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예술
아름다운 인류 본연의 모습
깨달음의 길
의식혁명 14. 예술속의 힘
여러세기를 거쳐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위대한 미술, 음악,
건축작품들은
높은 끌개 패턴이 갖는 효과의 내구적 표현이다.
우리는
그 작품들 속에서
우리 문명의 거장 예술가들의
'완벽성과 우아함에 대한 몰두'의 반영을 보았는데,
그것은 '인간성에 기품을 더하는 일에 대한 몰두'이기도 하다.
순수예술은
항상 세속적 영역에서
사람의 가장 높은 영적 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 되었다.
시대를 거슬로 올라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피디아스 시절부터,
예술의 역할은 사람이 무엇이 될 수 있고
또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상을
물질적 매체속에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예술은 인간 영의 정제된 표현을,
유형적 형태를 갖는
그리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것을 고정시킨다.
위대한 예술은
인간의 경험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정연한 본질을 불러내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론 물리학자처럼 예술가는
외견상의 혼돈속에서 질서를 발견한다.
예를들어
미켈란젤로는 무의미한 대리석 덩어리만 있었던 곳에서
다비드와 피에타를 보았으며,
그 완벽한 이미지를 해방시키기 위해
끌로 주변을 돌을 제거했다.
또한 그는
시스티나 성당의 무의미한 회벽에
얼룩진 무늬를 골똘히 바라보는 동안,
예술의 영감을 통해 경이로운
abc를 착상했다.
그리고
예술의 기법을 통해
오늘날 최후의 심판으로
알려진 A--> B --> C를 구현했다.
예술의 유산은
인류에게 내적이기도 하다.
구현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동안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수성이
우리안에 뿌리내리며,
외견상으로 무질서한 존재의 뒤죽박죽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미적 보상을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예술과 사랑은
자신에 대한 가장 큰 선물이다.
사랑없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
예술은 항상 영혼의 제품이며,
인간존재의 손길의 수공품이다.
그것은
네안데르탈인 시대 이래로 그러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러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컴퓨터 생성미술과 위대한 사진들조차
원화만큼 높게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단히 흥미로운 근육테스트 실험은
원화를 바라보는 사람의 근육강도를 테스트하는 것인데,
이것은 누구든 해볼 수 있다.
그 결과
그림의 기계적 복제본을 바라볼때의 근육강도와
비교해보라.
수공으로 만들어진 것을 쳐다볼 때
사람은 강해진다.
복제본을 쳐다볼 때는 약해진다.
이는 그림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진실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주제의 원화가 쾌적한 주제의 복사본보다 피험자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헌신적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사랑을 불어넣는다.
인간의 손길과 독창성 둘다에 큰 힘이 있다.
따라서
근육 테스트는
위조 미술품을 가려내는
안전 탐지기가 되어준다.
칼 융은 예술과 인간존엄성의 관계 및 예술에서 인간영의 중요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융 자신은 역사상의 모든 유명한 정신분석 의사 중에서 가장 높게 측정된다.
음악은
구상성이 가장 덜하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예술 중에서 가장 미묘하다.
하지만
음악은
좌뇌적 합리성을 우회하여
의식하의 우뇌적 패턴감각에 직접호소하는 가운데,
동시에 가장 본능적이고 감정적이다.
음악은 또한
끌개패턴들이 어떻게 실상을 규정하는지에 대한
가장 쉬운 예가 되어준다.
혼돈과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에 대한 어떤 유효한 정의에 이르고 싶거든,
그저 소음과 음악의 차이에 관해 명상하라.
다음은 에스토니아의 현대작곡가 "아르보 파르트"의 창조적 과정에 대한 묘사이다. 이것은 끌개 패턴들의 펼쳐짐에서 예술적 천재의 중대한 역할과 관련하여 우리가 관찰한 많은 것을 요약해준다. 파르트의 작품은 흔히 초월적 혹은 신비적으로 묘사된다.
"곡을 쓰려면
나는 오랜 시간
나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때로는 그렇게 하는데 5년이 걸린다. ...
나의 삶, 나의 음악, 나의 작품,
나의 어두운 시간속에서,
나는 이것 하나 외에는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확실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것은
나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며,
나는 단일성을 찾아야 한다.
그것,
이 하나는 무엇인가?
그것의 흔적은
수많은 변장을 한채 나타나고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떨어져 나간다....
나는 여기에
침묵과 더불어 홀로 있다.
단 하나의 음이 아름답게 연주될 때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내 목표다.
시간과 무시간은 연결되어 있다.
이 찰나와 영원성이 우리 안에서 투쟁하고 있다'
예술 가운데 가장 금세
우리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하는 것,
우릴 벌떡 일어서게 만들거나 혹은
우리에게 사랑과 창조성의 정점을 향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음악(music)이다.
연주자든, 지휘자든, 작곡가든, 우리는 장수가 고전 음악 끌개장과의 결합의 자연스러운 귀결인듯 하다는 점에 이미 주목했다.
고전음악은
흔히 지극히 높은 고유한 힘의 패턴을 입증한다.
하지만
모든 예술 가운데
건축은 어디서나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유형적이고 영향력이 강하다.
우리는
건물안에서 살고 쇼핑하고 일하고
여흥을 찾는다.
그래서
건조물 자체의 형태는
최대의 주목을 받을 만한데,
왜냐하면 그것의 영향력은
그토록 많은 인간활동에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건축가운데
대성당은 특별한 경외심을 자아낸다.
대성당의 에너지 패턴은
건축형태중에서 가장 높게 측정되었다.
그것은
몇가지 요소의 결과인듯 하다.
우리의 대성당 경험은
다수의 예술, 즉 공간설계는 물론이고
음악, 조각, 그림같은 것을 동시에 결합시킬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신성에 봉헌된 건조물이다.
창조주의 이름으로 태어난 것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높은 끌개패턴과 정렬된다.
대성당은
영감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통일하고 가르치고 상징하며
사람 안의 가장 숭고한 모든 것에 봉사한다.
하지만
건축의 아름다움은 광대할 필요도
규모상으로 웅장할 필요도 없다.
아일랜드 교외를 점점이 수놓은
작은 초가집들보다 매력적인 건축환경은 드문데,
그곳의 집들은
어느 집이나 앞서 보았던 집보다
더 기이하고 그림같다.
천부적 심미안은
장엄함과 웅장함의 우아한 표현들에 만큼이나
전통적인 단순한 가옥건축에도 깃들어 있다.
잘 지어진 공공건축은
공리성과 결합된 형태의 아름다움에 관해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발언을 한다.
기능과 아름다움은
러시아의 큰 지하철 역들 및
캐나다의 수많은 새 고층아파트 건물군의 설계와 배치에서
인상적으로 결합된다.
오래된 문화들은
항상 아름다움의 실용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름다움이 빠진 채로 설계된 것은
빠르게 악화된다.
건축적으로 추한 동네는
황폐함과 폭력의 순환고리의 일부가 된다.
도시 빈민가의 지저분하고
비인간적인 공영주택단지들은
더러움과 범죄속에서
약한 힘의 패턴들을 나타낸다.
하지만
사람이 끌개 패턴과 정렬하고 있느냐에 따라
빈민가의 궁핍함은 타락의 구실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을 딛고 일어서려는
영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패배할 것인지 승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환경의 현실이 아니라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이다).
우아함(grace)은
미적 감수성이 갖는 힘의 표현이다.
그리고
힘은
선의 아름다움과 스타일에서든,
표현에서든, 항상 우아함과 더불어 나타난다.
우리는
우아함(grace)을 elegance, 정제(refinement),
노력의 경제성과 결부시킨다.
우리는
고딕식 천장의 우아함으로 하여 고양되는 것과 똑같이
올림픽 선수들의 우아함에 경탄한다
.
우아한 힘의 패턴들은
생명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받든다.
그에 더해 우아함은
무조건적 사랑의 한 측면이다.
우아함은 또한 관대함을 함축하는데,
그것은 물질적 관대함만이 아니라
기꺼이 감사를 표현하거나
자신의 삶속에서 타인의 중요성을 기꺼이 인정하려는 것같은
영적 관대함을 말한다.
우아함은
겸양(modesty) 및 겸손함(humility)과 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힘은 자신에 대해 자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력은 자기의심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항상 과시해야 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힘에 대해
그것이 어떠한 표현을 갖든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힘이 전 인류를 이롭게 하는
선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이물질적인 문화들 속에서
여러 다른 시기에 그 자체를 표현해왔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의 눈속에 있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전달수단일 뿐임에 주목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본성은 변치 않으며
아름다움이 지각되는 형상만이 변할 뿐이다.
높은 의식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형상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모든 생명이 신성할 뿐아니라
모든 형상이 아름다움이다.
첫댓글 의식이 앞선 이들이 모든 형상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모든 생명이 신성할 뿐아니라 모든 형상이 아름다움이다.
고맙습니다
예술과 사랑은 자신에 대한 가장 큰 선물이다. 사랑없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 예술은 항상 영혼의 제품이며, 인간존재의 손길의 수공품이다. 그것은 네안데르탈인 시대 이래로 그러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러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컴퓨터 생성미술과 위대한 사진들조차 원화만큼 높게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단히 흥미로운 근육테스트 실험은 원화를 바라보는 사람의 근육강도를 테스트하는 것인데, 이것은 누구든 해볼 수 있다. 그 결과 그림의 기계적 복제본을 바라볼때의 근육강도와 비교해보라. 수공으로 만들어진 것을 쳐다볼때 사람은 강해진다. 복제본을 쳐다볼 때는 약해진다
세계의 모든 건축가운데 대성당은 특별한 경외심을 자아낸다. 대성당의 에너지 패턴은 건축형태중에서 가장 높게 측정되었다. 그것은 몇가지 요소의 결과인듯 하다. 우리의 대성당 경험은 다수의 예술, 즉 공간설계는 물론이고 음악, 조각, 그림같은 것을 동시에 결합시킬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신성에 봉헌된 건조물이다. 창조주의 이름으로 태어난 것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높은 끌개패턴과 정렬된다.
위대한 예술가는 자신의 힘에 대해 그것이 어떠한 표현을 갖든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힘이 전 인류를 이롭게 하는 선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이물질적인 문화들 속에서 여러다른 시기에 그 자체를 표현해왔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의 눈속에 있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전달수단일 뿐임에 주목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본성은 변치 않으며 아름다움이 지각되는 형상만이 변할 뿐이다. 의식이 앞선 이들이 모든 형상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모든 생명이 신성할 뿐아니라 모든 형상이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