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는 유독 늦게 싹을 틔우는 나무다.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가 꽃을 피우며 봄의 정취를 뽐내는 춘분, 청명, 곡우가 지난 다음에야 겨우 싹이 튼다. 대추나무는 마치 세상의 속도와는 무관하다는 듯 그 화려한 봄날을 묵묵히 마른 가지로 서 있다. 혹여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닐까,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사실 대추나무는 그 긴 시간 동안 가장 단단한 열매를 맺기 위해 에너지를 안으로 응축시키고 있는 중이다. 대추나무는 헛꽃이 거의 없어서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는다. 또 대추나무 목질은 유독 단단하여 도장을 만드는 재료로 인기가 높다. 모진 풍파와 긴 기다림을 견디며 나이테를 촘촘히 쌓아 올렸기에 가능한 강도이다. 지금의 이란전쟁이 살상으로 번지며 잔인해지고 오일쇼크로 이어져 물가가 폭등하는 두려움에 걱정이 될 때, 대추나무를 보며 지금의 시련이 더 단단하고 가치 있는 세계평화로 이어지길 기도하며, 2026년 병오년(丙午年) 여덟 꼭지째 칼럼으로인내(忍耐: 참고 견딤)를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참을 인(忍)은 칼날 인(刃)에 마음 심(心)이 더해진 글자다. 칼날 인(刃)은 칼 도(刀)에 불똥 주(丶)가 결합 된 한자이다. 칼도(刀)는 칼날이 구부정하게 굽은 칼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베다’, ‘새기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글자의 오른쪽 즉 변으로 쓰일 때의 자형은‘刂’이며, 독립적으로 쓰이는 일은 없고 다른 글자와 어울려 쓰일 때는 刀와 구별하여‘선칼도’라 이른다. 刀는 칼로 베는 동작[나눌 분(分), 끊을 절(切)]을 나타내며, 刂는 물건을 자른 상태 [마를 제(制), 법칙 칙(則)]에 관계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장(刀匠: 칼을 만드는 장인), 도화(刀貨: 옛날 중국에서 사용하던 칼 모양을 한 금속제 화폐)가 좋은 용례이다.
불똥 주(丶)는 점(작고 둥글게 찍은 표), 불똥(심지의 끝이 다 타서 엉기어 붙은 찌꺼기), 심지(등잔, 초 따위에 불을 붙이기 위하여 꼬아서 꽂은 실오라기나 헝겊)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붉을 단(丹)과 주인 주(主)자에 쓰인 점 주(丶)가 좋은 용례가 된다. 칼날 인(刃)을 종합적으로 풀어 보면, 칼끝이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뜻한다. 백인(白刃: 시퍼런 칼날), 병인(兵刃: 날이 있는 병기)가 좋은 용례이다.
마음 심(心)자는 생각, 마음,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을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심경(心境: 마음의 상태), 단심(丹心: 속에서 우러나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좋은 용례이다. 덧붙여 心자가 글자의 왼쪽(변)으로 사용될 때는 심방 변(忄)으로 모양이 변화고 글자의 밑에 사용될 때는 마음심 발(㣺)로 변형된다. 성품 성(性), 공손할 공(恭)이 좋은 용례이다.
견딜 내(耐)은 말 이을 이(而)에 마디 촌(寸)이 더해진 글자다. 말 이을 이(而)는 긴 수염을 본뜬 글자로 말이 수염 사이로 연이어 나온다하여 문장 연결의 어조사로 사용되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다가 지금은‘자네’나‘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로써’나‘~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사용된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이공(而公: 너의 임금), 이금(而今: 지금에 이르러)가 좋은 용례이고, 而자의 변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마디 촌(寸)은 한의사가 환자의 손목 맥박을 짚는 모양을 형상화 한 글자로‘헤아리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맥을 짚을 때의 엄지손가락의 길이로 한 치(3.03㎝) 등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아가‘작다’와 촌수의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촌지(寸志:얼마 안 되는 작은 뜻)와 촌수(寸數:친족 사이의 멀고 가까운 관계)가 용례가 된다. 견딜 내를 종합적으로 풀어 보면 무거운 것을 들고 있는 형벌이나, 수염을 뽑는 벌도 능히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모두가 앞다투어 화려함을 뽐낼 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추나무는 늦게 시작하는 것이 뒤처지는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늦게 핀 꽃이 더 오래가고, 늦게 맺힌 열매가 더 달다’는 진리를 묵묵히 보여준다. 대추나무처럼 인내의 시간을 거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고 반드시 좋은 결과물로 돌아온다. 그 인내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꽉 채워 마침내 눈부시게 발돋움하는 과정이다. 가장 붉은 보석을 주렁주렁 내어놓을 대추나무를 상상하며 풍성한 가을을 기다리기로 한다.
| 忍 | = | 刃(刀+丶) | + | 心 |
| 참을 인 |
| 칼날 인(칼도, 불똥 주) |
| 마음 심 |
| 耐 | = | 而 | + | 寸 |
| 견딜 내 |
| 말 이을 이 |
| 마디 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