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 작품과 로라 애쉴리 홈 컬렉션. 소박한 듯 하지만 화려한 멋이 느껴지는 두 가지 특별한 아이템이 뭔가 색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을 것 같다. 퀼트 작가 엄마와 로라 애쉴리 MD인 딸이 사는 그곳으로 살짝 훔쳐보자.
브랜드 MD이기 전에 매니아로 시작된
로라 애쉴리 사랑
인테리어 화보 촬영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게 된 로라 애쉴리 한국 지사 MD 김지혜씨(27). “언제 한번 집 구경오세요.” 라는 인사를 들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1월 초, 그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도 하고 집 구경도 할 겸 그녀가 사는 곳을 방문했다. 아니 사실은 후자에 대한 욕심이 더 컸다고 하는 것이 옳다(연초부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내심 개운치 않으므로). 집 구경 오란 말에 어느 정도 꾸며놓았을 거라 짐작했었고, 또 잘 꾸민 집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사명감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된 가회동 어느 골목, 기왓장을 얹어 운치를 더한 3층집에 다다랐다. 나무 대문이 열리고 쑥스러운 듯 웃음으로 객을 맞이한 그녀. 직업 탓일까. 차 한잔 권하는 그녀의 어깨 너머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시선이 머문 곳은 커튼이며 가구, 그리고 소품들. 클래식하면서도 로맨틱한 디자인과 꽃무늬, 체크무늬들이 눈에 익다 싶더니, 대부분이 로라 애쉴리 홈 컬렉션이었다.
“홍보 일까지 담당하고 있다보니 제가 사는 공간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꾸몄던 건 아니에요. 오래 전부터 이 브랜드 매니아였거든요. 지금 이곳에 있는 제품들 중 절반은 로라 애쉴리에서 일을 하기 훨씬 전에 마련했던 거예요.”
김사숙씨의 작업실에 놓인 퍼프트 퀼트. 솜을 도톰하게 넣어 올록볼록하게 마무리한 모양이 머쉬멜로우를 연상케 한다.
침실 창가에 장식한 스탠드와 양초, 향수병은 모두 로라 애쉴리 제품으로, 고전적이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거실 한쪽 벽에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로라 애쉴리 서랍장과 빈티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퀼트 작품이 장식되어 있다. 퀼트 작품은 김지혜씨가 로라 애쉴리 패브릭을 이용해 직접 만든 것.
로라 애쉴리 특유의 플라워 프린트 패브릭으로 장식한 침실. 침대 위에는 1890~1950년대의 앤티크 천을 사용한 퀼트 작품을 놓았다. 퀼트 작품은 김지혜씨가 만든 것.
대학 시절에 구입했다는 식기들과 외국에서 생활할 때 샀다는 식탁 매트며 액자, 침구 등은 특유의 패턴과 오래 사용해 낡은 듯한 멋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에 최근 컬렉션인 가구와 커튼까지 더해져있어 마치 로라 애쉴리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을 찾은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던 어느 순간, 또 한 곳에 시선이 꽂혔다. 그것은 바로 퀼트 작품. 소박한 듯해 보이지만 어딘가 화려한 자태가 느껴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퀼트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 그러나 진정 놀란 대목은 그 작가가 바로 그녀의 어머니라는 것.
퀼트 작가로서의 성공과 대를 잇는 특별한 재주
퀼터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 김사숙(48)씨. 그녀는 국내에 퀼트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가회동을 방문했던 날도 바늘을 놓지 않고 있었을 만큼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사실 김사숙씨는 국내에서도 유명하지만 일본에서 더 대우받는 작가다.
그녀를 원하는 현지 초대전의 손길이 끊임없이 뻗어 오는가 하면, 얼마 전 열린 전시회 소식을 알리기 위해 일본 NHK 방송국에서 취재를 올 정도니 특급 작가라 할 만하다. 그녀가 일본에서 명성을 쌓게 된 이유는 뛰어난 작품성은 물론, 한일작가전을 개최해 문화 교류를 지속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배경을 꼽자면 퀼트와의 인연이 일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23년 전, 남편의 사업 때문에 일본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오사카의 어느 서점에서 퀼트 전문지를 접한 것이 퀼터로서의 첫걸음이었다. 서툰 일본어 실력으로 겨우 겨우 퀼트의 정의를 배웠고, 그 후 6개월이 지나 용기를 내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 천 조각을 이어 솜과 안감을 합쳐 누벼가면서 쿠션이며 매트 등을 만들어갔다. 처음이라 실수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니 그녀는 천상 퀼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나 보다
1.정원과 이어진 데크에는 로라 애쉴리 패브릭으로 커버링한 의자가 놓여 있다. 볕 좋은 날이면 모녀가 나란히 앉아 차도 마시고 책도 읽는다고.
2. 거실에는 베이지 톤의 체크 무늬 패브릭 소파와 큼직한 잎사귀 프린트의 커튼을 드리워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사숙씨가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 엄격하고 보수적인 규칙에 의해 절제된 생활을 하고 있는 애미슈(Amish)들에서 유래한 퀼트 기법으로, 선명한 색채와 명암이 이루는 대조가 특징적.
실력이 쌓이고 소품에 이어 대작까지 완성. 이를 모아 몇 번의 전시회를 열다가 욕심을 부려 대회에 도전, 1995년 일본 요코하마 퀼트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로서 그녀의 이름이 현지에서 더욱 널리 알려진 것.
“나이 들어 아이들이 곁에 없을 때 무언가 벗이 될만한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퀼트예요. 작은 의미로 시작한 퀼트가 지금은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버렸죠. 그런데 재미난 것은 지혜가 저처럼 타지 생활에서 취미 생활을 찾고 싶었던지 어느 날은 퀼트를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차근차근 가르쳐주었죠. “
스탠드에 걸어 소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김사숙씨의 퀼트 작품. 가운데 장식된 여러 개의 하트 모양은 우정을 상징한다.
어머니의 손재주를 이어받은 것일까? 딸 역시 솜씨가 남다르다. 거실 벽에 장식된 퀼트가 바로 김지혜씨가 참여한 작품. 일본의 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로라 애쉴리 천을 이용했는데, 레이스를 덧씌워 로맨틱한 멋이 느껴진다.
‘색깔이 너무 고와요, 화사한 것이 봄기운이 넘치네요….’ 라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자니 지켜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비화를 털어놓으신다. 레이스를 덧댄 것은 ‘지혜의 실력 탓에(살짝 흘겨보며)’ 마무리가 약간 서툴러 이를 커버하기 위해 자신이 아이디어를 냈던 거라고. 그런데 다음 작업을 위해 이 작품을 일본으로 보냈더니 꽃무늬 천과 조화를 이뤄 오히려 독특하고 예쁘다는 호평을 받았단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역시 모녀의 감각과 직업 정신은 대단한 듯.
퀼트 작가 김사숙씨의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독특한 패턴을 구상하는 예술가적인 재능에 한번 놀라고, 수많은 조각천을 이어 붙이는 지극한 정성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작은 천 조각만 있으면 세상 다 얻은 행복감을 느낀다는 퀼트 작가 김사숙씨.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닮아 있는 김지혜씨를 보고 있자니 잘 만들어낸 퓨전 음식이 한 그릇이 생각난다. 동서고금의 차별된 재료와 레시피가 만나 빗어내는 절묘한 맛과 멋. 저마다의 분야에서 확고한 세계를 다지고 있으면서, 또 한편으론 서로의 분야를 조우시키는 모녀의 삶은 그렇게 맛있는 향기를 내뿜고 있다.
진행 / 신경희 기자 사진 / 송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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