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n번방'과 유사한 수법의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앞서 지난 29일 KBS는 '엘'이라는 인물이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 동영상을 만들어 텔레그램 등에 유포했다고 보도했다.
또 피해자들은 주로 미성년자며 관련 영상물이 수백 개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n번방' 사건보다 '더 악랄하게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했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복수의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번방, 박사방 형량은 이례적...여전히 수사 체계 미흡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n번방'을 운영하면서 성착취물 영상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갓갓' 문형욱에게 징역 34년형을 확정했다. 또 앞서 유사한 수법으로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은 징역 42년형을 확정받았다.
전문가들은 'n번방' 운영자 문형욱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무거운 형량이 내려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이와 유사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 다수는 그런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현재 당국의 수사 체계는 실제 범죄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특히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은 주로 수사 당국이 아닌 피해자의 제보로 민간이나 언론에서 먼저 조사해 이후 경찰 수사로 이어진 경우가 많으며, 이는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취약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배 프로파일러는 "제 2의 n번방, 주도자 엘이나 공모했다고 알려진 엠, 이런 범죄자들은 이 범죄사회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잘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며 "사이버 공간에서 계속 범죄를 시도하는 범죄자들이 이런 수사 당국의 취약점을 모를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지금처럼 사이버 수사대 몇 되지도 않는 인원으로 대응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전문적인 사이버 성 착취 범죄 대응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화된 디지털 성범죄 처벌
디지털 성범죄는 동의 없이 상대방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유포·유포협박·저장·전시하는 행위, 온라인 공간에서 타인의 성적 자율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 등을 모두 포함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촬영은 7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촬영물을 유포하거나 재유포한 경우도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일 경우 성착취물의 제작 및 배포는 최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실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주범들이 검거된 후 디지털 성범죄 관련 처벌은 강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처벌 강화에도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5109명 중 10대가 1194명(17.2%)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많았다.
'처벌의 신속성·확실성 부족'
전문가들은 사이버 성착취 범죄자들에게 '운이 나쁘면 잡힌다'가 아니라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데, 현재는 '어쩌다' 범죄가 적발되면 다시 땜질식 처방을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범죄를 통제하는 이론을 놓고 보면 처벌의 엄중성, 신속성, 확실성 세 가지 요소가 있다"며 "현재 당국은 처벌의 엄중성을 강화하고 있지만, 처벌의 신속성과 확실성이 함께 보장되지 않으면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 처벌의 확실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온라인 수사의 강화"라며 "지금까지 수사기관에서 서버가 외부(해외)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사가 어렵다고 이야기해 왔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또 "온라인 범죄의 수사 영역이 기존 오프라인 상의 범죄의 수사 영역보다 훨씬 광역권"이라며 "국제공조 체계 구축을 통해 처벌의 확실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배 프로파일러는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전문 인력 양성이라고 말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로 인식 제고돼야'
전문가들은 또 보이스피싱 범죄와 같은 다른 온라인 범죄가 사회적으로 부각된 것과 달리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일부 소수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배 프로파일러는 아직까지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수사가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신고제 형태로 사안을 보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면서 이런 인식은 "온라인 성착취 범죄를 특정한 미성년자들의 문제라고 사건의 양상을 축소해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변화하는 맥락에 맞게 범죄 대응도 변화해야 한다"며 "온라인 성착취 범죄에 대해서도 살인이나 강도 사건 못지 않게 공동체를 위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하는 사회 주요한 핵심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https://www.bbc.com/korean/news-62747480?xtor=AL-73-%5Bpartner%5D-%5Bnaver%5D-%5Bheadline%5D-%5Bkorean%5D-%5Bbizdev%5D-%5Bisapi%5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