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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나자로십자가
얼마 전에 러시아 쌍뜨빼쩨르부르그에서 오랜 지인의 딸이 한국을 다녀갔다. 광화문에서 만나 콩국수를 함께 먹고, 덕수궁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더니, 요즘 수심이 가득하다고 했다. 지난 봄에 아들이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징집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전선에서 들려오는 전황(戰況)을 접할 때마다 어머니는 혼이 나간 듯 힘들어 한다고 했다.
나탈리아 선생은 남매를 두었는데, 그중 오빠가 올해 50세이다. 여동생의 말이 “우리 오빠는 배가 많이 나온 아저씨입니다. 그런데 징집이라뇨?” 그만큼 러시아 국방부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쟁에 동원될 것을 피해 국경선 너머로 도망한 젊은이들이 100만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50세, 중년의 나이에 징집되었으니 어머니와 그 가족의 근심은 얼마나 클까? 비록 최전선은 아니고, 제3전선에 배치되었다지만, 여차하면 일촉즉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러시아 노래 로망스는 애잔하고, 가슴을 아릇아릇 벼리는 감정이 녹아있다. 러시아 겨울의 길고 긴 밤과 추위, 가난, 농노의 삶, 차르가 벌인 숱한 전쟁,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 등 고단한 삶과 아픔이 노래에 배어난다. 러시아 사람들의 고통은 지금 21세기에도 계속되는 셈이다. 러시아 민중의 애한(哀恨)의 정서는 러시아정교회의 음악과 예배 그리고 십자가에도 새겨져 있다.
폴란드 단찌히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양철북>(귄터 그라스)은 러시아 십자가의 존재를 알린다. 주인공 소년 오스카가 본 성심(聖心)교회 내부는 마치 십자가 전시장과 같았는데, 거기에 러시아정교회 고유한 십자가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가, X자형 십자가에 못 박힌 안드레(그래서 안드레 십자가라는 말이 생겨났다)가 너를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 밖에도 라틴십자가 또는 수난의 십자가와 나란히 그리스십자가가 있다. 이중 십자가, T자형 십자가와 계단형 십자가는 직물이나 그림 그리고 책에 묘사되어 있다... 저 러시아의 십자가는 나자로십자가로도 불린다”(<양철북1> 민음사, 213-214).
나자로(나사로) 십자가는 러시아정교회 십자가의 이름이다. 성심교회 안에 전시된 고대 그리스도교 십자가 전통과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에서 나자로십자가 형태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나사로는 병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베다니 사람이다(요 11:43-44). 정교회는 12축일 중 하나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성지주일 전날을 ‘나사로의 토요일’로 기념한다.
러시아정교회 십자가의 기본형은 3개의 가로대이다. 3단 십자가는 맨 위에 죄명(요 19:20)을 새겨 넣은 명패, 가운데는 두 팔을 벌린 가로대, 맨 아래에 비스듬히 놓인 발판이 있다. 발판이 비스듬한 이유가 궁금하다. 전설에 따르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때 골고다에서 지진이 일어나 받침대를 잃어버렸다고도 하고, 또 예수님의 다리가 약간 짝짝이였다는 설도 있다. 비교적 정확한 근거는 성 안드레의 ‘X’자 형 십자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성 안드레는 정교회의 초대 교황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러시아정교회 십자가마다 그리스도의 발아래 해골 형상을 새겨 넣는다는 점이다. 해골의 주인공은 아담이다. 15세기 화가 마사치오(1401-1428)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에 그린 ‘성 삼위일체’에도 십자가 아래 해골을 담은 석관이 있다. 그 역시 처음 인간 아담을 뜻한다. 해골이 십자가 아래 있는 것은 아담처럼 누구나 맞이할 죽음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고전 15:22).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키예프공국 블라디미르 대공이 동방정교회의 세례를 통해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한다. 슬라브의 문명이 그리스도화(化) 한 출발점은 현재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남서단 헤르소네스 해안의 세인트블라디미르 성당에서이다. 몽골의 침략으로 키예프 공국이 망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이 세워졌고, 러시아인의 신앙 전통이 이어졌다.
1453년 동로마제국의 수도이며 동방정교회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 튀르키예 모슬렘 군대에게 멸망 당한 후 러시아정교회는 비잔틴교회로부터 독립하였다.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를 자처했는데, 라틴계 이단에게 굴복한 제1로마와, 이슬람에게 희생된 제2로마인 콘스탄티노플을 승계했다는 의미에서다. 1589년 러시아에 총대주교 관구가 설립되면서 국가별 이름을 앞에 두는 정교회 전통에 따라 러시아정교회로 불린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천년이 넘도록 러시아인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신앙의 중심이었다. 슬라브 사도들에 의해 그리스정교회가 전파된 이래 러시아인의 세계관은 언제나 정교회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하고 장엄한 의식은 먼저 상류층의 관심을 끌었고, 곧이어 러시아 민중의 삶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러시아다움은 양파형 돔 교회 양식과 안드레이 류블로프(1360-1430)로 대표하는 성화상(Icon) 그리고 나자로십자가이다.
한동안 동로마교회는 성상숭배를 금지했지만,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교회들의 대표적인 성화 작품인 ‘이콘’에는 찬란한 비잔틴 그리스도교 미술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엄격하고 금욕적인 성인의 모습을 표현한 성화상은 전례 의식과 함께 정교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성화상은 그 자체로 감정과 생명이 있는 성인과 동일시되며, 속죄된 창조물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러시아정교회 영성 전통으로 ‘스타레츠’가 있다. 성령은 인간에게 남아있는 하나님 형상을 발현시키는데, 스타레츠는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간직한 자 또는 하나님의 형상이 카리스마로 나타난 자를 뜻한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지닌 성자의 이콘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면서, 자신들도 성화 되기를 갈망한다. 스타레츠의 복수형인 스타르쯔이(startsi)는 동방 교부의 전통을 이어받은 러시아 교회의 아버지를 일컫는다.
러시아를 여행하면 성화상을 경배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정교회 성당은 물론 공항의 기도실과 심지어 미술관에도 있다. 러시아인들은 일상생활은 물론 병들었을 때나 임종과 같이 위기의 순간을 맞을 때마다 이콘을 향해 절하고, 만지고, 입맞춤으로써 위안과 회복을 기원한다. 지금 러시아는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그들에게 평화는 아득히 멀고, 전선(戰線)은 너무나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