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7:1-5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라.”(새번역)는 말로 단락이 시작됩니다. 예수의 교훈적인 어록의 도입부입니다. 개역성경에는 “심판”대신 “비판”을 사용합니다. 원문(κρινω)의 의미는 영어로 to judge 또는 decide라고 합니다. 그러니 심판이란 상대방을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좀 더 읽어보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판단중지”뿐입니다. 내 눈 속에는 들보가 들어 있는데, 어떻게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갑니다. “남을 심판하지 말라. 너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라는 말대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평가와 판단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여론조사나 설문조사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기관은 정기적으로 평가를 받거나 심하면 감사를 받습니다. 자기가 평가받기 싫다고 남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입니다.
예수의 어록은 정황과 문맥상 바리새파를 향한 가르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선자야!”라는 말 속에는 속 다르고 겉 다르다는 뜻이 담겼기에, 자기들의 잘못은 모르면서 죄인들에게 엄격한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바리새파에 대한 경고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눈까지 동원해서 본문을 다시 읽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교훈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캐다다 통계청 사회통계분석자료 중에 <캐나다 각 종교가 캐나다 사회에 공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이 종교들이 “캐나다 공공생활에 도움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만든 도표가 있습니다. 각각의 다양한 종교인들에게 상호평가와 자기 평가를 하도록 하였는데, 그 결과 복음주의 개신교(Evangelical)가 독보적으로 극단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자기평가로는 68%로 “도움이 된다”고 하였는데, 다른 종교들은 복음주의 개신교에 대하여 모두가 다 “도움이 안 된다.”로 평가하였습니다. 심지어 유대교와 무종교인들은 –46%로 평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극단적 복음주의가 생각 없이 국가주의적(nationalism)인 입장에서 보수적이고 극우적인 신앙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대 사회는 서로를 존중해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 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의미가 매우 분명해 보이는 오늘의 본문 속에서 저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대목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3절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5절에 “그래야 네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이점에 집중하면 성경에 쓰인 제목을 바꾸어야 할지 모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말라>가 아니라,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주어라>로 말입니다.
3절에 나오는 “깨닫다”(κατανοεω)라는 말은 “인식하다”(to take notice of), “감지하다”(perceive) 라는 의미입니다. 즉, 자신의 상태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남의 문제점들은 매우 잘 보는 것이지요. 그런 상태라면 평가하거나 판단하거나 심지어 심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영역에서는 정말 “생각”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깊은 숙고 없이 교리와 규정에 얽매인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시대 율법주의에 얽매여 자신은 거룩하고 규정준수를 잘 못하는 사람들은 속되다고 심판하는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을 묵상하는 사람이고, 그 묵상의 깨달음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과 화평하게 지내는 삶을 사는 과정에 있어야 합니다.
남의 눈 속에서 티를 발견하고 그의 고통을 제거해 주려면, 먼저 자신의 걸림돌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자신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을 거쳐서, 나와 더불어 우리가 함께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대들보를 제거해나가는 인생여정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먼저 심판하여 걸림돌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걸림돌을 빼주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말의 깊은 뜻은 “너희가 먼저 자신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걸림돌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여정 가운데에서 그런 깨달음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2024년 9월 22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