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강 신화’ 품은 명예의 전당인가, 혈세만 축내는 밑 빠진 독인가.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지 12년. 전국 10곳 월드컵경기장의 2014년 현주소는 크게 다르다. 절반의 경기장이 적자 수렁에서 헤매고 있다.
대구와 인천, 제주, 울산, 대전경기장 등은 해마다 수십억원의 지자체 예산을 수혈해야만 운영이 되는 실정이다.
전 국민을 들뜨게 했던 축구 성지가 ‘혈세 먹는 하마’ ‘애물단지’ 등의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경기장들은 최근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가고 있다.
◇한숨만 커가는 경기장=대구시는 대구스타디움(월드컵경기장)이 개장 이후 397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고 16일 밝혔다.
연평균 33억원이다. 첫해 21억원을 손해 봤고 2012년과 지난해는 각각 41억원과 39억원 적자였다.
대구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민자사업(950억원 투입)으로 2011년 9월 복합문화쇼핑공간인 ‘칼라스퀘어’를 개장했지만 실패했다.
영업 시작 전부터 민간 사업자 간 공사대금 문제, 면세점 유치 불발 등의 문제가 생긴 데다 171곳의 점포 가운데 70곳은 아직도 분양하지 못했다.
한일월드컵 당시 ‘16강 진출’의 영광을 안았던 인천문학경기장은 지난해까지 290억원 가까운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한 해 적게는 13억원에서 많게는 39억원의 손해를 봤다. 이곳의 인건비만 연간 20억원에 이른다.
바다를 끼고 있어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제주경기장 역시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다.
최근 3년간 제주경기장의 적자가 23억여원이다.
지난해 지출액은 7억6900만원이었으나 수입액은 입장료와 워터파크, 영화관, 박물관 임대료 등 1억5900여만원에 그쳤다.
서귀포시는 2006년 프로축구팀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적자 구멍을 다 메우지는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실정은 대전경기장도 마찬가지다. 대전은 매년 10억원 이상 적자를 보고 있다. 울산문수경기장도 해마다 시 예산을 축내고 있다.
울산경기장은 울산현대축구단의 홈구장으로 사용되며 해마다 16∼22회의 경기가 열리지만 관중은 평균 8200여명에 불과하다.
경기장의 손실은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메워지고 있다.
더욱이 경기장이 지어진 지 13년이 되다 보니 앞으로 들어갈 시설 보수비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경기장은 시설유지비로 지난해만 90억원을 썼다.
이들 경기장은 “공익을 앞세우는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재정상태를 개선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제주구장은 2004∼2008년 업체 유치 등을 통해 조금이나마 흑자를 냈으나 이후 공공성을 중시하면서
적자폭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웃음 되찾는 경기장=서울경기장은 개장 첫해부터 흑자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2005∼2007년 1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남기는 등 지난해까지 평균 92억원의 흑자를 냈다.
월드컵 이후 수익시설(월드컵몰)을 활성화해 축구와 쇼핑, 문화 등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덕분이다.
서울시설공단은 “관람석 스카이박스 등 경기장 내 유휴공간을 대관하거나 공연,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경기장 외곽에도 풋살경기장, 썰매장 등을 조성해 수입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주와 부산, 광주, 수원경기장 등도 최근 흑자 경영으로 돌아섰다.
전북 전주경기장은 4년 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났다. 경기장 인근에 지어진 골프장을 2009년 10월부터 직영하면서
해마다 25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예식장과 사우나, 서바이벌장 등의 임대료로 10억여원이 보태졌다. 또 잔디와 전광판 관리를 직원들이
직접 맡으면서 연간 1억원 가까이 아꼈다.
이로 인해 2011년 7억원에 이어 2012년 5억5000만원, 지난해 10억2000만원의 돈이 남았다.
전주시설관리공단 조용익 차장은 “골프장이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그 전에는 구멍 뚫린 독에 물 붓는 상황이었으나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며 “국가대표팀의 A매치가 열리는 날이면
좌석이 가득차는 등 월드컵의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아시아드경기장은 2년 전 흑자로 돌아섰다.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안겨준 이곳은 이전까지 30억6000만원의 적자에 허덕였으나 2012년 5억5300만원, 지난해 21억3200만원을 남겼다.
부산시는 예식장과 음식점 등이 들어선 ‘아시아드시티’를 개발, 연간 14억여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 대형마트 등을 유치해 연간 17억3100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
‘4강 신화’의 산실인 광주경기장도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2007년 주차장 일부를 한 대형마트에 빌려준 덕분이다.
경기장 측은 이곳으로부터 매년 45억8000만원을 받고 있다. 임대 기간은 20년이다.
◇계속되는 자구노력=지자체와 관리공단은 각 월드컵경기장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4강 신화’ 성지로서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울산시는 153억여원을 들여 경기장 3층 관중석에 유스호스텔 건립을 추진 중이다.
관중이 잘 채워지지 않는 곳에 유스호스텔을 지어 숙박시설도 확충하고, 경기장 활용도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시는 이곳에 경기 관람이 가능한 객실 46개와 회의실 2개, 취사장, 세탁실 등 부대시설 15개 등을 연내에 지을 예정이다.
인천시는 지난 1월 문학경기장을 SK와이번스에 위탁하고, 기존 인력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 인력으로 재배치해
24억원을 절감했다.
또 지상 3층 지하 1층의 서측 공간을 무상 임대해 체육회관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문학야구장, 박태환 수영장, 선학경기장 등이 본격 가동되면 이 일대가 스포츠타운으로 활성화할 것”이라며
“SK와이번스도 자본 투자를 할 예정이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시설관리공단은 경기장 옆 자동차견인보관소에 볼링장과 키즈카페 등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