다. 입소문이 나서 원로 연극평론가들도 여럿 극장을 찾았다.
그는 집중력이 아주 뛰어난 배우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배역에 대한 무서운 몰입이다. 우리는 자주 술을 마셨고, 그의 눈빛은 여전히 티벳이나 인도에 가 있었다. 삶의 욕망을 벗어 던진 무욕의 세계를 그는 그리워했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부러더스](2001년)에서 그는 떠돌이 음악인으로 등장한다. 임순례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그는 정말 떠돌이였으니까. 그를 처음 본 명필름 쪽에서는 [시나리오에서 걸어 나온 것 같다]고 반응을 보였다. 그 이전에 영화아카데미 2기인 배경윤 감독의 [눈 감으면 보이는 세상](1995년)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은 있지만 그 영화는 개봉되지 못했다. [내 특기 살려서 마음 놓고 느리게 한 작품이야]
[와이키키 부라더스]는 오광록의 첫 극장 개봉 영화다. 나는 아직 그가 카메라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과 함께 [와이키키 부러더스]를 보던 송강호는 [저 선배가 대학로에서는, 무대 위에서 고개만 옆으로 돌려도 의미가 있는 배우]라는 멘트를 던짐으로써 박찬욱 감독의 관심을 끌게 만든다. 결국 그는 [복수는 나의 것](2002년) 마지막씬에 캐스팅된다. 송강호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빼면서 움찔하는 장면은, 박찬욱 감독 스스로의 말에 의하면,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명장면이었다. 나 역시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드러난 한 컷이라고 생각한다.
[촬영 때 송강호 가슴팍에 칼을 꽂는데. 놀랐다. 찔리는 순간 나도 찔려버린 거다. 살해하는 순간 나도 살해된 거더라고]
오광록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에 모두 출연하는 유일한 배우다. [올드 보이] 첫 장면, 옥상에서 개를 끌어안고 자살하는 남자를 맡은 그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유괴 당한 아이의 아버지 역을 맡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코믹한 상황이 많다.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최고의 영화가 될 거야] 현장 편집으로 본 그 영화는 복수 3부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의 느리고 느린 말투, 독특한 화법은 산보를 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는 속도전의 시대에 느리게 사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흙에 두 발을 딛고, 산의 맑은 기운과 가까이하며, 인간의 숨결을 담아내기 위해 연기를 하고 시를 쓴다.
[텃밭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지금 내가 사는 집에 있는 텃밭이고, 열 평 정도 되나? 또 하나는 내가 예전 살던 데 성북동 저 윗쪽, 약수터 있는데 있어. 원래 절이 있던 자리인데 지금은 터만 남았지. 2001년도 식목일 날, 박해일이랑 몇몇이 모과나무를 심으로 왔어. 그래서 우리 밭이나 만들자고 해서 만든 거야. 땅 소유주는 따로 있는데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서 배추도 심고 오이도 심고 깻잎도 심어]
나는 [잠복근무]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김선아의 개인기가 돋보이는 영화였지만 오광록이 없었다면 영화는 정말 심심해졌을 것이다. 그는 경찰의 추격을 받는 조폭 두목 배상두로 나온다. 자신을 배신한 자들은 수술실 장갑을 끼고 가슴에 칼을 찔러 배를 가르는 잔혹한 캐릭터다. [처음에는 중국 삼합회 조직 두목같은 거였는데 전형적인 캐릭터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하기도 싫다. 그래서 요란하지 않은 클래식한 악당으로 가자. 명품 시계도 차고 실크 셔츠도 입고]
박광춘 감독의 [잠복근무]는 잘 만든 영화는 절대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배우 오광록을 선명하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시사회를 놓치고 일반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옆 자리에서 쉴 새 없이 팝콘과 콜라를 먹어대던 20대 후반의 남자가, 오광록이 [나 멋지지 않니?]를 읊조릴 때 거의 의자에서 쓰러질 듯 웃으며 [어디서 저런 캐릭터를 데려왔지?]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들었다. 투견장을 운영하는 조폭 배상두가 자신을 배반한 부하에게 일대일로 맞장 뜨자면서 웃옷을 벗어부친 뒤 주먹을 맞자 [쪽 팔리게]라고 내뱉는다. 오광록의 독특한 말투에 실리면 이 단어는 무시무시한 무게로 객석을 강타한다. [잠복근무]의 웃음의 8할은 오광록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는 시를 쓰는 것이다. [시가 없었으면 사람한테 지친 것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연극판을 떠났을 거야] 그는 연필로, 볼펜으로 시를 쓴다. 아직도 컴퓨터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면서 소형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이유는, 오랜만에 배낭을 열어보니까 예전에 노트에 쓴 시들이 고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광록의 다음 작품은 지난 3월 30일 크랭크인 한 윤태용 감독의 [소년, 천국에 가다]. 그는 4월 14일 박해일과 함께 첫 촬영을 한다. 그리고 얼마 전 유지태가 감독한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시사회가 있었는데 영화가 아주 잘나왔다고, 꼭 보라고 했다. 런닝타임이 45분인데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유지태 감독의 [자전거 타는 소년]하고 묶어서 극장 개봉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그는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에서 장님 침술사로 나온다. 젊은 여자가 성적 환타지로 그를 유혹한다. 역시 장님 침술사로 나오는 오달수와 연탄 숯불구이집 앞에서 연기하는 씬이 있는데, 오달수의 연기가 죽인다고 했다. 오광록은 말했다. [달수야. 나, 너 120점 준다] 나는 오달수와 오광록, 그들이 장님 침술사 연기를 하는 광경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당신이라면 10분 동안 안 웃을 자신이 있는가?
[작년에 평생 번 것보다 많은 돈을 벌었는데 다 나갔어. 그동안 도움 받고 살았으니까,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던 것들, 갚았지. 어려운 때라 나눠 쓰기 좋은 계절이야. 잘 나눔이 되었어]
그의 이 말을 번역하자면, 지난 해 영화를 찍으며 벌어들인 수 천 만원의 개런티를 주위의 가족 친지 선후배들에게 다 뿌렸다는 것이다. 즉, 지금 가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나는 개런티를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그는 지금 그가 영화에서 맡고 있는 배역의 중요도에 비해 훨씬 부족한 금액을 받고 있었다. [나는 최저치의 개런티를 말하는데 거기서도 깎더라고] 이렇게 물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개런티를 올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더구나 그는 자신이 번 돈으로 가난한 연극판 후배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제작자들이여, 제발 오광록의 개런티는 그가 부르는 액수에서 한 푼도 깍지 마라. 오히려 조금 더 올려주시라. 그것이 결국 우리 문화를 기름지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