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od Essay_미각의 즐거움 포슬포슬 부드러운 이 계절의 맛, 6월 21일 하지는 절기상 1년의 절반에 해당한다. 한 해의 허리다. 해도 가장 길어진다.그러나 해의 높이와 달리 북반구의 더위는 좀 더 기다려야 절정에 달한다. 그래서 하지는 여름의 몸통이 아니라 입구다. 하지가 되면 우리는 생리적으로 여름을 예감한다. 한여름을 맞기 위해 우리 몸이 적응을 시작하는 계절이다. 이때는 잘 먹어둘 필요가 있다. 하지 감자의 출현도 이 대목이다. 양력 3월에 심은 감자의 맏물이 나온다. 이름 하여 하지 감자다. 듣기만 해도 입안에 전분질이 밀도 있게 꽉 차는 듯하다.
어느 날인가, 그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갔다. 내가 준비한 건 하지 감자였다. 고추장과 상추, 보리쌀도 있었다. 보리밥을 안치고 감자를 깎아 얹었다. 감자를 으깨어 보리밥에 섞고 고추장을 얹은 후 상추쌈을 먹었다. 갓 스물의 내가 그런 요리를 할 줄 알았던 걸 보니, 지금 생각하면 요리사의 자질(?)이 있었나 보다. 친구들은 허겁지겁 쌈을 먹었다. 막일을 해서 까맣게 타고 비쩍 말라 볼품없던 녀석들. 목이 멘 것은 감자의 전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경숙의 소설 <감자 먹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인 나는 한때 식모를 살며 구박덩이이던 고향 사람 유순이와 오랜만에 통화를 한다. 그때 나의 현관문에 붙여놓은 고흐의 그림을 본다. 유순이의 삶이 그림 속 어린 여자의 모습에 투영된다. 고흐의 이 걸작은 회화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중요한 열쇠가 된 지 오래다. 거친 노동으로 피곤하고 퀭한 눈빛, 갈퀴 같은 손으로 감자 먹는 농부의 모습은 인간 역사의 불평등성을 그대로 노정하는 기념비적인 증언이었다. 고흐는 이 작품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이 작품 한 점을 그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크로키와 스케치를 했다. 그중 상당수가 여전히 남아 있어 그가 이 작품에 쏟은 애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친동생이면서 동지이자 후견인 역할을 한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이렇게 썼다. 그의 이런 태도를 계급적 견지라고까지 할 수는 없으나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편지에서 이런 말도 썼다. “그 손은 그들이 땅을 판 손이기도 하다. 농부는 목가적으로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 진실하다. 시골에서는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는, 먼지가 뒤덮인 푸른 옷을 입은 처녀가 숙녀보다 멋지다.” 고흐는 평생을 노동하는 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않았다. 고흐의 그림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여러 이유 중에는 이런 그의 태도가 포함된다. The Potato Eaters, 1885, Van Gogh Museum Peasant and Peasant Woman Planting Potatoes - van Gogh Vincent van Gogh - Peasant Woman Planting Potatoes . Basket Of Potatoes, 1885, Vincent van Gogh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서도 그렇지만, 감자와 고구마는 종종 혼동을 일으킨다. 물론 소설 <감자>는 고구마를 뜻한다. 고구마는 감저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감자와 종종 헷갈린다. 지금도 여전히 남한의 여러 지역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고도 한다. 이는 서양인도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감자는 알다시피 ‘Potato’이고 고구마는 ‘Sweet Potato’라고 한다. 이탈리아어도 마찬가지여서 고구마를 ‘Patate Dolce’, 즉 달콤한 감자라고 한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감자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에서 인간의 음식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 후 유럽에 전래되었지만 지금처럼 식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일부 호사가들이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토마토와 마찬가지로 악마의 열매 정도로 오랫동안 금기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밀 재배가 수월하지 않은 산악 지역과 토질이 척박한 지역을 중심으로 해 식량으로 급속히 자리 잡게 된다. 나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지역 사람은 밀가루보다 감자를 더 많이 먹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것이다. 그 지역은 밀 재배가 잘 되지 않았고, 산악이라 감자를 재배하기 쉬웠다. 그래서 지금도 향토 음식으로 파스타가 아니라 감자를 먹는다. 뇨키(Gnocchi)라는 일종의 감자떡이다. 감자를 삶은 후 소량의 밀가루나 옥수수 가루에 섞어 떡처럼 빚은 후 물에 삶아 먹는다.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지만, 역사적으로는 의외로 파스타를 거의 먹지 않은 지역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감자는 어떻게 전래된 것일까.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초로 보인다.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이런 글이 있다. “순조 갑신과 을유 양년(1824~25) 사이 명천(明川)의 김씨가 북쪽에서 종자를 가져왔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재배량이 크게 늘었고, 산간 지방을 중심으로 대체 작물로 환영을 받았다. 감자는 맛도 좋았지만 열량도 충분하고 각종 미네랄 같은 영양 물질이 많아 인간의 생존에 크게 기여한다.
우리의 주요 감자로 처음 알려진 것은 일본에서 개량한 남작 품종이다. 남작(男爵=Baron)이란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근대를 일찍 시작한 일본은 유럽을 흉내 내어 작위 제도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지금까지 주요 감자 품종으로 재배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남작 품종을 안 것은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고등학생 시절 농업으로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를 치렀다. 서울에 있는 고교였으니 농업을 가르치지 않았으나 개인적 호기심으로 농업 과목을 선택한 것이다. 교과서를 구할 수 없어 교보문고에서 참고서를 한 권 구입해 혼자 공부했다. 감자의 품종을 묻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중 중요한 것이 남작이었다.
우리나라는 농산물에서 품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냥 가지, 오이, 호박, 감자, 고구마 하는 식이다. 그러니 같은 값이면 소출이 많은 품종이 유행하기 마련이다. 남작의 몰락도 그 맥락이다. 남작 대신 수미라는, 밀도가 끈적끈적한 품종을 많이 재배한다. 수미라는 이름의 감자칩이 있을 정도다. 물론 감자칩을 만드는 데는 수미 같은 품종이 낫다. 그러나 감자전을 부치거나 삶아 먹을 때는 남작 같은 품종이 더 맛있다. 그러나 남작을 구하기 어려우니, 수미를 삶아놓고 맛이 없다고 농사꾼과 시절을 타박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북 음식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냉면이다. 평양냉면은 잘 알다시피 메밀로 만들고, 함흥냉면은 감자가 주원료다. 감자는 일제 강점기에 여러 목적으로 북한의 산간 지대에서 많이 재배했다. 군사 식량을 보충하려는 의도도 컸다. 한반도에서 쌀을 공출하고 감자를 먹도록 유도했음이다. 그래서 함경도(인근의 강원도를 포함해)에서 감자 요리가 발달하게 된다. 함경도에서는 냉면이라기보다 농마국수라고 했다. 농마란 녹말이란 뜻. 감자를 갈아 섬유질을 빼고 하얗게 내린 가루가 녹말이다. 이것으로 반죽해 양념을 얹어 찬물에 말아 먹은 것이 함흥냉면의 원조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감자 대신 주로 고구마 전분을 쓴다. 쫄깃한 맛이 더 강하고 값이 싸기 때문이다. 감자는 우리나라에선 한(恨)의 식품이다. 쌀 대신 먹어야 했던 구황 식품이면서 어려웠던 세기의 상징적 이름이다. 논이 드물어 쌀을 별로 먹지 못한 강원도 산간의 설움을 간직하고 있다. 유럽에서 감자는 아일랜드 사람에게 비슷한 의미로 각인되어 있다. 이름 하여 ‘아일랜드 대기근’은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영국은 12세기에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공격, 점령한 이래 오랜 세월 수탈과 점령의 역사를 이어갔다. 1840년대, 이 와중에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닥쳤다. 밀과 옥수수 등은 대부분 영국으로 수탈당하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삼은 것이 화근이었다. 감자에 돌림병이 퍼져 대부분 썩는 바람에 먹을 식량이 없었다. 인구 800만 명 가운데 200만 명이 굶거나 전염병으로 죽는, 실로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아일랜드 사람들의 북미 이주가 활발해졌고,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 사람들의 감정은 회복될 수 없는 통한의 역사로 남게 된다. 대기근 당시 영국은 식량의 대거 수탈이라는 원인 제공자로서 아무 반성 없이 아일랜드를 위한 구제 활동에 등을 돌렸던 것이다. 유럽 축구 경기에서 독일-프랑스보다 영국-아일랜드 간의 경기가 긴장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곱게 갈아 전을 부치고, 감자밥을 하는 건 또 어떨지. 어릴 때 시골집 마당에서 모깃불을 피우고 감자를 굽던 냄새가 지금도 코끝에 간절하다. 시절은 가고, 감자의 역사도 그렇게 흘러간다.
감자는 지구에 별똥별로 떨어진다….”
글 박찬일(푸드 칼럼니스트ㆍ이탤리언 레스토랑 ‘인스턴트 펑크’ 셰프) 포토그래퍼 김재이 요리 양은숙(요리 연구가) 흙 속의 보물, 영양 만점 하지 감자 요리 감자 명란 빈대떡
1 감자는 찐 다음 껍질을 벗기고 으깬다. 2 명란은 얇은 막을 벗기고, 베이컨은 구워 기름기를 없애고 썬다. 3 감자와 명란, 베이컨을 섞는다. 4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이고 ③의 반죽을 도톰하게 깔아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 낸다.
1 감자는 굵직하게 썰고 소고기는 국거리로 썬다. 2 양파도 굵직하게 썰고 홍고추와 대파는 어슷 썬다. 3 달군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볶는다.육수를 부어 10분 정도 끓이다가 감자를 넣어 한소끔 끓인다. 4 양념을 풀어 넣고 양파도 넣어 끓인다. 마지막에 홍고추와 대파를 넣어 마무리한다. GOLD & WISE KB Premium Membership Magazine ================================== Baskets of Potatoes - Vincent van Gogh Peasant Woman Peeling Potatoes - van Gogh Vincent Vincent van Gogh . Woman, Sitting by the Fire, Peeling Potatoes, Sketch of a Second Figure - Vincent van Gogh - Peasant Woman Cooking by a Fireplace [1885] Drawing Sketch, Vincent Vangogh Potato field behind the dunes - van Gogh Vinc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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