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역은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인데 반하여 평역이란 원본에 없던 것을 구성해 넣거나 있는 것을 줄이는 등, 번역자가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나름대로 원본을 고쳐 번역한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역자의 실력이 더 중요하지 삼국지 같은 것은 정역, 평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문열씨의 책을 권해 드리고 싶군요.
[삼국지]는 한(漢)나라가 몰락해 가는 때부터 남·북조 시대가 등장하는 때까지, 즉 서기 184년부터 280년까지 약 1백여 년 간의 변화무쌍한 중국 역사를 다룬 소설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삼국지]는 원래 진수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를 나관중이 다시 풀어 쓴 [삼국지연의]. 그러니까 진나라 때 사람의 역사서를 천년도 넘어 14세기 원나라 말 명나라 초에 살았던 사람이 쉽고 재미있는 연의(演義) 형식으로 풀어 쓴 책입니다. 따라서 삼국지의 안팎은 첫째, 실제 있었던 위·촉·오 삼국의 쟁투, 둘째, 이와 관련되어 천년을 넘어 전해 온 해당 지역의 전설과 설화들, 셋째, 이들을 다시 엮어서 재미있게 풀어 쓴 연의라는 세 겹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삼국지]는 옛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려 왔으며, 20세기에 들어서만도 [천변풍경]의 소설가 박태원 님을 비롯하여 박종화, 김동리, 김홍신, 이문열 님 등이 번역하거나 재해석하여 소개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면서 작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는 무대로서 [삼국지]가 안성맞춤이었음을 뜻합니다.
특히 이문열 님의 {평석 삼국지}는 작가의 뛰어난 필치와 무게 있는 해석에 힘입어 무려 10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크게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면면을 제목만으로라도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1권: 도원에 피는 의(義), 2권: 구름처럼 이는 영웅, 3권: 헝클어진 천하, 4권: 칼 한 자루 말 한 필로 천리를 닫다, 5권: 세 번 천라를 돌아 봄이여, 6권: 불타는 적벽(赤壁), 7권: 가자, 서촉으로, 8권: 솥발처럼 갈라선 천하, 9권: 출사표, 드높아라 충신의 매울 열이여, 10권: 오장원에 지는 별 등.
[삼국지]는 굳이 인물에만 한정하여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관련되는 전설과 설화를 연계하며 [삼국지]를 ‘넓게’ 읽어 보거나, 수많은 작가들의 여러 [삼국지]들을 비교하며 ‘깊게’ 읽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삼국지]가 과연 동양의 고전이라 할 수 있을까 엄격히 비판적으로 읽어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삼국지]는 민중들을 완전히 외면하고 몇몇 영웅들에만 초점을 맞춰 서술하는 등 봉건적인 가치관을 주조로 하고 있으니까요.
요컨대 [삼국지]는 역사서와 민간전승(전설과 설화 등), 그리고 소설(연의)이라는 세 가지 맥락에 걸쳐 형성되며, 다시 우리에게 여러 국내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소개되어 왔습니다. 이를 정확히 알고 [삼국지]를 깊고 넓게 읽어간다면 이번 여름은 여러 오묘한 맛들을 한껏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