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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맛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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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리마인드(자유게시판) 스크랩 서로의 가치관과 시선 미수다 베라의 ‘잠 못 드는 서울’을 읽고
아란도 추천 0 조회 95 09.09.04 11:0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인터넷이 들끓는 것 같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 졌습니다. 혹 다시 불을 지피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어 잠시 고민해 보기는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간단한 느낌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한국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덤비는 지하철에서의 자리 전쟁, 새치기 문화, 아직도 외국인을 신기하게 보는 한국인의 시선들, 영어에 대한 핸디캡, 넘치는 교육열, 세계 어디다 내 놓아도 단연 돋보이는 음주문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베라는 1년여를 한국에 살면서 우리의 대표적인 치부들을 골고루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외국인이 어쩌면 우리가 익숙해져서 무심코 지나치는 일들을 더 정확히 볼 수도 있습니다. 저도 남의 나라에 와서 살아보니 이 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눈에 쏙쏙 들어오더군요. 특히 처음 1,2년은 안 좋은 면만 크게 확대되어 보여서 이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베라의 경험들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에는 나쁜 면만 보여주지는 안았습니다. 홍대입구를 중심으로 한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우리나라 예술의 수준을 높이 평가했고 스스로도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아시아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선 한류를 소개하는데도 많은 페이지를 할애 했더군요. 한복과 태권도와 찜질방, 독일인과 다른 한국인의 특이한 휴가문화 등등이 베라의 눈에는 흥미롭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처음 삼분의 일 정도는 잔뜩 인상을 쓰게 만들더니 나중에는 점점 미소 짓게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 사람들에 한해서겠지요. 독일인들에게는 그 반대의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흥미로운 것 같더니 점점 지루해진다고. 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을 좋게 묘사한 부분이 나타나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동안 인터넷에 떠돌던 말들은 이 책에 나온 내용 중 가장 우리가 기분나빠할 수 있는 부분만을 뽑아내었고 또 여러 가지 오역과 없는 이야기들도 떠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은 바로 ‘잠 못 드는 서울’에서 베라가 지적한 한국인의 민족주의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지요.


책을 읽으며 인터넷에 떠돌던 부분들에서는 정작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보고 느낀 점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니까요. 또한 그녀는 그 사실들을 담담히 써내려갔을 뿐이지 좋다 싫다 평가하는 데는 조심성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단락이 있었습니다. 기분 나쁘고 아프지만 새겨 두어야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상략

                                                                                       .

옷 잘 입기로 유명한 젊은 여배우가 런던의 명품상가를 소개하는 프로가 있었다. 그 프로의 마지막에 그녀는 “I love London”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사서 카메라에 보여주며 “I love Londen, But I love Korea more”라고 말했다. 만일 독일 여배우가 이와 같은 말을 했다면 그녀는 공개적인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

                                                                                    중략

                                                                                       .

독일에서 왔지만 독일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내게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낮 설게 다가온다. 민족주의는 언제나 강한 파워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그 폐쇄성으로 인하여 구시대적인 갈등을 다시 불러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나친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한국이란 나라를 전통과 모더니즘 사이에 가두어 두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중국과 일본, 한국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서구 열강들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나 지식인들의 머릿속에 조차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끝없이 보수적인 민족주의적 사고 때문일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


베라는 자신이 한국에 있는 이유를 묻는 다면 두말 않고 남자친구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성해방을 외치는 21세기 여성답지 않은 모습이라 해도 그녀는 ‘선택의 자유도 여성해방’이라며 사랑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몇몇 소중한 친구들과 미녀들의 수다에 처음 출연했을 때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소개했고 책의 마지막에는 한국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한국의 일상은 역동적이고 스릴 넘치고 늘 분주하지만 단조롭고 지루하지는 않다. 한 나라의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관찰한다는 것은 내게 아주 매력적인 일이다. 내가 아는 한국은 더 이상 한국전이 생각나는 나라가 아니고 수많은 어린이를 해외로 입양 보낸 국가도 아니다. 88 올림픽의 시대를 떠올려서도 안 되지만 아직 이상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미래의 한국은 분명 자유가 넘치고 통일된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베라의 책 ‘잠 못 드는 서울’은 흥밋거리 정도의 가벼운 내용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한국이 이제 곧 선진국으로 가는 막바지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턱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래 정식으로 리뷰를 써보았습니다. 이 리뷰는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책을 구입하는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베라의 책 ‘잠 못 드는 서울’의 리뷰로 올릴 생각입니다.


‘잠 못 드는 서울’을 읽고


이책을 읽고 나니 11년 전 처음 독일 와서 1,2년 동안 내 눈에 들어왔던 생경한 독일이 기억난다. 버스정류장에서 슈퍼마켓에서 대 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백조의 호수에 뛰어든 미운오리 새끼를 바라보듯 힐긋거리던 싸늘한 노인들의 눈빛과 산책길에서 만난 아이들이 ‘싱샹송’이라며 중국인 이라고 놀려댔던 일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무슨 큰 권력이라도 잡은 듯 유세를 부리며 비자를 연장하러 오는 사람들이 약간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식민지 원주민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제국주의 경찰의 흰 이를 드러내며 마음 놓고 언어폭력을 휘두르곤 했던 공무원들. 그들의 폭력을 본 날, 혹은 들은 날이면 나는 독일인의 피에 지금도 흐르고 있는 나치의 잔인함을 생각하며 치를 떨곤 했다.


틈만 나면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식탁에서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세게 코를 풀어대는 어이없는 식사예절. 하루 종일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 집을 지키며 창밖만 내다보던 80 노인의 눈빛에서, 딸자식과 사이가 안 좋다며 결혼에도 가지 않고 평생을 만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던 옆집 할머니에게서 극에 달한 개인주의와 그로인해 메말라가고 있는 독일을 보았다.


선진국이라 생각하고 찾아온 나라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은 한국의 80년대 추리한 모노톤의 촌스러움 그 자체였고, 속옷과 양말은 으레 한국 것이 아니면 입고 신을 수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너희 나라에는 이런 옷 없지?’라고 아직도 유럽이 세계의 중심임을 의심치 않는 눈빛으로 상냥하게 물어주던 백화점 점원의 눈빛에서, 공부 없는 세상에서 점점 무식해져 가고 있는 국민의식수준에서 이 나라도 머지않아 저녁의 나라에 합류하게 되리라는 것을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처음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독일인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저한 반 민족주의를 통해 나치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대단해 보였고, 틈만 나면 자기자랑을 늘어놓고 있지만 남의 장점도 시원하게 칭찬하고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공부보다 독일인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가 본 한국은 내가 독일에 처음 왔을 때 본 1,2년 동안의 독일처럼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이다. 물론 그 모습이 바로 가감 없는 한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리한 관찰에 비해 이 책의 어디에서도 진정 한국인을 알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독일에는 없는 정서, 없는 언어, 바로 ‘한’이라는 말이 있다. ‘한’은 슬픔이다. 그러나 그 슬픔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남에 의해 새겨진 운명 같은 슬픔이다.


남을 침략해 본 적은 있지만 침략당해 보지 않은 민족, 명랑한 국민가요만 듣고 자란 젊은 독일 여인, 이 책의 저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요, 공감하기 쉽지 않은 정서다. 공감하기 쉽지 않겠지만 한국에 대한 책을 준비했다면 특히 단순한 여행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단면들을 조명하려 했다면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 보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 부족한 이해가 한국의 음주문화와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에 정확히 드러난다. 세계에서 알코올 소비량이 가장 많다는 한국 사람들이 사교를 위하여만 술을 마신다는 것은 너무 표면적인 시각이다. 일제와 군부독제와 권위적인 사회에서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술이었다. 술 취하는 분위기에 익숙한 한국인의 문화는 ‘한’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독일인은 민족주의를 통해 피를 부르는 전쟁을 일으키는 역사의 죄인이 되었지만 한국인에게 민족주의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때문에 지금 독일인의 민족주의는 밀폐된 공간에서 귓속말로만 존재하는데 반해 한국인은 만천하에 목청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민족주의를 내세워 지켜 내야 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는 아니다. 독일처럼 먹고 살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짓밟히던 시절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지금도 의식의 밑바닥에 살아있기 때문에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채식주의에 관한 작자의 불이해도 단편적인 시각에서 나온 것 같다. 한국은 본래 채식주의 나라다. 육식이 일반인의 밥상에 자연스럽게 올라온 역사는 반세기도 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 전체는 채식가들이었다. 또한 한국인의 밥상은 여러 가지 반찬을 각각의 그릇에 담아두고 뷔페식으로 먹기 때문에 채식가를 위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 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간간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몰이해에서 오는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작가가 본 한국, 나름대로 진지하고 재미있었다. 이 책은 독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나 적어도 어떤 경위로든 한국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어 보다는 한국어로 출간되었다면 더 반응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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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9.04 14:26

    첫댓글 낮선 곳에서의 경험은 먼저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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