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계 풋내기
/시마다 마사히코[일본]
1
맨 처음 정신과에 진찰을 받으러 갔을 때 ‘이곳에 철학 선생님이 계십니까?’하고 접수 창구에 물었던 탓인지 그 병원의 간호사들 사이에서 나는 ‘데짱(철학 소년)’이라는 별명으로 통하게 되었다. 그 후 양친의 완강한 고집과 형의 열성적인 권유에 의해서 일본을 떠나 파리로 유학을 왔는데,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인해 유태계 폴란드인 루드빅 펜만 씨를 만나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데시앙이라고 합니다. (Enchantè Je m'appelle Thèchien)”
결국 나는 파리에서의 일 년 동안 마치 심부름하는 개의 이름과 같은 ‘데시앙’으로 통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펜만 씨의 아파트에 방을 하나 얻었고, 급기야 그와 사제관계 같은 것을 맺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펜만 씨는 나의 비뚤어진 사고 회로를 보다 자유롭고, 보다 능동적인 것으로 개량시켜준 가장 뛰어난 기사인 셈이었다.
2
‘망명 안정소(The Exile Security Act)’라는 자그마한 사무소는 샹 드니 거리의 한 구석에 위치한 필름 X(포르노 영화관)의 위층에 있었는데, 형은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펜만 씨는 그 사무소의 보스였다. 그는 소련이나 동구로부터 프랑스로 망명해 오는 유태인을 도와주거나,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유태인이 이스라엘이나 그 밖의 나라로 이주하는 데 필요한 수속을 대행해주는 ‘이주 대행사’에서 근무하다가 삼 년 전에 독립해서 현재의 사업으로 확장했다. 그리하여 대상을 유태인에서 이주 희망자 전체로 넓혀 인종 차별 없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알선해주었다. 요컨대 국경에 얽힌 문제라면 어떤 문제든 가리지 않고 취급했던 것이다. 형은 그 사무소에서 일본인과 미국인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망명 안정소’라는 것은 실제보다 과장된 명칭이었다. 기껏 자질구레한 일을 다룰 뿐, 정치적인 문제의 처리까지 떠맡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펜만 씨는 나름대로 자랑스러워 할 만한 몇 가지 일을 처리했다. 가령 아르메니아인 첼리스트의 파리 이주를 도와주었던 일이며, 불가리아 국적을 가진 터키인 역도 선수―그는 올림픽 우승 후보였다―가 터키로 이주하도록 발판을 마련해주었던 일이며,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의 은닉 재산을 스위스의 한 지하 은행에 예치시켰던 일 등을 그가 했던 것이다.
한편 형은 걸핏하면 ‘미국인과 일본인의 의식에는 망명이라는 개념이 없어’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가 하는 일은 대개 일본에서 온 텔레비젼 방송국 직원들의 로케이션이나 취재를 코디네이트하는 일과 일본인이나 미국인을 상대로 여행 가이드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의 그런 일은 내 손을 빌려야 할 만큼 바쁘지 않았기 때문에, 나한테는 펜만 씨의 시중을 드는 역할이 주어졌다. 말 그대로 심부름하는 개의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중드는 수업을 쌓기 위해서 파리의 변두리까지 왔다고 한다면 어지간히 할 일 없는 놈으로 비칠 테지만, 나의 파리 체재는 병의 치료가 주된 목적이었다. 그것도 나 자신의 목적이 아닌 양친의 목적이었다. 아니, 그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음울하기 짝이 없는 정신 이상자를 집에서 쫓아내려고 획책한 그들의 음모였던 것이다. 내가 파리로 오기 전 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 파리에 크리스테바라는 유명한 정신분석의 마담이 있는데, 펜만 씨와는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니까 소개받을 수 있을 거야. 야, 네가 그토록 유명한 크리스테바한테 진찰을 받을 수 있게 되다니 정말 부럽구나. 나도 당장 병에 걸려버렸으면 좋겠어…….
나는 언젠가 그 편지 내용을 들먹이며 따졌다. 그러자 형은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펜만 씨는 분열증 환자를 위해 ‘시중들기 요법’이라는 것을 개발해낸 사람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명의란 말이야.”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을 믿을 만큼 어리석은 내가 아니었다. 형은 이곳 파리에서 수년 동안 살면서 그와 비슷한 곤경에 빠질 때마다 그런 식의 변명으로 일관했던 모양이었다. 눈매를 보아 형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처음 반 년 동안의 내 생활은 1929년의 대공황 상태,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의 일을 기억해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얼마든지 고문할 수 있으리라. 나의 머리는 깨어진 그릇조각들로 가득 찬 풍선이었다. 따라서 맥박이 뛰거나 숨을 내쉴 때마다 그릇조각들이 서로 부딪혀 금방이라도 풍선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의 신경과 혈관들은 잘못 조율된 무수한 현이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한마디의 말을 내뱉거나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불협화음을 이루며 온몸에 울려퍼졌다. 그런 판국에 나의 면역 체계는 외부로부터 침입한 잡균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지친 끝에 시들어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이를테면 내 몸은 곤충을 기르기 위해 만들어진 빈 상자처럼 온통 구멍 투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구멍을 통해 죽음이나 범죄로 나를 유혹하는 파괴적인 충동과 함께 타인들로부터의 악의를 비롯하여 배기가스나 마늘냄새 나는 입김, 혹은 먼지와 휴지 조각 같은 것들이 들어오곤 했다. 전면적인 무질서!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나’라고 하는 직소 퍼즐을 다시 한번 질서있는 형태로 짜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질 뿐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내 자신이 산산이 분해되지 않도록 외부와의 교통을 잠시 차단해야 할 필요를 강박관념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있었던 걸까?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자신이 이제 곧 죽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 자신을 나로부터 추방하려고 하는 모사꾼이 내 몸 속에 잠재해 있다는 착각―아니, 그때는 확신이었다―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랬을까? 하지만 애당초 근거 따위는 없었다.
늦가을 오후 블로뉴 숲을 걷는다. 모피 코트를 입은 창녀가 20미터 정도 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앞으로 여민 모피 코트를 활짝 젖혀 풍만한 가슴을 흔들어댄다. 순간 내 중추의 스크린에 투영된 것은 그녀의 입 속에 든 나의 성기가 아니라 멋있게 가지를 내뻗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나의 목이다. 혹은 저녁 무렵의 샹드니 거리를 걷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나의 걸음은 느려진다. 나의 의식과 육체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의식 쪽이 아무리 애써도 한 걸음 뒤쳐지는 탓에, 멈춰 서서 그 어긋남을 원래대로 해두지 않으면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다.
아, 이따위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자. 이런 유의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한이 없다. 건강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경우 나의 체험 따위는 저급한 실존철학의 미끼 같은 것으로, 과잉의 자기 방어가 그러한 착각을 일으킨 원흉이라고 단정하리라.
적어도 그 무렵까지 나의 인생은 무수한 거부 반응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내가 식중독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라든가,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든가,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는 식의 사정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보다 더 심각한 사정이 내재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나의 유전자가 열악한 것이었다는 점에 귀결될 것이다. 어떤 개인을 개인답게 만드는 것이 유전자라는 식의 사고방식에 나는 결코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 꼴같잖은 설에 대항해서 이렇게 주장할 작정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일밖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와 나의 유전자는 전혀 별개의 존재다. 유전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나라는 기계를 이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유전자가 나를 단념한다면 그 순간부터 나는 고철 덩어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의 유전자와 교제하고 있다.
더구나 나는 그 유전자란 녀석을 갑종 잡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어야만 하는 처지다. 그 녀석은 다른 우수한 유전자와 비교해 유달리 미묘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나로 하여금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죽을 때까지 그 녀석에게 혹사당할 것을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 머리가 휙 돌아버릴 것만 같다. 아울러 그 녀석이 바로 내 양친의 유전자로부터 합성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머리가 돌다 못해 아예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파리를 향해 출발하기 이 주일 전 나를 진찰했던 의사는 양친한테 이렇게 말했다.
“상당히 논리적으로 시달려온 환자군요. 아드님은 유전자에게도 인격이 있다고 믿는 모양이에요. 그야말로 아주 복잡한 이중인격이지요. 스스로 생각한 것에 육체가 휘둘려지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런 것은 분열증 환자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지요. 하지만 아직 입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물론 원하신다면야 지금 당장이라도 상관없지요. 그런데 제 생각엔 입원시키기 전에 여행이라도 가도록 하는 게 어떨까 싶군요. 자기 자신의 바깥 세계로 눈길을 돌리는 훈련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여행을 갈 경우엔 역시 보호자가 따라가는 편이 좋을 거예요.”
나는 내 자신이 병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신과를 다니며 통원 치료하는 것을 구태여 싫어하지도 않았다. 거기에 가면 묘한 평온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독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여서 오히려 좋았다. 더구나 환자들 가운데 기품 있는 미녀도 있어 은근히 즐거웠다. 그녀 앞에서는 대개의 간호사들이 무척 초라해보였다. 나는 간호사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꼴도 보기 싫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환자가 아니라는 한 가지 사실에 있어서 긍지를 확보한 차별주의자들인 셈이었다. 단테의 분류법에 의할 것 같으면 아마 그들은 죽어서 지옥의 칠구 일번지(七區一番地)에 살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폭력을 휘둘렀던 무리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까.
나에게 있어서 파리는 지옥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 지옥 문전의 어두운 숲속을 헤매었을 뿐 지옥의 정주자가 되진 않고 끝났다. 이왕 내친 김에 한마디 해두자면 나는 그리스도교를 니체의 저서를 통해서 배웠다. 언젠가 펜만 씨는 나를 위해 ‘누구라도 외부의 세계가 야수들이 숨어 있는 밀림으로 보이는 시기가 있다’라는 구절을 읽어준 적이 있었다. 그 시기를 파리에서 보냈던 나의 눈에는 펜만 씨가 베르길리우스(화려하고 장엄한 서사시 문학을 창출한 로마 시대의 시인. 그러나 이 글에서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를 가리킴 - 옮긴이)와 겹쳐져서 보였고, 내 병의 진행을 거의 농담으로 즐기는 형과 양친은 야수들로 비쳐졌다. 아울러 타인에게 무관심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숲속의 나무들처럼 보였다.
펜만 씨와 나 사이에는 공교롭게도 공통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프랑스어, 폴란드어, 이디시어였다. 그리고 러시아어도 할 수 있었다. 반면에 나는 일본어와 영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으나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는 겨우 몇 마디 더듬거리는 정도였다.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와 대화를 나눌 때는 마치 개와 원숭이가 의사소통을 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과 똑같았다. 그런데 펜만 씨는 러시아어로 말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고 있었다. 나중에 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독일어에 대한 증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러시아어 이상으로 기피한다고 했다. 아마 그것은 일종의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무엇보다 펜만 씨는 나치에 의한 유태인 박해와 소련 군대에 의한 강제수용소 생활을 모두 체험했을 터였다. 그 자신이 직접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같은 체험에 얽힌 말을 했었는데, 그것은 마치 강력한 힘을 지닌 주문처럼 나를 압도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난 그것을 조국애라든가, 평화라든가, 희생 정신 따위와 같은 것으로 헛되어 쓰고 싶지는 않네. 전쟁은 끝났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 개인은 어느 누구하고도 강화조약을 맺은 적이 없어. 대숙청(大肅淸) 시대는 이미 지나간 얘기라구? 젠장! 그러면 그 시대로부터 살아돌아온 나는 화석이란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나는 인간의 감정이란 것을 남김없이 수용소에 두고 왔기 때문에 세상의 인간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면서 소리 높여 외치는 평화니 조국애니 도덕이니 신앙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게 돼버렸지.”
나는 그런 과거의 소유자 앞에서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지 몰라 난처했다. 그저 최소한의 예의로써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 온순하고 얌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형의 통역을 통해서 들었다. 형이 없을 때는 서투른 러시아어나마 지껄여 댈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 그런 나를 펜만 씨가 불쾌하게 여긴 나머지 싫어하지나 않을까 싶어 전전긍긍했다. 어떤 때는 지나치게 신경을 쓴 탓에 녹초가 되기도 했다.―이것도 나의 병을 악화시키는 원인의 하나였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해야만 할 속물들과 촌뜨기들이 살고 있는 섬, 저 해뜨는 나라(일본을 가리킴 - 옮긴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만큼 간절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차라리 펜만 씨한테 철저하게 경멸당하고 말, 우익 똘마니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우익이 되어 ‘중국에 있어서의 관동군 행동은 옳았다’라고 중국인에게 뭇매를 맞을 말을 입버릇처럼 떠벌리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후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중들기와 우익의 결합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나는 그런 점에서만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청소를 하거나 차를 끓이거나 하면서 동시에 프랑스어를 배우고 유태인에 대한 다소의 지식을 몸에 익히는 쪽을 택했다. 펜만 씨에 대한 호기심……. 그것을 내 생활의 버팀목으로 삼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 시점에서 펜만 씨는 자동적으로 나의 스승이 되었던 것이다.
펜만 씨의 아파트는 몽마르트의 북쪽에 위치한 줄루 조프랑 지하철 역 부근에 있었다. 그 오 층짜리 남향 아파트에는 다섯 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 중 두 개의 방은 온통 책들로 가득했다. 나는 서향의 가장 작은 방을 배당받았다. 거기에는 침대와 싸구려 옷장을 비롯하여 TV세트가 놓여 있어 별 한 개짜리 호텔 방을 연상시켰다. 무엇보다 전용 텔레비젼이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은 채 밤새도록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열중했던 것은 ‘신곡(神曲)’이라는 게임이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단테가 지옥과 연옥을 견문하면서 천상의 지고천(至高天)까지 당도한다는 스토리로 되어 있었다.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게임 도중에 안내인인 베르길리우스나 베아트리체를 찾아내 조언을 구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그리고 지고천에 도달하기까지 스물여덟 개의 장면이 펼쳐지는데, 각각의 수수께끼를 풀며 미로를 탈출하고 단테의 발을 붙드는 자들을 제거하면서 점수―이것은 소피아 벨류라고 한다―를 획득해야만 한다. 게임을 완전히 마스터하는 데에는 하루에 두 시간씩 몰두하더라도 족히 반 년은 걸리기 때문에 이 역시 펜만 씨에 대한 호기심 못지 않은 파리 생활의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세 개의 얼굴과 다섯 개의 날개를 가진 루치페로라는 괴물의 몸으로부터 탈출해서 겨우 지옥편을 깨뜨렸을 때였다. 펜만 씨가 나타나 자기도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른 채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나를 은밀하게 훔쳐보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같은 행위야말로 펜만 씨 역시 나한테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그가 훔쳐본 행위에 대해서 고맙게 여긴 나머지 서둘러 게임 메뉴얼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상세하게 하나하나의 룰을 가르쳤다.
그렇지만 펜만 씨는 지옥의 입구인 아케론테 강 앞에서 게임을 포기해버렸다. 기껏 게임을 그만둔 것임에도 변명 하나는 기막힌 것이었다.
“예수를 신이라고 부른다면 마르크스도, 프로이드도 신이라고 불러야 할 걸세. 나는 ‘신곡’의 계층 구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네. 관료제와 똑같은 구조가 아닌가? 나는 언제까지나 지상에 남아서 사막을 지향하겠네. 대체 천상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올라가봤자 공기만 옅어질 뿐 아닌가?”
형의 통역을 들은 후 나는 그것을 고급스러운 농담으로 해석하고 우습지도 않은데 억지로 웃었다. 그러나 펜만 씨는 웃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호메이니 옹을 연상케 하는 돌과 같은 굳은 표정으로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데시앙. 자네는 설마 인생이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물론 게임에 룰이 있듯이 인생에도 나름대로의 룰이 있네. 그렇지만 인생의 룰은 한 사람의 개인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닐세. 자네가 그 게임의 룰처럼 살 셈이라면 영원히 응석받이로 남아야 할 걸세.”
“아니, 네가 뭐라고 했기에 그러니?”
그의 말이 끝나자 형이 나한테 물었지만 나는 유태인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펜만 씨는 결코 방약무인한 히스테리 학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첫인상은 사람 좋아보이는 늙은 바텐더 같은 면이 있었다. 그는 오페라 극장 수위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으며, 내가 과일을 사러 자주 가는 가게의 가족 사항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붙임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특기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특기가 아닌 직업병일 수도 있으리라. 망명 중계업자는 그 자신도 마찬가지로 어느 곳이든 망명할 수 있는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을 테니까.
세계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만국 공통적인 것을 생활의 밑바탕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언젠가 형이 말했었다. 펜만 씨의 생각을 도용한 것이겠지만,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붙임성과 눈치, 아름다운 용모, 추진력, 체력, 운전면허…….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한다면 유태인이라는 것이다. 펜만 씨는 세 번째를 제외하고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3
여섯 달이 지나자 파리와 나의 육체관계가 친밀해진 탓인지 거부반응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더욱이 한 달 뒤인 삼월 초순에는 유전자에 얽매인 우중충한 마술적 발상으로부터도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유전자에 의한 전제정치를 타도하고 중추의 내란을 진압, 질서를 회복하여 드디어 공화제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전혀 비논리적인 피해망상에 얽매여 있었던 것에 다름 아니었다. 요컨대 나는 자신의 사고회로에 있어서 완고한 쇄국정책을 고수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병의 회복은 그야말로 신의 계시처럼 찾아왔다. 그것은 정확히 ‘신곡’ 게임의 정복 시기와 일치했다. 결국 그 게임은 분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의 회복을 돕는 데 아주 적합한 것이었다.
게임의 장면이 천상계로 접어들면서부터 고단수의 플레이어가 된 탓이었을까? 성자(聖者)들한테서 부여받은 시련을 모두 물리치고, 삼 주 만에 아홉 번째의 천상에까지 올라가 천사 합창대와 만났다. 보통 이 게임은 천상계에 들어서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절반 이상의 플레이어가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만다. 따라서 영원히 지고천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섯 번째의 천상 이후로는 성자와 천사를 비롯하여 베아트리체로부터 무척 난해한 수수께끼를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때로는 천문학과 물리학의 지식이나 그리스도교사(史)의 교양까지도 요구된다. 그것도 선택식이 아닌 논술식이기 때문에 키보드로 백 자 정도의 논술을 제시해야만 한다. 나는 펜만 씨의 서고에 있는 라루스 백과사전(프랑스의 문법학자이자 사전 편집자인 라루스가 창설한 출판사에서 발행된 사전 - 옮긴이)을 뒤적거리며 일본어로 논술을 작성하여 입력했다. 그 결과 내 이름이 지고천에 등록되기에 이르렀다. 지고천에 도달했을 때의 그 황홀감……. 정말이지 그때 느꼈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에 대한 기억은 아무리 되살려도 질리지 않는다. 과연 지고천은 어떠한 영상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나는 걸까 궁금해하며 그것을 보기 위해서 반 년이란 세월을 소비했으므로.
베아트리체에게 안내되어 지고천에 들어간 나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신 바람에 선글라스를 껴야만 했다. 이제부터는 키보드를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 단지 신의 은총처럼 펼쳐진 영상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마약이 아닌 반 년간의 인내에 의해서 획득하게 된 금욕주의적인 쾌락……. 그때 나의 뇌리는 무수한 상념의 별들이 섬광을 내뿜고 있는 사막의 밤 하늘처럼 투명해졌다. 빛의 옷을 걸쳤을 뿐인 베아트리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천사들이 커다란 원을 이룬 채 춤을 추며 나팔을 불고 있었다. 천사들은 포레의 진혹곡인 <낙원의 노래>를 연주했다.
나는 어느새 단테와 일체화되어 하얀 장미의 꽃잎에서 꽃잎으로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그곳에는 연옥 편에서 만났던 낯익은 여인들, 라헬과 유디트의 모습도 보였다. 이어서 단테가 된 나는 성모 마리아와 만났다. 그녀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라파엘로가 빵집의 딸을 모델로 삼아 그렸다는 성모상 그대로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윙크를 했다고 여기는 순간 단테(나)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마리아의 허벅지 사이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이윽고 지옥과 연옥의 여행에 대한 회상이 시작되었다. 총 삼백 시간에 달하는 여행의 기록이 플래시의 점멸과 함께 차례차례 부상했다. 갈고랑이를 들고 있는 악마들, 뚱뚱한 고리대금업자,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뱀의 무리, 원기 왕성한 도둑들, 게으름뱅이 벨락쿠아, 연가를 불러주던 카셀라, 울면서 기도하는 투명인간 같은 귀신들……. 잠시 후 그들은 모두 동일 화면에 모였다가 서로 부딪혀 거꾸로 처박히면서 차츰 극채색(極彩色)의 대리석 조각 모양으로 변해갔다. 아울러 단테(나)는 베아트리체와 합체되어 그 속으로 녹아들었다.
영상은 끝없이 펼쳐졌다. 이쪽에서 스위치를 꺼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 터였다. 나는 잠시도 쉬지 않은 채 연속 두 시간 동안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구 키보드를 두드려대자 대리석 조각 모양은 여러 가지 형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은하수로도 보였고, 카니발의 풍경으로도 보였으며, 술에 취한 괴물로도 보였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요염한 성모 마리아나 기묘한 얼굴의 베아트리체가 나타나기도 했고, 일체의 모양이 사라진 대신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만월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방송이 끝난 텔레비전 화면처럼 어지러운 전파의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무질서한 가운데 신을 보았다.
이렇게 말한다면 과장일까? 이전부터 나는 일정한 형태나 모습을 갖춘 신 따위는 천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유태인에게 있어서의 신은 ‘YHWH’라는 네 문자로 표시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함부로 ‘야훼’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물론 그런 문자와 비슷한 어떤 것을 만드는 것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름대로의 신을 믿고 있었다. 나의 신은 여체를 상징하는 ‘WXY’라는 세 문자로 표시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욱, 쿠사이(구린내)’라고 읽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펜만 씨에게 ‘신곡’ 게임을 정복했다는 것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신과 자연, 신과 무질서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면서 전부인 것이 신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펜만 씨는 의외라는 식의 표정을 지은 채 웃으며 말했다.
“자네 같은 일본인들은 누구라도 쉽게 신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아닌가? 혹시 자넨 그리스도교로 개종해버렸나? 난 말이야, 어렸을 때 예수를 신처럼 숭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겨왔네. 그 예수라는 사람은 유태인들이 걸핏하면 율법, 율법하고 까다롭게 떠들어대면서 그것을 보다 어렵게 해석하려고 드니까, 갑자기 툭 튀어나와 유태인들을 희롱한 작자에 불과하다구. 그런데 그같은 행동이 때때로 우둔한 민중을 기쁘게도 했었지. 한마디로 말해 예수는 괴짜였네. 결국 제자인 유다나 바울 같은 사람이 그 괴짜를 구세주로 꾸며냈던 걸세. 아마 예수는 마르크스나 아이슈타인과 같은 성격의 남자였을 것이네. 그건 그렇고, 그 게임은 ‘신곡’의 원본보다도 더 잘 만들어진 것 같군. 자네한테 개종하도록 교육을 시켰을 정도니까 말일세.”
“저는 개종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펜만 씨, 그렇다면 예수는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니체처럼 유태교도들을 비판했다는 겁니까?”
“글쎄,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애초부터 예수는 그리스도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네. 그 작자는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특이 체질의 남자에 불과했지. 단지 머리가 좋아서 사람들로부터 흥미를 끄는 남자였던 걸세. 자, 한번 생각해보라구. 율법의 한 자, 한 구절을 놓고 해석을 하는 데, 머리를 짜내는 학자와 율법에 써 있는 것을 한마디로 간단히 뒤엎어보이는 남자 중 사람들은 어느 쪽을 좋아하겠는가? 전부 날조된 걸세. 성서를 쓴 놈이나 그것을 오독한 놈이나 똑같이 잘못을 저질렀단 말일세.”
나는 펜만 씨가 내뱉는 그런 투의 이야기에 매료되어서 시험공부를 하던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가장 열심히 프랑스어를 배웠다.
4
사월에는 ‘신곡’ 게임의 정복 외에도 나의 병을 쾌유로 향하게 하는 사건이 또 있었다. 남프랑스로의 바캉스가 바로 그것이었다. 파리에 머문 지 칠 개월 만에 처음으로 여행이라는 것을 하게 된 셈이었다. 니스, 샹 폴, 모나코를 순회하는 십 일 동안 내 병은 상당히 회복되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스튜어디스들의 각선미, 오이스터 바(굴 전문 요리점 - 옮긴이)에서의 굴조개 껍데기, 르노에서의 살롱 카, 호텔의 커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여태까지는 한 번도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어떤 것이든 나름대로의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이 모든 사물에게 오라(물체에서 발산되는 신비한 기운 - 옮긴이)를 부여하는 것일까? 아무튼 시골 쥐가 휴양지를 방문해서 느꼈던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 거의 전부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들 다섯 사람은, 그러니까 나를 비롯하여 펜만 씨와 그의 비서인 마르샤, 그리고 형과 그의 애인인 클로디누는 낮에는 행동을 같이하고, 밤에는 저마다 내키는 대로 각자 행동했다. 형과 클로―형은 클로디누를 이렇게 불렀다―는 하룻밤 걸러 행방을 감추곤 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줄곧 펜만 씨 친구의 별장―그 친구라는 사람은 마침 부재중이었다―에서 머물렀다. 나는 니스에서도 변함없이 시중드는 역할을 담당했다. 매일 아침 자동차를 타고 크라상 빵을 비롯하여 갖가지 요리 재료를 사왔다. 요리 역시 거의 내가 도맡다시피 했고, 다른 사람들은 한창 바쁠 때에만 도와주는 척 굼뜨게 움직였다. 나는 부여베이스(생선과 조개류에 향료를 넣어 찐 요리 - 옮긴이)나 들새 구이를 만들었으며, 기분이 좋을 때는 넙치 구이 따위를 만들었다. 네 사람은 요리사로서의 내 재능을 높이 평가해주었다.
한번은 펜만 씨의 부탁으로 계란 부침과 빵, 그리고 야채 샐러드뿐인 디너를 준비했다. 그런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과월절(過越節 : 야훼가 이집트 사람의 맏아들을 죽일 때 유태인들의 집에는 어린 양의 피를 문기둥에 발라 표시를 해놓은 까닭에 그대로 지나가 재난을 면했다 하여 그것을 기념한 축일, 빠스카 축일이라고도 함 - 옮긴이)에 해당되는 날이었다. 아마 펜만 씨는 일부러 바캉스를 과월절에 맞춘 모양이었다. 그러나 즐거워해야 할 축일은 네 명의 이교도가 펜만 씨의 고독을 위로하는 날이 되었다.
“옛날에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성대하게 축하 파티를 열곤 했지.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 시기만 되면 ‘결혼해서 아이를 얻었더라면 좋았을걸’하는 식의 후회만을 하게 된다네.”
펜만 씨는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에는 보기 드문 풀죽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그런 펜만 씨 앞에서 무신경하게도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을 양자로 삼으면 어떻습니까? 유태교에 대해서 거부감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은 데다 사장님을 존경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유태교는 싫어.”
일본식 발음의 프랑스어에 익숙한 나는 형의 말이 떨어지자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나 역시 유태교 자체는 싫어한다네. 내 마음속에서 반(反)유태 폭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완고한 유태교도들의 탓일 걸세. 어디에 가든 내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그전에 난 그저 한 사람의 이방인일 뿐이라네. 그리스도나 마르크스가 동시대의 유태인에게 있어서 이방인이었던 것처럼 말일세.”
펜만 씨는 호메이니 옹 같은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코웃음을 쳤다. 나는 그의 표현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제 마음속에서는 걸핏하면 반일(反日)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서는 배타적인 애국주의를 부르짖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전 이같은 일본인의 모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펜만 씨는 갑자기 쉰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데시앙, 자네는 대단한 평화주의자군 그래. 하지만 공교롭게도 자네처럼 중동무이한 인간은 어디에 가더라도 그다지 성실하게 상대해주지 않을 걸세. 고작해야 불쾌한 인상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귀엽게 봐주는 정도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립적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수상쩍은 존재라고 여기고들 있다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일정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가령 자네가 이스라엘에 가서 유태인으로 해달라고 부탁한다고 치자구. 그런다고 해서 그쪽 사람들이 받아줄 것 같나? 그들은 자네한테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라고 말할 걸세.그래야만 비로소 자기들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네.”
그의 말이 끝나자 클로가 참견을 하고 나섰다. 형은 그녀의 귓전에 대고 ‘잠자코 있어요’하고 속삭였지만 그녀는 이내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유태인에게 있어서 이교도는 친구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적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녜요?”
“그런 식의 차별주의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가지고 있어요. 그야말로 만국 공통이지요. 그것은 유태인에게도 있지만 프랑스인에게도 있어요. 굳이 따져본다면 아마 프랑스인 쪽이 훨씬 많을 거요.”
펜만 씨가 말하자 이번에는 형이 나섰다.
“아니, 그 수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많든 적든 간에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지요. 나는 말입니다, 모두가 사이좋고 평등하게 살자는 식의 구호를 외치는 사람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다 웃기는 소리지요. 에…, 그리고 나는 이태리 여자보다는 프랑스 여자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일본 여자는 밥맛없어요. 중국 여자만도 못하지요. 일본에는 혼혈이 적기 때문에 아무래도 예쁜 여자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형은 걸핏하면 일본인을 바보 취급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프랑스에 도취되더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칠 년 동안 파리에 눌러앉으면서 자신이 세계 시민임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일본의 봉급쟁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통근 시간이 삼십 분 이내로 걸리는 장소에 위치한 맨션 아파트를 사서 하루라도 빨리 클로와 보금자리를 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었다. 클로는 주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의 사무원이었다. 형은 그녀가 지성은 이태리, 정염은 프랑스인 여자라고 하면서, 차라리 거꾸로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은근히 투덜대곤 했다. 만약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 과연 잘 살게 될지 의심스러웠다.
결국 그날 펜만 씨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은 각각 축하할 구실을 억지로 만들어 과월절 축제를 벌였다. 나는 병의 회복을 축하했고, 형과 클로는 처음 만났던 때부터 날을 세어 사백팔십 일째가 된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펜만 씨 비서인 마르샤는 망명한 폴란드인 아버지의 건강을 축원했다.
바캉스를 떠나온 지 사흘째와 나흘째가 된 날에는 항해를 즐겼고, 닷새째 되는 날에는 샹 폴 마을에 갔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거금을 건 채 페탕크 경기(두 패로 나누어 직경 3센티미터 가량의 목공을 6∼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놓고 그것을 표적삼아 금속공을 던져 가까이 떨어진 수를 겨루는 경기 - 옮긴이)를 하는 이브 몽탕과 악수를 하기도 했고, 샤갈의 친구였다는 사람과 만나 샴페인을 마시기도 했으며, 유명한 점성술사를 만나 각자의 운명을 점쳐보기도 했다. 점괘에 의하면 나는 가까운 장래에 인생을 좌우할 커다란 사건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 묻자 점성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칫하면 위험한 지경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좋은 일이니 안심하시오.”
펜만 씨도 점을 보았는데, 그에 대한 점괘는 ‘건강에 주의하고 친구를 소중히 여기면 금년은 무사히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년 후에는 신수가 상당히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바캉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 형은 클로와 함께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어버렸고, 마르샤는 친구를 찾아갔다. 나는 펜만 씨와 모나코의 카지노에 들락거렸다. 일본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미리 비행기삯을 벌어놓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펜만 씨의 사무소로부터 지급되는 수당은 한달에 천오백 프랑으로 고작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였다. 카지노에서 운 좋게 한탕 벌기라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반 년은 더 파리에 묶여 있어야만 할 처지였다.
그러나 카지노라는 것은 마음을 비운 채 우연을 기대하거나 단순한 오락으로 임하는 사람에게는 너그럽고, 우연 속의 필연을 확인하려는 사람에게는 그런대로 몇 푼 던져주기도 하지만, 마치 금광에라도 뛰어든 듯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냉담한 법이다. 나는 다섯 시간을 룰렛에 몰두한 결과 졸지에 이천 프랑을 날렸다. 한편 매사에 빈틈이 없는 펜만 씨는 한 시간 동안 ‘0’에만 걸더니 마침내 금액을 천으로 올렸을 때 보기좋게 맞혔다. 그리하여 그는 딜러와 나에게 오백 프랑의 팁을 쥐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의기양양하게 물러났다.
바캉스의 마지막 밤, 펜만 씨는 네 사람을 에즈에 있는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에즈는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를 구상하고 집필했던 곳으로 잘 알려진 명소였다. 거기에는 니체가 산책했다는 길도 있었는데, 식사 후 나와 펜만 씨, 그리고 형은 그 길을 따라 산책했다. 산책 중에 나는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짜라투스트라가 틀어박혀 있던 산은 의외로 이런 요양지 같은 곳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는 책을 읽거나 집필에 열중하다가 지치면 식당으로 가서 거북이 수프 따위를 먹곤 했을 겁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펜만 씨는 여느 때처럼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산이나 사막 같은 데 책 따위가 있었겠는가? 중요한 건 말이야, 자연이나 자신의 육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걸세. 그것이 철학의 기본이지. 그런 점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주 활동적이었네. 반면에 우리 유태인들은 예로부터 그렇지 못했지. 무엇보다 일상생활의 사사로운 것까지도 계율로 칭칭 얽매어 있었으니까 말일세. 말하자면 유태인의 육체에는 언어의 족쇄가 채워져 있었던 것이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유태인들에게야말로 니체 같은 철학자가 필요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는 독일인이었으니까 개중에는 상대하려고 들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걸세. 유태인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네. 자신은 어디까지나 유태인일 뿐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의식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지. 그래서 유태인적 비유태인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라네.”
통역을 귀찮아하는 형은 ‘부탁인데 더 이상 이런 식의 어려운 얘기는 이제부터 그만해’하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형의 통역 없이도 펜만 씨가 하는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펜만 씨는 나를 제자로서 인정, 자신의 사고방식을 나한테 불어넣는 것을 은근히 기뻐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의 말투를 통해 일찌감치 그런 낌새를 알아챘던 것이다.
5
파리로 돌아온 후 나는 펜만 씨에게 그의 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게임을 마스터했기 때문에 한가한 시간이 많아 소일거리가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번에 망명 안정소에서 해온 일의 기록이 출판되기에 이르렀지만, 일본어로의 번역은 자네의 형이 맡고 있다네. 그리고 과거의 저서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모두 폐기처분해버렸지. 대신 지금 회상록을 쓰고 있으니까 마무리가 되는 대로 자네에게도 원고를 복사해주기로 하겠네.”
나는 결국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펜만 씨의 서고에서 눈에 띄는 책을 찾아 읽기로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책도 짜증이 나서 도중에 내팽개쳐버렸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황금 연휴를 맞아 일본에서 대규모의 관광객들이 파리로 몰려왔기 때문에 나는 형과 함께 가이드로 나서게 되었다. 우리는 불과 사흘 동안의 연수를 받은 뒤 관광 단체를 인솔하여 루브르 미술관, 몽마르트, 퐁퓌두 센터, 튈르리궁을 돌기로 했다. 가이드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본격적인 파리 관광의 기회였다. 나는 필요에 쫓겼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의 프랑스어 정도는 전보다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관광객 중에는 에이즈 걱정이 없는 창녀를 소개받고 싶다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형의 아파트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다. 그 바람에 형은 졸지에 포주 노릇을 하게 된 셈이었다.
우리 형제가 가이드 일로 몹시 분주해 있는 동안 펜만 씨는 두 건의 일에 매달려 있었다. 한 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민을 온 백인 가족이 파리에 정주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수속을 대행하는 일이었고, 또 한 건은 브라질로부터 갓 건너온 노동자들에게 직장을 알선해주는 일이었다. 어느 날 나는 펜만 씨에게 그가 취급하고 있는 일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한테서 일의 노하우를 훔쳐낼 셈인가?’하고 말하면서도, 외무부 소속 이민 관리국과의 마찰을 피하는 방법이나 이민을 허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서 어떤 조건이 가장 좋으며, 또 그것을 어떻게 날조하는가 등의 방법에 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렇다면, 그들로부터 받는 보수는 대략 어느 정도나 됩니까?”
나는 내친 김에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정확하게 가르쳐주지 않고 대신 이렇게 얼버무렸다.
“글쎄, 그들한테서 존경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정도의 액수라고나 할까…….”
나는 그의 애매한 말투로부터 대충 나 나름대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유월까지는 허니문을 온 커플들의 관광 가이드마저 맡게 되어 생각지 못했던 거금―그렇다고는 해도 펜만 씨가 카지노에서 딴 금액과 비슷한 정도이지만―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만한 돈이면 언제든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파리를 탈출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도쿄보다 파리의 지리에 정통해 있는 데다가 대인관계의 폭도 훨씬 더 넓었으며, 펜만 씨와도 상당히 친밀해진 상태였으므로 차라리 파리에 머무는 편이 더 유리할 듯 싶었다. 도쿄에서의 내 생활권이라고 해보았자 집과 병원이었고, 대인관계라고 해야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세 명의 친구들 외에는 없었다. 도쿄야말로 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폐쇄적인 동네였던 것이다.
나는 일 년 정도 더 파리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 판국에 형이란 작자가 간섭하고 나섰다. 그 인간에게는 전부터 동생을 무슨 일이든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해 먹으려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무슨 피가로인가…….
“넌 파리에 와서 병이 나은 거야. 그게 다 내 덕이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내 공을 인정해줄 줄 알아야지. 안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한테 특별히 부탁을 하나 할까 해. 어때, 들어줄 거지?”
“싫어.”
나는 우선 쐐기부터 박아놓았다.
“싫다니? 내 말을 끝까지 잘 들어봐. 이건 간단한 일이야. 넌 도쿄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구. 그리고 두 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을 해주면 된다 이거야. 난 말이야, 클로와 결혼하기로 했어. 팔월에 이쪽에서 식을 올릴 생각이야. 이 일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결혼식만큼은 도쿄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클로의 부모님들도 무척 완고한 사람들이라 파리에서 만나 연애를 했으니 당연히 파리에 사는 건 물론이고 식도 파리에서 올려야 한다고 우겨대는 거야. 그래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할 수 없이 양쪽의 말을 다 따르기로 했어. 그러니까 파리에서 식을 올린 다음 구월경에 신혼여행 겸 일본으로 가서 도쿄에서도 식을 올리고, 다시 신혼여행으로 프랑스에 돌아올 계획이야. 어때, 멋질 것 같잖니? 그래서 말인데, 미안하지만 네가 한 발 먼저 도쿄로 가서 식장이나 피로연의 준비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거지. 그리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초대장을 돌리고 말야. 해줄 수 있겠지?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구. 제발 부탁이니까, 예약이라든가 비용 염출 같은 여러 가지 일들을 네가 직접 가서 챙겨줘. 그리고 말이야, 아버지와 어머니도 네가 좀 적당히 구슬려놨으면 해. 그렇지 않으면 자금 원조는 기대할 수도 없으니까.”
그 후에도 형의 설득은 여러 번에 걸쳐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왕복 항공료를 받는 조건으로 어쩔 수 없이 그의 부탁을 수락했다.
그 건에 대해서 펜만 씨에게 털어놓자 그는 세 번 코웃음을 치며 ―평소에는 두 번이었는데― 스스로에게 하는 소리인지 나에게 하는 소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왕복이란 말은 갔다가 돌아온다는 의미인데…….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게 좋지. 그런 자유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닐 걸세.”
그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느닷없이 내 나이를 물었다.
“스물 다섯입니다.”
“내가 마흔한 살 때 자네는 어린애였군 그래.”
그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며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덧붙여 말했다.
“자네는 아직 젊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나이지. 반면에 나는 유태인 이외의 사람은 될 수 없다네. 이젠 너무 늦었지.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일본인으로 태어나고 싶군.”
펜만 씨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벽에 걸려 있는 어느 랍비의 초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6
파리를 떠나던 날 펜만 씨는 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며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라고 했다. 거기에는 나를 격려하는 말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데시앙에게
자네의 마음속에는 호기심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군. 새하얀 벽에 조간신문을 붙여놓고 마구 문질러대면 간단하게 자네의 모습이 나타날 걸세. 알아볼 수 없게 긁혀 있는 글씨, 잉크의 얼룩……. 이게 자네의 전부일 것이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할 걸세. 그야말로 기막힌 제로 상태지. 나로서는 자네가 부럽기 짝이 없네. 자네는 언제나 제로부터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래, 호기심만 갖고 있으면 이러저러한 도덕적 의무도, 무엇인가에 대한 질투나 복수심도, 어릿광대나 나무 조각에 대한 신앙심도, 나아가서는 주위에 소음을 일으킬 뿐인 희로애락 따위의 감정도 모두 떨쳐버릴 수 있을 테지. 특별히 곤란스러운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을 걸세. 그것들은 잡균이나 기생충 같은 것들로서 인간을 발효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부패시키기도 하는 것들일 뿐이라네.
그런데 우리들은 흔히 그 발효나 부패의 정도로 사람을 평가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지. 하지만 자네의 경우는 예외네. 호기심이 자네를 끊임없이 외부로 끌어내기 때문에 자네는 언제까지나 어떤 특정한 사람이 될 수 없단 말일세. 결국 확실한 것은 자네가 정체 불명의 특이 체질이라는 정도일 뿐이네. 그렇기 때문에 자네는 까딱 잘못하면 백치가 되기 십상이지. 잘해야 어정쩡한 풋내기나 멍청이가 될걸세.
자네는 타인의 동정만으로 밥 먹고 살아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어림없는 생각일세. 만약 자네가 그렇다고 한다면 자네는 자네에게 인격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처세라든가를 가르쳐줄 만한 스승을 찾아 그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자네는 바보가 아니네. 좋게 말하면 성인이 될 수 있는 소질까지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하지만 행여 오해하지는 말게나. 성인이라고 해서 성 프란체스코 같은 작자를 일컫는 것이 아니니까. 자네의 특이 체질은 이제까지의 인간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일 따름일세. 그러나 그만큼의 가치가 자네에게 있다고 해도 자네는 자네 나름의 방식대로 그것을 완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네.
자네의 늙은 제자 루드빅 펜만
아마 그는 데시앙이라는 표본을 앞에 두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참 동안 생각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펜만 씨가 기인(奇人)이었던 것처럼 그에게 있어서도 나라는 존재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였으리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과의 조우만큼 머리를 쓰게 하는 게임은 없다. 그런 점으로 보아 그와의 만남은 나의 뇌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신기원이었다.
인간의 중추에는 각각의 사고 회로가 서로 얽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그 소용돌이는 가정, 사회, 민족, 국가라고 하는 따위의 환경과 그로부터 강요되는 도덕이나 규율, 교육이나 법률의 역학관계에 의해서 생기는 것으로, 거기에 각종 미디어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정보나 지식이 복잡하게 중첩됨에 따라서 개별화된다. 결국 참다운 스승이라는 것은 폐쇄적인 곳으로 빠져들어 가려고 하는 사고 회로를 보다 통풍이 잘되는 곳으로 잡아끌어 내주는 사람이리라. 동시에 제자의 사고 회로 속에 있는 자신과 공통적인 것과 완전히 이질적인 것을 분별하는 눈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게다가 무언가 상식에 벗어나 있으면서도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리라. 한마디로 말해 현명한 멋쟁이가 되지 않으면 참다운 스승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진짜 스승인 펜만 씨의 편지를 통해 나는 그가 나의 젊음은 물론 어중간하고 몰개성한 성격에 대해서조차 질투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는 멋진 노인이라고 생각되었다.
7
형이 부탁했던 일을 끝내고 언제 파리로 돌아갈 것인가 한참 궁리하고 있을 때 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곧잘 진지한 듯하면서도 흔해빠진 농담을 늘어놓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말투로 뜻밖의 사건을 알려왔다.
“펜만 씨가 유태인 청년들에게 뭇매를 맞고 입원했어!”
내가 되물을 사이도 없이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늘 경찰서에 가서 사정을 들었는데, 펜만 씨는 본래 유태인이 아니었어. 나치에 의해 청춘을 망쳤다는 둥,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는 바람에 억세게 고생을 했다는 둥 그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 같아. 놀랍지 않니? 그는 폴란드의 부르주아 출신으로 전후의 혼란한 틈을 타 그때부터 유태인 행세를 한 사람이래. 진짜 유태인이 아니면서 유태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다니니까 그런 정보를 입수한 시오니스트들이 과격한 수단을 행사했던 거지.”
“펜만 씨의 상태는 어때?”
“쇄골이 부서진 것 같은데, 일주일이 지나야만 퇴원할 거래. 사무소는 바빠 죽을 지경인데 말이야.”
“펜만 씨가 유태인이 아니란 게 사실이야?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사실이야. 펜만 씨 스스로 고백했으니까. ‘나는 본래 유태인이 아니었지만 노력해서 유태인이 되었다’라는 식으로 말하더라구. 분명히 사업상 폴란드인인 것보다 유태인인 편이 훨씬 잘될 것 같고 일도 많아질 것 같으니까 유태인 행세를 했을 테지. 유태인은 장삿속이 밝다고 하지만 그런 유태인을 이용한 펜만 씨는 그보다 한 수 위인 셈이야. 정말 대단해. 너 충격받았니?”
나는 급성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형의 말은 계속되었다.
“여하튼 굉장한 사람이야. 유태인이 되기 위해서 이디시어라든가 유태인의 관습 같은 걸 무섭게 공부했을 테니까. 어쩌면 프랑스의 스파이로서 은밀하게 이스라엘에 왕래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랬다면 지금의 사업 따윈 그에게는 한갓 소꿉놀이에 불과했을 거야. 역시 세상은 참으로 복잡한 곳이란 생각이 들어. 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외에도 썩어나갈 정도로 많아. 그건 그렇고 도쿄에서의 결혼식 준비를 만족스럽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난 여전히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 펜만 씨가 유태인이든 폴란드인이든 그런 건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다구. 물론 사무소도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잘 돼갈 거구. 그럼, 구월에 도쿄에서 만나자.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구. 참, 펜만 씨한테 편지해라.”
형과의 통화가 끝나자 지중해의 태양과 지고천(至高天)의 눈부신 광선을 받고 있던 나의 아담한 이상향은 갑자기 사막으로 변한 채 눈앞에 펼쳐졌다. 펜만 씨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형의 전화를 받기 전만 하더라도 그 이상향의 주인이었을 펜만 씨, 이제 그는 새로운 수수께끼와 함께 사막에 묻혀버렸다.
나는 그 사막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자신을 유태인으로 바꿔버리는 행위 따위가 서슴없이 자행되는 지옥 같은 곳에서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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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체성"도 서슴없이 바꾸려 하는 현대인의.......
비정한 "욕망---
현대사회의 "실존의 부조리"
길어서 좀 읽기가 지겨웠지만, 커피 한 잔으로
느긋하게 완독했습니당
좀 길긴 하네요.를후후
忍耐, 完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