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하늘과 땅이 맞닿은 풍요의 땅)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광활한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게 외배미들’이라고 불렸다. 이곳이 김제 만경평야이며 호남평야의 한 축이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 만경 벌은 특히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는 곳이다.”
맑은 날 코스모스가 핀 김제의 들녘
소설가 조정래는 대하소설 [아리랑] 첫 장에서 김제 만경 너른 평야를 이렇게 묘사했다.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펼쳐진 광활하고 풍요로운 김만(김제만경의 줄임말) 평야를 품고 있는 곳이 김제다. 김제시 전체 면적의 절반이 논이라고 설명하면 쉬울 터다. 김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징게 맹게 외배미들’이라고 부른다. ‘외배미’란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로 툭 트였다는 데서 온 말이니 ‘김제 만경 너른 들’이라는 뜻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광활한 평야 한가운데에 서면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어느 시인은 이 광경을 일컬어 ‘눈이 모자라 다 볼 수 없다’고 표현했다.어디서든 볼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산 1971년 12월 1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모악산(793.5m)은 전라북도 대부분의 시·군에서 그 웅장한 자태가 바라보이는 대표적인 ‘평지 돌출 산’이다. 모악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반도 최대 곡창 지대인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어 ‘어머니의 산’으로도 불린다. 고어인 ‘엄뫼’를 의역해서 모악(母岳)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민족의 영산으로 매년 해외에서 명상을 하려는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모악산의 설경. | 김제시 제공
모악산의 골짜기는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지만 정상에 가까울수록 뚜렷한 임상이 보이지 않고 잡목류가 무성한 형태를 보인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 안덕저수지와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바라보인다. 동학농민운동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큰 나무는 거의 베이거나 불에 타 사라졌지만, 4월에 피는 벚꽃과 배롱나무꽃이 장관이다.
천오백 년 역사를 지닌 금산사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금산사는 2008년 12월 18일 사적 제496호로 지정됐다. 백제법왕 원년(599년)에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원찰로 조그맣게 산문이 열렸다. 신라 혜공왕 2년(766년)에 진표율사가 크게 중창하며 미륵신앙을 근본도량으로 한 대승불교의 신앙체계를 모두 갖추고 있는 통불교적 사찰로 변모했다. 후백제 935년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기도 하였으며 고려 문종 33년(1079)에 주지로 부임한 혜덕왕사(慧德王師)는 전대미문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위기에 처한 나라와 백성들을 지키려는 뇌묵처영 스님을 중심으로 한 1500여 승병들의 훈련장으로서 승병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의해 재난을 겪지 않았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왜군들의 보복으로 인해 장엄했던 80여 동 건물과 40여 암자가 한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선조 31년(1601) 수문대사가 복원불사를 시작, 35년 만에 대적광전과 미륵전 등 대사구 지역만 낙성했다. 1961년 태공월주 화상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일주문을 비롯해 금강문, 사천왕문, 보제루, 미륵전, 대적광전, 나한전, 대장전, 명부전, 승당, 서전, 요사체 등의 건물을 중수 또는 중건하고 방등계단의 성역화를 마무리 해 면모를 갖췄다. 드라마 [태조 왕건]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금산사 미륵전은 국보 제62호이며, 외관상으로는 3층인데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있다.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보물로는 대장전, 석등, 노주, 석연대, 혜덕왕사진응탑비, 오층석탑, 석종, 육각다층석탑, 당간지주, 북각삼층석탑 등이 있다.
대한민국 대표 농경테마 관광지 벽골제
벽골제 소테마공원의 모습.
벽골제는 대한민국 최대의 고대저수지다. 부량면 신용리에서 월승리에 걸쳐 약 3㎞에 이르는 제방이 현존해 있다. 광범위한 고대 농경사와 문화, 토목 건축적 의의가 인정돼 1963년 1월 21일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벽골제 축조 시기는 백제11대 비류왕 27년(330)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벽골제는 이후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과 고려 현종 및 인종 때 고쳐 쌓은 후, 조선 태종15년(1415)에 중수했으나 세종 2년(1420)에 심한 폭우로 유실됐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이 제방을 운암제 설치에 따른 김제간선수로로 개조함으로써 그 원형이 크게 훼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골제는 전장(全長) 약 3㎞에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 총 5개의 수문을 품은 평지에 구축된 거대산업구조물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농경사회에서 치수기능을 헤아려야 한다. 전통농경사회에서 치수는 식량생산에 절대적 요소로 생존의 문제이자 국가존속의 문제였다. 대규모 수리시설은 국가기간시설이었으며, 왕의 권능은 치수자로서의 기능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벽골제는 제방을 쌓는 데만 연인원 32만여 명이 동원됐다. 당시 사회규모와 인구수 등을 고려하여 생각한다면 벽골제의 축조 유지 수축공사가 얼마나 거대한 국가단위 사업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벽골제 관광지도 조성돼 있다. 벽골제 농경문화 박물관, 벽천 미술관, 농경사 주제관 및 체험관, 전통가옥 체험마을 등이 있다. 벽골제 관광지 건너편에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이 있으며 국립 김제 농업생명 청소년 수련원도 2013년 개원을 앞두고 있다.
소설 [아리랑]의 마을과 아름다운 낙조의 망해사
2012년 10월에 개관한 아리랑문학마을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아리랑] 주인공들의 터전이었던 김제 죽산면 내촌·외리마을에 조성됐다. [아리랑]은 일제 수탈과 강제징용, 소작쟁의, 독립운동 등 조선후기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선조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아리랑 문학마을에서는 역사와 문학의 만남을 지향하고 있다. 홍보관에는 소설 아리랑의 주요 내용과 함께 한민족의 애환과 투쟁, 처절한 삶과 혼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내촌·외리마을에는 그 당시 수탈당하고 억압당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초가가 조성돼 있다. 또한 민중의 생활을 개선한다는 미명하에 착취하고 탄압했던 주재소, 면사무소 등 전위기관을 표현한 근대전시가로 4동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독립운동의 상징적 건물이 된 하얼빈역사 등이 들어서 있다.
망해사에서 보는 낙조
만경강 하류 서해에 접하여 멀리 고군산 열도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는 망해사는 백제 의자왕때 지어졌다. 중국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 조선시대인 1589년 진묵대사가 망해사 낙서전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낙서전은 ‘ㄱ’자형의 팔작지붕이며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뒤에 근래에 만든 종이 걸려 있다. 건물의 오른쪽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서 법당 겸 요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진봉산 고개 넘어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 위에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 있어 이름이 망해사다. 낙서전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는 압권이다. 망해사 뒤쪽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돼 바다와 평야를 동시에 관망할 수 있다. 이 산책로를 따라 가면 심포항이란 작은 포구가 나온다. 망해사에서 심포항까지는 약 1㎞ 남짓한 거리다. 심포항에는 횟집단지가 조성돼 있어, 포구의 정취와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이 길은 최근 조성된 ‘새만금 바람길’의 일부로 포구와 갯벌, 숲길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최근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새우가 알을 품은 연못, 농사를 주제로 한 축제
김제 청하산 청운사 마당 아래 약 2만여 평의 다랭이 연못들이 바로 백련으로 유명한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다.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곳에 백련지들이 위치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련은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로 7~9월 사이에 꽃이 피는데 일시에 피는 것이 아니고 석 달 동안 계속 피고 진다. 연꽃은 씨주머니 안에 씨앗을 담고 있으므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며 꽃말은 순결과 청순한 마음이다. 또한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고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물 밖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을 구원한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고 나아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극락정토를 상징한다. 백련은 꽃봉우리를 밀어 올리기 전에 맑은 향내음을 내기 시작한다고 한다. 백련지에서 생산되는 연꽃을 활용, 웰빙시대의 기능성 식품개발 및 연꽃 백련을 테마로 한 하소백련축제가 매년 7~8월에 열린다.
하소백련지의 모습
‘하늘과 땅이 만나는 오직 한 곳 김제로 오세요’라는 부제와 황금들녘 지평선을 배경으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농경문화의 중심지 벽골제에서 도작문화의 전통과 체험을 바탕으로 가을에 지평선축제가 개최된다. 김제지평선축제는 8년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농경문화를 주제로 축제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나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농경문화축제로 평가되고 있다.
청룡과 백룡의 접전을 그린 쌍룡놀이, 축제의 흥을 더해주며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농악소리, 단야낭자의 아름다운 효심과 사랑 위에 완성된 벽골제 축조설화를 재현한 단야낭자 인형극이 펼쳐진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농경문화를 소개하고 지평선 쌀의 홍보를 위한 외국인 쌀 음식 솜씨자랑과 세계 음식문화 페스티벌, 수채화 같은 코스모스 300리 길이 펼쳐진 지평선을 달리는 수많은 가족 마라토너도 만날 수 있다. 15미터의 청룡과 백룡이 겨루듯 서 있는 쌍룡 포토존, 지역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두 마리 용이 춤추듯 싸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쌍룡 횃불놀이가 지평선의 밤을 밝힌다.
갤러리
바다와 붙어 있는 망해사는 국내 최고의 낙조가 일품이다
출처:(신택리지, 박용근, 경향신문)
옛 날 옛적 옹고집 이야기
성격이 더러워서 심술이 사납고, 고집이 세어 안에서는 80노모에게 만고의 불효자이고 마을 사람들에겐 막심한
수전노(守錢奴)였는데 구걸온 도사에게 걸려 쫓겨나서 유랑걸식을 하면서 참회하고 지금은 용서를 받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전국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단체 손님들에겐 연말에 공이 있는
회원들에게 시상도 하고 한 해를 보내면서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을 잊으려는 忘年會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하는
착한 옹고집 식당을 운영한답니다. 아래 그림은 식당의 내외부 사진입니다.ㅋ
2024-12-31 작성자 명사십리
2024 갑진년(甲辰年) 한 해동안 위 게시물들을 검색하시고 전문가들이 세밀히 역사적 자료들을 고증하신
내용의 글들을 탐독하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5 을사년(乙巳年) 새해에도 늘 건강하서셔
소원성취(所願成就)하시길 바랍니다. 기왕에 들어오셨으니 회원가입도 하셔서 회원님들을 비롯한 여러분
들과 따뜻한 인연 맺으시는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