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가 끓어오르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오토모 가츠히로, 오시이 마모루.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는 이들이 각각 그들 인생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지도 모를 신작들을 제작중이다. 아직 예고편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통 극비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그들 작품의 파괴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나선 이들의 중요한 행보를 지나칠 수야 없는 노릇. 올 한해를 거쳐 내년까지 전세계 애니메이션계에 초특급 태풍을 몰고올 세 거장의 작품과 그 영향력을 진단한다.
2002년 12월 13일. 세계 애니메이션계가 들썩였다. 이날 일본의 메이저 배급사 토호(東寶)가 도쿄의 토호 본사에서 열린 2003~2004년 신작 라인업 소개 행사에서 애니메이션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소식을 전한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기작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연출을 맡아 2004년의 여름에 개봉할 예정이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황홀해진 애니메이션 팬들을 더욱 두근거리게 할 또다른 희소식이 이어졌다. 배급사 토호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오토모 카츠히로의 <스팀 보이>와 <공각기동대>의 속편인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 고스트 인 더 쉘>(이하 <이노센스>)를 각각 2003년 10월, 2004년 봄 개봉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세 거장이 무섭게 일어서고 있다. 그들의 작품이 완성을 향해 줄달음칠 2003년은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좌우할 매우 의미심장한 한 해이다. 세간에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사실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세 작품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과 세계 애니메이션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각종 애니메이션 관련 사이트와 세 감독의 팬 사이트는 벌써부터 온갖 기대로 들썩이고 있다.
"19세기를 어떻게 생각해?" - 미야자키 하야오
평소 머릿속에서 5~6개의 아이디어를 한꺼번에 굴리고 있던 미야자키 감독은 어느 날 자신의 오랜 친구인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19세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뜬금 없는 질문 같아 보이지만 그 한마디엔 다 이유가 있었다. "유럽에는 환상 회화를 그린 작가들이 많아"라고 말한 얼마 후 미야자키는 그런 그림들을 구해왔다. 대부분 '20세기는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짐작과 공상을 종이 위에 옮겨놓은 이미지들이었다. 그 그림들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서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는 실현될 수 없는 공상으로 가득한 그림 속에서 19세기가 '마법과 과학이 뒤섞인 시대'라는 진실을 깨닫게 됐다. 미야자키가 "우리가 이걸 만들자"라며 눈을 반짝였을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영국의 유명 아동 문학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판타지 소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원작으로 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마법에 걸려 90세의 노파로 변한 소녀와 마법사 하울의 사랑 이야기다. 아버지의 모자 상점을 지키고 있던 18세 소녀 소피는 어느 날 모자를 사러 온 사악한 마녀의 마법에 걸려 90세의 할머니가 되어 버린다. 당연히 마법을 풀어야할 테고, 움직이는 성에 살고 있다는 능력 있는 마법사 하울을 찾아 나서면서 소녀의 여행이 시작된다. 미야자키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움직이는 성(城)'을 3D로 표현할 예정이다. 병기와 매카닉 마니아인 미야자키의 상상력으로 생명을 얻은 새로운 조형물로, 그가 연출하는 비행의 미학을 또다시 맛볼 수 있을 듯하다. 미야자키는 "테스트를 시작했다. 박력 있는 신이 될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전체적으로도 과거 지브리 작품과 비교해서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많이 사용할 계획이다. 미야자키는 지금 "'현대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멜로드라마를 당당하게 그리고 싶다"며 의욕에 불타고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당초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을 연출했던 후배 감독 호소다 마모루가 연출을 맡았으나 완벽을 추구하는 지브리의 보스들을 만족시키지 못해 몇 달 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지휘권은 또다른 신작 <털벌레 보로>의 제작을 천천히 준비하려던 미야자키 감독에게 돌아갔다. 작년 여름 신예 모리타 히로유키가 연출한 지브리의 최신작 <고양이의 보은>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한 것도 미야자키를 차기작을 서두르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됐다. 지브리는 일단 신진 양성에 실패한 셈이다. 하긴, 원작의 판타스틱한 세계관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 미야자키의 아이디어와 표현력을 능가할 수 있는 이가 또 있을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붉은 돼지> 등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연출한 미야자키에게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2002년 10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메인 스탭이 스튜디오 지브리에 모여 그림 콘티 및 이미지 보드 작업을 시작했다. 지브리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대성공 이후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산뜻하게 시작하자'라는 스즈키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2002년 여름부터 제작부 애니메이터들에게 6개월간의 임시 휴가를 줬다. 본격적인 작화 작업은 이들이 행방불명이 됐다가 돌아온 2003년 2월부터 가동됐다. 후반작업을 거친 후 완성 시기는 2004년 봄이 될 예정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 참여했었던 콘도 카즈야가 작화 감독을 맡고, 요시다 레이코가 각색을 책임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하모니'라는 특수한 방식도 사용해 색다른 시도를 할 예정이라는데, 자세한 것은 역시나 극비다. 지금까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보다 진행이 빠르다지만 언제나 '순조롭게 늦어지는' 것이 지브리의 오랜 관행이다 보니 두고 볼 일이다. 이와 더불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등(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이미 수상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지브리는 여러 모로 공사가 다망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2.5차원의 세계에서 디지털 어드벤처를 보여주지" - 오토모 가츠히로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의 효시 <아키라>가 탄생한 이후 15년이 흘렀다.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은 1988년 <아키라>를 내놓은 후 1995년 <메모리즈>에서 각본가 겸 세 번째 에피소드 <대포의 거리>의 감독으로 참여했다. 1998년에는 <스프리건>에서 아티스틱 슈퍼바이저를 맡았고,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린타로 감독의 <메트로폴리스>에서 각본에 참여했다. 즉, 러닝타임 2시간의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 <스팀 보이>는 오토모 가츠히로의 실제적인 컴백 작품인 것이다. 오토모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스팀 보이>로 자신이 만든 <아키라>의 완성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는 2003년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다. <아키라>로 인해 충격을 받은 세대가 현재 일본과 세계 애니메이션 업계의 중추를 이루고 상황에서 <스팀 보이>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아키라>가 근미래의 묵시록을 선사한 작품이었다면, <스팀 보이>는 2세기 전으로 되돌아가 관객에게 꿈과 상상력, 사랑 등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대는 증기기관의 사용이 절정에 달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 제1회 만국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영국의 천재 소년 발명가 레이 스팀은 할아버지 로이드가 보낸 수수께끼의 발명품을 받는다. 레이는 곧 이를 노리는 오하라 재단에 쫓기고 도중에 비밀리에 무언가를 연구를 하고 있던 아버지 에디와 만나 발명품이 바로 세계의 에너지를 단숨에 빨아들이는 힘을 지닌 '스팀 볼'임을 알게 된다. 이제 레이는 '스팀 볼'을 악용하려는 오하라 재단을 무찌르고 위기에 처한 가족과 런던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내용으로 보건대, 관객은 <스팀 보이>가 보여주는 19세기 영국의 역사 속에서 관광을 하게 되는 셈이다. 당초 오토모 감독은 1995년부터 <스팀 보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2000년 완성을 목표로 했지만 반다이 비주얼에서 선라이즈로 제작사가 변경되고, 예산 수급과 디지털 과학 모험 어드벤처를 시각화하기 위해 필요한 방대한 컷 수, 그에 따른 작업량, 오토모 감독의 퀄리티에 대한 끈질긴 욕구 때문에 2003년 가을로 개봉이 미뤄졌었다. 그리하여 지난 8년여 동안 총 제작비 24억 엔, 총 스탭 70여 명이 동원되어 총 컷 수 1,860컷, 총 작화 매수 18만 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1.5배)에 달하는 대작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다.
배급사 토호는 <스팀 보이>가 제작 과정 중간에 계속 새로운 테크닉을 만들어낸 까닭에 일찌기 볼 수 없었던 디지털 애니메이션 테크닉이 화려하게 등장할 것이라 예고했다. 전편에 흐르는 증기의 묘사나 3차원 CG 메카닉과 인물 작화는 보통 애니메이션의 3배 이상되는 고난도 작업이라 스탭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소문도 슬금슬금 새어나오고 있다. 배경 미술의 치밀함과 더불어 18만 장에 이르는 작화가 전달해줄 방대한 정보량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 요소다.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은 "<스팀 보이>가 2.5차원으로 표현하는 그림의 세계. 불가사의한 매력이 넘치는 고전적 어드벤처를 지향한다"고 말해왔다. 공교롭게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같은 시대에 발을 들여놓지만 정반대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스팀 보이>. 오토모 감독의 말대로라면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은 이를 통해 19세기 유럽 시대를 회고하게 만드는 예술의 진수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2032년, What is the Innocence?" - 오시이 마모루
"이젠 '인형사'란 프로그램도, '소령'이라는 여자도 없어." 쿠사나기의 의식이 들어 있는 소녀의 몸이 말한다. 떠나려는 그녀에게 동료 버트가 무심히 한마디한다. "그 옷 왼쪽 주머니에 차 열쇠가 들어 있어. 원하면 써도 좋아. 비밀번호는…." "2501? 그거 다시 만날 때의 암호로 하자." 언덕에서 네트워크에 지배당하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쿠사나기는 이런 말을 남긴다. "이제 어디로 갈까? 네트는 방대하거든."
오시이 마모루의 1995년작 <공각기동대>는 SF 애니메이션을 철학적 영역으로 이끈 선구자적인 작품이다. 앞에 기록한 <공각기동대>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장면 이후 현실에서의 시간은 8년이 흘렀지만 오시이 마모루의 정신 세계 속의 시간은 조금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오시이 감독은 2029년이 배경이었던 <공각기동대>에서 3년이 흐른 서기 2032년, 미래의 도쿄 위에 <공각기동대>의 속편인 <이노센스>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인간과 꼭 닮은 로봇이 만들어지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진 시대. 뇌 이외에는 사이보그화된 남자 주인공과 육체가 없이 전뇌(전자뇌) 세계를 헤매는 여자가 있다. <이노센스>는 그들을 위해 거대한 질문을 만들어놓고 있다. '육체를 잃었을 때, 과연 인간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이노센스>는 두 남녀의 궁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2년 전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현재 전체 러닝타임의 약 6분의 1가량에 달하는 작화가 완성된 상태. 2003년 말 완성해 2004년 봄 공개를 목표로 작업중이다. <스팀 보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비교할 때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 가장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어쩌겠는가, <공각기동대>의 속편이 만들어진다는 뉴스 그 자체만으로도 팬들은 이미 한껏 몸이 달아올랐는데.
인간에게는 인간을 꼭 닮은 물건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를 위한 오랜 싸움이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글자 그대로 정신과 물질의 경계선은 점점 더 희미해졌고, 오시이 마모루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든다. 정체성의 문제를 떠안은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두고 '그 사람'을 말할 수 있는가? 정신만이 남아 있는 것이 인간인가, 어떻게든 육체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 인간인가? <이노센스>는 제목 그대로 인간의 '순수'한 근본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 팬들은 미래를 향한 진보적인 묵시록이 될 <이노센스>가 올해 제작되는 세 작품 가운데 가장 모던한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마도 우리들 모두,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뭉치면 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팀 보이> <이노센스>. 세 작품 모두 완성되는 즉시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 애니메이션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터미네이터>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스팀 보이>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아직 보지도 않은 상태인데, 심지어 극영화로의 리메이크를 꿈꾸고 있기까지 하다. 진짜 같은 거짓말을 신봉해온 카메론이니 19세기의 픽션인 <스팀 보이>에 매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트릭스> 시리즈로 전세계 SF 영화의 미래를 바꿔버린 워쇼스키 형제는 '네트워크'라는 기본 설정을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 빌려왔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 바 있다. 뤽 베송이 <제5원소>에서 쿠사나기 소령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공각기동대>의 첫 장면을 인용해 밀라 요보비치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만들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 이를 두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전문지 월간 '아니메쥬' 편집장 오노 슈이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코믹스가 만든 디자인과 움직임, 구도, 색조 등이 미국과 유럽에서 발견되고 인기를 끌었다. 그 정보가 일본에 역수입된 이후 일본인은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재평가하게 됐다. 때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우수성은 바깥에서 봤을 때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에 놀라운 시각을 심어주었던 모체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업은 지금 매우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DVD 시장이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물론 거장들의 작품은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10여 년간 꾸준한 캐릭터 상품, 비디오, DVD의 판매로 이익을 거두긴 한다. 그때까지 견디지 못하는 제작사가 대부분이라서 문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바야흐로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좋은 증거가 바로 스튜디오 지브리와 <이노센스>의 제작사인 프로덕션 IG의 제작 협력이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을 지향해온 스튜디오 지브리와 애니메이션의 컴퓨터 그래픽 테크닉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켜 온 프로덕션 IG. 지금까지 전혀 상반된 길을 걸어온 두 회사이니만큼 제작 협력의 결과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오시이 마모루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허나, 미완성 상태에서 곧잘 언론 시사회를 하기도 하는 지브리에게 제작 협력이란 게 가능할까? 최근 프로덕션 IG 측이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설정을 빌리면서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구성된 오락성이 높은 엔터테인먼트 작품을 지향할 것"이라고 선언한 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애니메이터 시절 지브리의 엄격한 관리 시스템을 두고 크렘린이라며 부르며 공격했던 오시이 마모루가 지브리에게 손을 뻗은 것은 대중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공각기동대>는 1995년 일본 개봉 당시 1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그쳤었다). 한편으론 그만큼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협력 관계에 대해 '아니메쥬'의 오노 슈이치 편집장은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흥행성'을 염두에 둔 오시이 마모루와 프로덕션 IG의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미야자키 애니메이션 선풍을 주도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의 수완을 빌려 이번 작품을 확실한 흥행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노센스>라는 제목 또한 스즈키 프로듀서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팀 보이> 역시 이 '대중적 흥행'이라는 관문을 피해 돌아갈 수는 없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흥행에는 실패해 저주받은 걸작이 됐던 <아키라> 경우를 생각해보면 오토모에게도 이것은 절실한 문제다. 제작사 선라이즈가 오토모에게는 낯선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스팀 보이>를 '밀레니엄 시대에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야자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런 의미에서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큰 교훈을 준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작 협력을 이루어낼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협력이 성공적으로 실현된다면 저패니메이션은 거대한 핵탄투로써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는 2003년 10월 개봉 예정인 <스팀 보이>를 신호탄으로, <이노센스>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각각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경우 전국 2,400만 명을 돌파하며 303억 엔의 흥행 수익을 거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D-DAY를 향해 카운트다운 시작!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인 <모노노케 히메>는 4월 2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최신작 <고양이의 보은>도 국내에서 여름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대원 씨앤에이 홀딩스가 수입했고, 브에나비스타가 배급한다. 이 라인업에 가을쯤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붉은 돼지>까지 파고들 예정이다. 대원 씨앤에이 홀딩스의 최보근 대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확보한 최대 시장은 220만 명을 동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다른 애니메이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저패니메이션이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흔치 않다. <무사 쥬베이> <인랑> <공각기동대> <메트로폴리스> 등이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비디오와 DVD 시장으로 진입했다. 극장가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은 오로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뿐이다. <이웃의 토토로>는 그나마 국내에서 전국 26만 명을 동원했다. 50만 달러에 수입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는 약 220만 명을 동원해 한국과 일본에 각각 20억 원씩 남겨주었다. 그는 "<모노노케 히메>부터 이어지는 지브리 작품의 꾸준한 개봉을 계획하는 것은 사실상 내년 여름 개봉할 미야자키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국내 수입을 무리 없이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세 편 가운데 가장 해외 주목도가 높은 작품은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디즈니가 미국 전역의 배급을 맡았지만 영국 판타지 아동 소설이 원작이 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일본색이 담기지 않아서 세계 배급을 위해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스튜디오 지브리와 돈독한 관계를 지녀왔던 디즈니는 물론, 디즈니를 견제하려는 드림웍스도 미국 배급권을 얻어내기 위해 지브리의 움직임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갱스 오브 뉴욕>을 제작한 미국의 영화제작사 미라맥스가 <이노센스>의 북미 배급권을 샀다는 루머도 돌고 있다.
현재 세 작품 모두 단순한 몇 줄짜리 시놉시스와 감독의 이름만으로 해외 마케팅이 가능하고 세계 배급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향력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도 기대치는 높다. 2002년 <스팀 보이>의 국내 수입, 배급을 위해 선라이즈와 접촉했던 배급사 쇼박스의 최종환 대리는 "불법 비디오의 피해를 입지 않을 만큼 시차가 짧고, 오토모 가츠히로의 15년 만의 신작인 탓에 국내에서 7~80만 명은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스튜디오 지브리 대부분의 국내 판권을 가지고 있는 대원 씨앤에이 홀딩스가 <스팀 보이>와 <이노센스>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세 편 모두의 수입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을 미야자키의 마법의 세계로 초대할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작가주의를 지키면서 가족용 대작 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나기 위해 중간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스팀 보이>, 흥행을 갈망하지만 여전히 지독한 마니아들의 세계에서 농익어가는 <이노센스>는 각각 제자리에서 서서 위치를 잡고 있다. 곧 발사대에 오른 강력한 미사일처럼 올 하반기 세계 애니메이션계를 저패니메이션의 폭풍 속에 가두기 위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예정이다. 경계를 허물고 그들만의 곤고한 영역을 다지며 다가오는 저패니메이션의 대공세. 막무가내 부시도 이들을 막기는 어렵지 않을까?
첫댓글 끝까지 다읽으신 분~수고하셨어요~ㅋㅋ
......나올때 군대가는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ㅡㅜ
오시이 마모루에 한표! 오토모 가츠히로에겐 응원~
나도 미야자키처럼 늙고싶다....
휴가...나와서나 볼수있으려나....T^T내라이벌인데....+_+;;(돌던지지마요아퍼~=ㅂ=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