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장,
오순애는 주방으로 들어가 본다.
주방은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미 식사가 모두 끝나고 제 각각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오순애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무리 시어머니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어도 한 번쯤은 더 들어와 모시고 나가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방 문을 연다.
아들과 며느리는 그런 오순애를 바라본다.
“너희들 너무 한 것이 아니냐?”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요?“
김경숙은 시어머니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본다.
“아무리 내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어도 어찌 그렇게 더 이상의 말도 없이 너희들끼리 먹고 모른 척 할 수 있다는 말이냐?”
“어머니!
드시지 않겠다고 하시고는 무슨 트집입니까?“
큰아들 승원이 나선다.
“그래!
애미가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 애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알아볼 수도 있지 않니?“
“어머니!
공연한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지 마세요.
한 끼 식사를 거르신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드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차려달라고 하시면 되는 것을 왜 사람을 힘들게 해요?“
승원은 어머니를 향해서 언성을 높인다.
“너 지금 그것이 애미에게 하는 말이냐?
네 식구 앞에서 애미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해도 되는 것이냐?“
오순애는 덩달아 큰 소리로 악을 쓴다.
“어머니!
정말 왜 이렇게 점점 더 변해가시는 겁니까?
예전에 어머니는 이런 분이 아니셨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고 어머니 생각만 하시는 분으로 변하시는 겁니까?“
”내가 뭘 변했다는 거야?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서 왜 내 탓을 하냐고?
그래, 자식들 다 키워놓으면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면서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으며 내 남은여생을 즐기며 살줄 알았다.
헌데, 지금 너희들이 나에게 해 주는 것이 뭐냐?“
”지금 어머니가 얼마나 사치하고 자식들 힘들게 하는 줄 알아요?
어디 우리 형편에 명품 옷에 핸드백에 구두에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 줄 아세요?“
”내가 지금 그 정도도 하지 못하고 살 이유가 어디 있어?
너희들 셋이 나 하나 그런 호강도 시켜주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
”우리가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는 줄 알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승민이를 이혼시키신 것도 어머니의 욕심 때문이 아니냐고요?“
”뭐야?
내가 왜 이혼을 시켜?
왜 그것이 내 탓이야?“
”어머니 탓이 크죠.
승민이를 호되게 나무라셨으면 감히 어떻게 이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어머니가 한 술 더 뜨시면서 지성애미를 나쁘게 말을 하니 승민이로서는 이혼을 결심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요?“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억지로 좋다고 하란 말이냐?”
“어머니!
어머니가 승민이 처에게 한 달에 축내시는 돈이 얼마나 하는 줄 생각해 봤어요?
적어도 한 달이면 백만 원 가까이 축내고 계시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승민이 월급에서 그 정도로 빠져나가면 승민이 처가 얼마나 힘들어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기나 해요?“
“흥!
내 아들이 번 돈을 내가 왜 마음대로 쓰지 못하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해서 키운 자식들인데 엄마로서 당연히 그 정도도 마음 놓고 쓰지 못해?“
”그럴 거면 뭐 하러 자식들을 결혼을 시켜요?
돈을 벌어 몽땅 다 어머니 마음대로 쓰면서 사실 것이지 뭐 하러 결혼을 시켜서 이혼까지도 시키느냔 말입니다.“
승원이는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여보!
그만 해요.“
김경숙은 남편의 성품을 잘 알고 있다.
화가 나면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린다.
“어머님!
나가세요.
제가 진지를 차려드릴게요.“
김경숙은 오순애를 끌고 방에서 나온다.
오순애 역시 아들의 성품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분이 풀리지 않으면 그대로 졸도를 하는 큰아들이다.
오순애는 못 이기는 척 김경숙을 따라 나온다.
김경숙은 식탁을 챙긴다.
반찬을 정성스럽게 담아 내 놓고 밥을 푸고 국을 퍼 담아서 놓는다.
오순애는 식탁을 보면 또 다시 투정이다.
“이것이 뭐냐?
내가 이렇게 먹고 무슨 기운이 나겠니?
어떻게 밥상에 온통 풀들뿐이냔 말이다.“
김경숙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른다.
“어머님!
이 달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 아이들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융자금 때문에 더 알뜰하게 살아야 합니다.“
“난 이렇게 먹고는 살 수가 없다.
차라리 나더러 굶어 죽으라고 해라.“
오순애는 그대로 주방에서 나간다.
김경숙은 어이없다는 듯 오순애의 뒤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대로 한참을 주방에서 기다려보았으나 오순애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김경숙은 설 명절 차례 상에 놓으려고 준비해 놓은 조기를 한 마리 꺼내어 굽는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구정이 다가온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준비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조금씩 차례준비를 하고 있는 김경숙이다.
조기를 구워 상에다 올려놓고 오순애의 방으로 간다.
“어머님!
조기를 구워 놓았어요.
어서 진지를 드세요.“
오순애는 마지못한 듯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간다.
그리곤 아무런 말도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다시 당신이 방으로 들어간다.
김경숙은 어이없어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기를 누른다.
아무리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시는 분이시기는 해도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탁을 치운다.
그러나 더 이상 문제를 크게 만들어 집안을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방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간다.
강승원은 아직도 어머니에 대한 화가 풀어지지 않았다는 듯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어 숨을 몰아쉰다.
“여보!
이제 그만 진정해요.
어머니가 어제 오늘 그러시는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잖아요?“
“승민이의 이혼을 막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더 미워지는 것을 나도 어쩔 수 없소.
당신 자신만 생각하는 우리 어머니를 정말 이해를 하지 못하겠소.“
”그러니 어쩝니까?
미워도 고와도 어머니인 것을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지요.
조금씩 어머니 비위를 맞추어드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강승원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오순애는 아무리 추운 날씨라 하더라도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다.
항상 곱게 단장을 하고 어디를 매일 같이 나돌아 다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제 구정이 다가오면서 김경숙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오순애였다.
구정을 며칠 앞두고 다른 날보다 일찍 들어온 오순애의 얼굴은 환하다.
“어미야!
그 애들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는구나!“
김경숙은 시어머니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면서도 못 들은 척한다.
“구정 지나서 곧 바로 결혼식을 올린단다.
배가 더 부르기 전에 올려야 그래도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헌데, 그 전에 너희들하고 인사라도 나누어야 하지 않겠니?“
“............................”
김경숙은 아예 못 들은 척이다.
그러나 오순애는 김경숙이 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의 말씀만 하신다.
“그나저나 예단을 받아야 하는데 너희들은 무엇으로 받고 싶은지 말을 해야만 저쪽에 전해 줄 텐데 어떻게 할래?”
“저희들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김경숙은 차갑게 잘라서 말을 한다.
“상관이 왜 없어?
네 아랫동서를 보는 일인데 예단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냐?“
”어머님!
저희들하고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니 저희들 생각은 빼 주세요.“
김경숙은 일을 하던 손을 멈추고 방으로 들어간다.
더 이상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뜻이었다.
오순애는 김경숙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싱글벙글이다.
이번 겨울에는 그렇게 소원하던 밍크코트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겁고 신나는 오순애였다.
아들과의 통화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밍크코트를 예단으로 해 보내라는 말을 하자 아들 또한 흔쾌히 수락을 한다.
큰아들 내외와 서로 수인사를 한다는 것을 일부러 시간을 만들지 말고 구정에 집으로 오라는 말을 했다.
구정이면 어차피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라도 올라와야만 하는 것이기에 이중으로 시간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서 오순애는 며느리의 눈치를 본다.
“큰애야!”
“네!”
“우리 김장김치 많지?”
“왜요?”
“작은 애가 김장을 하지 못한 모양이더라.
조금만 보냈으면 싶다.“
“아뇨!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김경숙은 시어머니의 얼굴도 보지 않고 차갑게 잘라 말을 한다.
“너 시어미의 말을 그렇게 잘라 말을 해도 되는 것이냐?
형제들끼리 서로 나누어 먹으면 어때서 그러냐?“
“누가 형제입니까?
제가 왜 첩년에게 힘들여 한 김치를 줍니까?“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첩년이라니?
지금 작은애보고 첩년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냐?“
“어머님께는 작은며느리일지 모르지만 첩년이지요.”
“너 정말 점점 간덩이가 부었구나?
어디 시어미 앞에서 네 동서한테 첩년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그럼 뭐라고 합니까?
엄연히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을 꼬드겨 이혼을 하게 만들고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는 년들이 첩년이 아니고 뭡니까?“
“그 애들 이제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당최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마라!“
“네!
그러니까 어머님께서도 저희들 앞에서 그 사람들 말씀을 하지 마세요.
듣기도 싫고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작은 애가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네가 그 애를 알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한다마는 오죽하면 승민이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 애를 선택을 했겠니?“
오순애는 어떻게 하든 큰아들 내외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김경숙은 오순애의 말을 상대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어떻게 하든 김치를 보내려고 했던 오순애는 더 이상 말을 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윤아가 김치를 할 줄 몰라 김장을 하지 못했다고 형님 댁의 김치를 조금만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던 승민이다.
김치를 사다 먹는 것이 영 마땅치 않지만 내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승민이의 모습을 생각하니 오순애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큰며느리가 집을 비우는 사람도 아니다.
집을 비우는 날이라도 있다면 몰래 김치를 보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오순애의 마음은 공연히 큰며느리가 미워진다.
사사건건 자신의 뜻을 꺾으려드는 며느리가 참으로 밉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 또한 그런 제 계집 말이라면 어미의 말보다 믿는 것이 더 서운하다.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한 오순애였다.
그래도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내일이면 구정이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한국의 전설에 나오는 며느리의 불행은..... 모두가 홀로된 시어머니에게서 나오잖아요.....심한 경우는....부부 사이의 가운데 시어머니가 누워 자고...문 밖에는 호랑이 콧구멍에 담배연기가 모락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