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마련된 소극장(위)과 북 카페. |
이런 의문을 품고 서울 구로동 ‘넥서스커뮤니티’ 본사를 찾았다. 넥서스커뮤니티는 1991년 설립된 벤처기업. 각 기업이 운영하는 콜센터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로 출발, 현재는 CTI(Computer and Telephony Integration) 미들웨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네 피자집이나 치킨집에 주문 전화를 했다 직원이 “○○○고객님이시죠? ○○○아파트 ○○○동 ○○○호로 배달해 드리면 되겠습니까?”라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전화를 받는 것과 동시에 연결 컴퓨터에 전화를 건 고객의 정보가 상세하게 보이게 하는 ‘CTI 미들웨어’ 덕분이라고 한다. 고객이 몇 마디 하지 않고도 주문을 완료할 수 있어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전화 시간을 3분의 1로 줄이는 경제성 때문에 각 기업의 콜센터마다 이 시스템을 갖추는 중이다. 넥서스커뮤니티는 해외로도 눈을 돌려 중국・일본・대만・홍콩・미국 등지로 수출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매출도 매년 신장세. 2011년에는 매출 200억 원, 순익 50억원을 일궈 순익의 10%인 5억 원을 사회 환원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대기업 중에는 이보다 큰손도 많지만, 전 직원이래야 65명인 넥서스커뮤니티는 사회 환원을 기업의 중요한 기본 이념으로 삼고 전 직원이 생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나눔과 봉사가 형식적인 차원이 아니라 진짜 기업의 중요한 존재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직원들 한 명 한 명의 내면에서 나오는 실천이 될 수 있는지 양재현(49) 넥서스커뮤니티 대표에게 물었다.
경로식당 봉사. |
사회 환원할 자금은 어떻게 확보할 계획입니까?
“지난해까지는 순익의 1%를 내놓았습니다. 이 중 0.5%는 회사, 0.5%는 직원들이 부담했지요. 올해는 3%(회사 2%, 직원 1%), 내년에는 7%(회사 5%, 직원 2%)로 늘리고, 2011년부터는 10%(회사 7%, 직원 3%)씩 내놓을 생각입니다.”
직원들에게 기부를 강요하면 반발이 생기지 않습니까?
“2007년부터 예상수익을 다달이 계산해 매달 월급 외에 인센티브를 지급했습니다. 그때, 인센티브를 그저 가져갈 게 아니라 ‘뜻 깊은 일에 동참하자’고 했죠. 직원들 사이에 합의를 얻어 내기 위해 설명회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사회 봉사가 목적이었습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5년간 근무, 과장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퍼스널 컴퓨터끼리 네트워크가 막 시작될 때라 여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무궁무진한 기회가 보였습니다. 남 간섭 안 받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세 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1993년 IBM 등과 경쟁해 한국이동통신 전국 콜센터의 프로그래밍을 따 내면서 회사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CTI 미들웨어 개발에 집중했지요.”
적극적으로 사회 환원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회사 설립 후 7~8년은 기업으로서 생존하느라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그러다 뒤돌아보니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이 뭔지, 직원들끼리 공유할 기업이념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그게 있어야 직원들에게 목적의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우리 회사가 찾은 핵심 가치가 3C(지식창조(Creation), 지식순환(Circulation), 지식환원(Contribution)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모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식이 1000원을 달라고 하면 쉽게 내주지만, 100만 원을 달라고 하면 그걸로 뭐할 것인지 묻지 않겠느냐? 하나님도 마찬가지다’라고요. 몇 십억, 몇 백억씩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는 그걸 벌어 뭐할 것인지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수익을 내고 남은 걸로 사회 환원하는 게 아니라, 사회 환원을 하기 위해 수익을 내자는 목표가 그때 생겼습니다. 그게 우리 회사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콩 10개 중 7개를 먹고 3개를 땅에 심으면 수십 개가 열려서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원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시골학교 도서관 만들어 주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 |
사내 바자회, 축구대회로 봉사활동 기금 모아
이런 신념을 가지게 됐지만, 양 대표가 앞장 서서 직원들을 끌고 가지는 않았다. 2002년, 봉사에 관심 있는 직원을 모아 팀을 짠 후 이들이 주축이 되어 방법을 연구하게 했다. 10명이 자원했는데, 이들이 일과 봉사를 병행하느라 어려움을 겪어도 사장은 한발 물러서 지켜볼 뿐이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야 길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법체류 몽골인의 자녀들을 돕기로 하고, 기금 마련을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 냈다. 안 쓰는 물건을 기증받아 경매 방식의 사내 바자회를 열면서 김밥, 떡볶이, 샌드위치, 추억의 도시락까지 만들어 와서 같이 팔았다. 다트나 동전 던지기 등 게임 쿠폰도 팔았다. 그렇게 마련한 기금으로 몽골 아이들의 학교에 필요한 피아노와 책상, 책 등을 구입했다. 몽골 아이들을 롯데월드나 전시회, 바다에 데려갈 때는 다른 직원들도 동참시켰다. 넥서스커뮤니티는 직원 대부분이 20~30대인 젊은 기업. 아이들의 든든한 언니, 오빠가 되어 주겠다는 의미에서 봉사단 이름을 ‘큰바위얼굴’이라 지었다.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인 컴패션을 통해 외국 어린이들과 1대 1 결연을 할 때 참여한 직원은 35명. 먼 나라에서 보내온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며 직원들은 “내 작은 관심과 정성이 그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와 힘이 되는지 실감한다”고 말한다.
봉사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왼쪽)와 해외 결연 어린이가 보내온 편지(오른쪽). |
사회 환원 활동은 ‘재미’라는 요소와 결합해 유쾌하고 즐겁게 이루어진다. OB와 YB로 나눠 사내 축구대회를 하는데, 이때 골이 터질 때마다 회사가 10만 원씩 내고 진 팀이 두당 1만 원씩 내서 모은 기금으로 책을 사서 시골학교에 도서관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양 대표는 “사람 마음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더라고요. 선천적이든 부모님의 영향이든 좀 더 봉사정신이 있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더라고요. 어쨌든 이런 활동을 계속하니 3년 전부터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올해는 전 직원이 몸을 움직이는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돌아가면서 구로종합사회복지관 경로식당에서 배식과 설거지, 청소를 하기로 한 것. 돈만 내놓는 게 아니라 내 몸을 움직여야 봉사의 참뜻을 체득하기 때문이다.
넥서스커뮤니티에는 그 외에도 독특한 문화가 많다. 출입문을 통과하자 마자 브로드웨이 거리처럼 만들어 놓은 복도가 우선 눈에 띈다. 독특한 분위기의 회의실 이름도 ‘미스 사이공’ ‘캣츠’ ‘블루 노트’ ‘레미제라블’ 등 뮤지컬 제목들이다. 60여 석에 이르는 소극장이 회사 안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북 카페, 테라스 카페까지 갖춰져 있다. 소강당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거나 연주회를 하고, 북 카페에는 소설부터 인문학, 경제학, 자연과학 등 장르를 망라해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서로 추천하는데, 양 대표가 추천하는 책은 아예 ‘CEO 공감도서’라는 별도 코너에 꽂혀 있다. 이 회사에는 밴드, 사진, 익스트림 스포츠 등 동호회가 조직되어 있는데, 양 대표도 록밴드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대학 시절에는 록밴드의 보컬이었는데, 지금은 보컬 자리를 뺏겨 트럼펫을 불고 있다고. 직원들이 전문 배우들과 함께 뮤지컬을 제작해 신제품 발표회를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 회사 직원 대부분이 공대 출신이에요. 기술이나 도구 활용에 능하죠.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디지털 세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면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 디자인 감각까지 갖춰야 합니다. 다양한 문화적 자극이 필요하지요.”
이상주의자로 보이는 그의 실험이 결실을 맺어 새로운 기업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사진 : 김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