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0. 3 전남 곡성 섬진강변에서 제4회 섬진강마라톤대회가 열린다. 지난 대회와 달리 금년도 대회부터는 풀코스 종목이 신설되었다. 2회와 3회 대회 때 하프를 달린 후에 아~ 이렇게 아름다운 강과 산을 따라 풀코스를 달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었는데 풀코스가 신설되었다는 말에 하루라도 빨리 그 길을 가 보고 싶었다.
2004. 6. 19 장대비가 쏟아지는 휴일의 토요일이다. 달리기를 나가지 못하는 이런 날에는 정신의 공허함을 느끼기 일쑤인데 오늘은 다르다. 왜냐하면 신설된 풀코스 답사를 떠나기 때문이다.
광주를 떠나 남해고속도로 동광주 톨게이트를 지나자 빗줄기는 많이 약화되었다. 저만치 산허리를 감고 있는 하얀 구름 위로 솟아있는 산봉우리에 6월의 수목은 그 푸르름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창평, 옥과 I.C를 지나 곡성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니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읍내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골짝나라의 시작인 셈이다.
심청이가 방긋 인사를 한다. 군목인 느티나무도 도열해서 이방인을 반긴다. 여기서부터 청정 구역이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넌 6월의 바람이 사탕수수처럼 달콤하게 나를 애무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읍내를 빠져 나와 하늘을 덮어버린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터널을 지나니 드디어 42,195㎞의 출발지점인 섬진강생태공원이 나타난다. 비에 젖은 운동장은 텅 비어 있고 연약한 잡초만이 빗속에 샤워를 즐기고 있다. 강은 운동장을 호위하면서 변함없이 흐른다. 어쩌면 상류마을의 희노애락을 이 쯤에서 전해 줄 듯도 싶은데 납덩이처럼 무거운 침묵으로 말 없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그 묵짐함이 좋다. 그 진득함이 참 좋다.
섬진강마라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으로 시작해서 강과 같이 달린다. 숲과 강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풍부한 음이온을 듬뿍 받으면서 달린다. 신경안정과 피로회복에 효과가 탁월하여 절대 지치지 않을 것이다. 매연 가득한 도심의 달리기와 비교해서 한번 상상해 보라. 이 것이 섬진강마라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파란 하늘을 떠 받치고 있을 가을날의 화려한 잔치를 꿈꾸며 드디어 운동장을 출발한다. 생태공원이어서인지 도로에 이르기까지 400m 구간은 포장을 하지 않았다. 달리기에 지장을 줄 것 같지만 대회 당일에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잘 다듬어 부직포를 깔구 물을 뿌린다 하니 달림이들은 양탄자 위를 밟고 가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산란을 위하여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물살을 가르듯 달려 1㎞ 지점에 이르면 전라선의 폐철교와 신교가 나란히 강 위에 걸쳐 있다. 강을 건너면 춘향골의 고장 남원이요 건너기 전은 심청이의 고장 곡성이다. 그러고 보니 춘향이와 심청이가 이웃 동네에 살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여기서부터는 발길 닿는 곳 눈길 주는 곳 마다 빼어난 경치이다.
산을 따라 길이 있고, 길을 따라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 다시 산이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남은 청정골, 이곳을 찾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운을 안은 셈이다. 여기서 주의할 게 있다. 빼어난 경치에 너무 취하면 달리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너무 한 곳에 많은 눈길을 주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 밟는 땅, 눈에 들어오는 시야 모두가 흥분이며 감동이다.
2㎞지점, 달리는 주자에게 아직도 몸은 예열을 계속할 것이고 맥박은 급 상승할 시간이다. 이곳에서 잠시 눈을 조금만 들어보라. 풀코스 전 구간 중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이 나타난다. 좌로는 위엄 있는 바위가 내려다 보면서 빨리 지나가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굴러 내릴 듯한 기세이고 우로는 유속 빠른 강물이 좀 더 빨리 달리라구 으름장을 놓는 것 같다.
좌측의 인동초가든 식당을 지나3.5㎞지점에 이르러 고갤 쳐들면 움찔 놀랠 수 밖에 없는데 달리는 주자를 낚아채려는 듯 거대한 매 한마리가 불쑥 나타난다. 마치 살아있는 매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이를 낚은 다음 머리를 숙이며 힘차게 날개를 펴면서 날아 오르는 형상으로 다가 온다. 매봉이다. 송강 정철이 붙여놓은 지명이란다. 이 곳에서의 일출이 장엄하여 새해 해맞이 행사가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점점 매의 품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4㎞지점, 청계2교를 건넌다. 좌측이 청계동계곡이다. 계곡의 얼음물 유혹을 뿌리치고 갔다가 돌아올 때 살짝 몸을 담구었다 나오면 마지막 달리기가 상쾌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나 시원하면 여름에 모기가 없을까! 청계동의 유래가 있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동중의 산 빛이 푸르게
강에 담기니
강 또한 푸르러
쪽물을 들인 것 같고
동중의 긴 골짝을 협착해서
강에 닿은 즉
강 역시 협착하여
작은 시내와 같더라.
그러므로
청계라 이름하였다
산은 점점 첩첩이다. 강은 또한 점점 깊어진다. 5.5㎞지점의 사시암골을 지나고 6㎞지점 우측에 순풍정을 만난다. 순풍정 정자에 잠시 누워 산신령의 꿈이라도 꾸고 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서둘러 가야할 길은 멀다. 순풍정에 빼앗겼던 눈을 우측으로 돌리니 제월교다. 가로등 위에 빨간 고추잠자리가 앉아 있다. 살금살금 다가가 한 마리 잡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제월교를 지나 500m쯤 가면 살뿌리의 전설이 서려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도깨비가 쌓았다는 수중보가 눈앞에 나타난다. 길게 사선으로 다가오는 기적같은 현상을 목격하더라도 절대로 놀래지 말기 바란다. 정말 도깨비가 나타날지 모르니.... 자연이 이렇게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살뿌리 하나만 보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섬진강마라톤에 대회에 오시는 탁월한 선택을 하신 것이다.
7㎞지점에 이르니 200여m 정도의 언덕같지도 않은 언덕이 나타나 조금 힘차게 나아가는 주자에게 딴지를 걸어 본다. 하지만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가기 마련, 정점에서 내려다 보이는 우측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반겨준다. 수령 몇 백년은 족히 넘을 듯한 수형이 잘 잡힌 나무다. 꼭 눈길 한 번 주기 바란다. 행운을 줄 것이다. 눈길을 주면 범죄 없는 마을 제월리 곡천 마을이다. 주민들의 아낌 없는 박수에 발 걸음이 가볍다.
8㎞ 지점, 약 100여m 정도의 오르막이 나타난다. 여인네의 허리같은 잘록한 산허리를 감아돌면 우측에 전망 좋은 곳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건너편의 울창한 숲 안에 함허정이 갖혀 있다. 그 아래로 섬진강이 흐르며 멀리는 무등산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조선 제일의 명당터에 자리 잡은 군지촌정사가 있기도 하다.
10.5㎞지점, 곡성군 입면 서봉리 탑동마을 여기서 하프주자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고 풀 주자는 계속해서 달려야 한다. 11.7㎞ 지점 매평마을과 매월교를 지나 우회전 코스모스 꽃길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것 만 같다.
12.9㎞지점, 입면공업사에서 50여m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좌측으로 금호타이어 사원아파트가 나란히 서 있다. 13.7㎞ 지점에서 약 50m의 오르막이 있을 뿐 어려운 코스는 없다. 우측으로 널따란 송전들녁이 펼쳐지는데 가을날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풍성해진다.
14.5㎞지점, 좌측으로 송전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이팝나무와 정자가 달리는 주자를 유혹한다. 「정다운 내고향 쉼터」라는 간판이 정말 쉬어가고픈 느낌이 들게 한다.
15.3㎞ 지점에서 약간의 내리막이 전개되고 건너편의 마을이 보이는데 합강 마을이다. 뒷산에 유월파장군의 정려각도 보인다. 곧 이어 나타나는 섬진강 상류를 가로지르는 합강교를 지나 16㎞ 지점에서 T자형의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가면 전라북도 순창이고 좌측으로 가면 광주방면이다. 물론 주자는 광주방면 좌측으로 달려야 한다. 약간의 내리막 길을 달리면 좌측 저만치 광주컨츠리클럽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푸른 지붕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폐교를 활용해 만든 섬진강자연학습원이다.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를 볼 수 있고 도예 빚기도 할 수 있다.
17.5㎞지점 게르마늄이 풍부한 玉雪생수공장, 18㎞지점의 옥과 한과공장을 지나면 이제 풀코스의 반환점도 머지 않았다. 반환점에서 옥설의 생수와 옥과의 한과가 제공되는 행운을 기대해 본다.
19㎞지점 우측으로 신수리 마을이고 마을 앞의 느티나무 고목이 고향에 오셨으니 편히 쉬었다 가라 하는 것 같다. 좌측으로는 섬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수중보를 타고 힘차게 넘쳐흐른다, 수초가 널따랗게 펼쳐져 있고 수중보에서 튀는 물고기를 노리는 백로의 무리가 여유롭다.
20.5㎞ 지점에서 만나는 언덕이 200여m 쯤 이어져 있다. 반환점 돌기 직전의 마지막 인내를 시험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그리 겁먹을 일은 아니다. 21㎞ 지점 옥과면 주산마을이다. 마을 앞 농협창고가 있는 곳이 터닝 포인트인데 갓 거리 측정을 끝낸 탓인지 노면에는 하얀 스프레이 자욱이 진하게 남아 있다.
풀코스의 한계는 30㎞ 지점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섬진강마라톤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사슴나라 농원을 지나 만나게 될 언덕이 조금은 염려스럽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려울 때 이 마을 저 마을에서 경쟁적으로 틀어주는 음악이 주자에게 힘을 북돋아 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힘겹게 언덕을 올라 커브길 우측에 노송의 군락지가 보인다. 그 중에 한 그루는 허리가 굽어 있고 가운데 원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 곳의 이 어려움만 잘 극복하고 나면 나머지 구간은 섬진강과 나란히 보조를 맞추어 달린다.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강물을 따라 달리면 여러분은 어느새 가을의 주인공이 되는 짜릿한 오르가즘을 느낄 것이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파란하늘 아래 내 건강한 모습이 포토로에 잡힐 걸 생각하니 10. 3일 그날이 기다려진다.
신/마/동 !!!!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섬진강변을 생각하며, 삼복 더위에서도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들이 너무 멋있습니다. ^그날을 위해.....^
첫댓글 ㅎㅎㅎㅎ......마음은 벌써 곡성에...좋습니다!!, 열심히 훈련하여....신마동..힘!!!
곡성에서 좋은기록 달성하시기 바랍니다.(((((힘)))))))!
섬진강변 코스모스길을 달린다. 기분 좋은 추억을 남길것 같네요. 10.3 곡성 기다려집니다. 창호님~~~힘~~~
사전답사 하시고 좋은글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추석후 라 걱정 했는데!!! 연습 안해도 되겠네 ? ㅋ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