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 옌볜거리에 울려퍼진 … 이명랑 작가의 <천사의 세레나데>
중국동포의 제2의 고향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이명랑의 <천사의 세레나데/뿔>이다. 기자는 중국동포 특히,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것을 신문기사를 통해 보고, 서점에 가서 소설책을 구입해 읽었다. 300페이지 분량의 단행본 <천사의 세레나데>는 <지선>이라 하는 초등학생 3, 4학년 또래의 여자아이를 화자(話者)로 하여 가리봉동 쪽방에서 생활하는 조선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인이냐 중국인냐 하는 뒤죽박죽 섞여 있는 정체성을 가진 어른들과 아이들, 주인공 <지선>이도 엄마가 한국에 결혼으로 온 조선족이지만, 아빠가 조선족인지 한국인이지 정확히 모른다. 학교 들어갈 나이에 학교도 못가고 가리봉동 옌벤거리에서 '도둑고양이질' 놀이와 종이피아노를 치며 노는데 ....
가리봉동과 피아노, 얼핏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이다. 왜냐하면 가리봉동 하면 일반 한국인들 인식에는 음침하고, 무섭고, 어두운 곳이라는 이미지, 그래서 거기에 가면 큰 봉변을 당할 것같은 두려움마저 갖게 된다.
가리봉동에 대한 이런 생각은 한국 매스컴의 영향도 클 것이다. 좋은 이미지보다는 외국인 범죄가 일어났다하면 화면에 단골메뉴로 비쳐지는 곳이 가리봉동 옌볜거리이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이 찍은 영화 <황해(2010)>에 비친 가리봉동은 청부살인 조선족과 한국인 갱단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장소가 된다. 조선족 갱단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런 가리봉동에 이명랑 작가는 피아노라는 소재를 갖고 와서 이곳을 인간이 사는 세상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쓰레기통'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가리봉동 옌벤 거리가 외부에서 보듯이 무섭기만 한 곳이 아니라, 인간미와 애정이 흐르는 따듯한 거리임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기자는 소설을 단숨에 읽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가리봉동에서 작가가 정말 느낀 것은 무엇이고, 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그래서 지난 11월 1일 저녁 작가가 1주일에 한번씩 강의하러 가는 북아현동 추계예술대학 인근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자: "소설 배경이 가리봉동 옌볜거리인데, 이곳에 관심 둔 이유는?"
작가:“저는 영등포시장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면서 작가의 길을 갔어요. 어머니가 영등포시장에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이천년도 쯤에 식당에서 조선족 아줌마들이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 분들이 가리봉동 이야기를 하시고, 양꼬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저도 가리봉동을 그 전에 두 번 가본 적이 있어요. 중 2때(86년) 반 친구가 가출을 해 가리봉동에 갔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고, 고등학교 때도 친구가 가출해 가리봉동 음악다방에서 일한다고 하여 가본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가리봉동에는 청소년들이 가출하여 쪽방에서 생활을 많이 했고 음악다방 같은 것이 많았을 때였는데, 조선족아줌마들이 쉬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간다고 하여 저도 가리봉동에 가보았죠,"
2000년초, 작가가 가리봉동에 갔을 때는 음악다방은 노래방으로 바뀌어 있었고, 친구가 살던 쪽방은 철거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 철거촌 골목 안쪽에서 세 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바이올린이라니!'
뜻 밖이라는 생각과 함께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겠다 생각한 작가는 2005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가리봉동 쪽방에 사는 조선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소설은 2010년부터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자:“가리봉동에 사는 조선족동포들의 삶은 어떠했나요?”
작가:“영등포시장에서 사는 한국인이나 가리봉시장에서 사는 조선족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뭔가 크게 성공해보겠다는 그런 욕심을 갖고 사는 것도 아니죠. 하루하루 벌어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지마 정작 본인은 잘 못 입고 못 먹더라도 생활비 아껴가면서 돈을 모아 자녀 학비 대고, 작게 작게 계획해 이루어가면서, 자녀 사업밑천 대주면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선족동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지, 일할 곳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행복을 일하는 데에서 찾는 모습을 많이 보았죠.”
기자:“그래도 한국인들은 가리봉동에 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이곳에 대한 혐오증까지 있잖아요?”
작가:“그건 꼭 조선족이 사는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봐요. 강남에 사는 사람들에게 강북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자 그러면 강남사람들은 강북에도 그런 곳이 있냐면서 절대 가지 않으려 하죠, 일종에 지역주의, 경계선을 그어놓고 혐오하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한국사회에서 강한 것 같아요. 제가 가리봉동에 간다면 사람들이 놀래요, 거기에 가서 뭐하냐고, 괜찮냐고. 이상하죠, 제가 수십번 가리봉동에 갔어도 아무 일 없었는데도, 가리봉동에 간다면 이상하게 보는 거예요.”
기자:“꼭 외부에 사는 한국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한국인 지역민들도 조선족동포와 이웃하며 살면서도 거부하고 꺼려한다는 거예요.”
작가:“소설속에 나오는 양주맥주 꽃사슴 호프집의 정자아줌마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고 봐요. 정자아줌마는 한국인 지역민이죠. 정자아줌마 눈에 비친 가리봉동의 조선족은 한국보다 중국을 더 크게 보는 중국인일 뿐이죠. 다 공산당으로 봐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한국국적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지 진짜 한국이 좋아서 한국인이 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기자: 작가님의 생각은 어떤지요?
작가:“조선족이든, 필리핀이든 외국인이 필요에 의해서 한국국적을 딸려고 하는 것을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죠, 우리 한국인들도 미국에 가서 그러는데 조선족이 그러는 것은 안좋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봐요.”
소설에서는 정체성을 고민하는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도문강 할머니는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노래를 입에 달고 산다. 영감탱이로 통하는 꼽추할아버지는 지선이에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도 중국에서 공산당 당원이 된 이야기며 문화대혁명때 홍위병에 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족을 꼬리빵즈라고 부르게 된 이유를, 한국사람이 조선족이 되고, 중국국적자가 된 배경을 들려준다. 그중 연변 사과배 이야기는 중국인과 다른 조선족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잘 말해준다. 중국인들은 이별할 때 리(移)와 배를 뜻하는 리(梨)가 뜻은 달라도 발음이 같기 때문에 사과배를 나눠먹지 않았지만 조선족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과배를 나눠먹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어린 지선에게 틈틈이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이 조선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꼽추 할아버지는 가리봉동에서 제일 박식한 사람을 대표한다. 피아노학원 원장이기도 한 그는 한때 잘 나가던 피아니스트이고 교수였다. 그런데 그가 가리봉동에 왜 오게 되었고, 영감탱이로 불리는 것일까. 결국 꼽추할아버지는 그렇게 원하던 한국 국적을 회복한 기쁨을 얼마 못 보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초라하게 죽게 되지만, 그의 <천사의 세레나데>를 흉내내어 치는 지선이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가 아끼던 피아노를 물려주고 간다는 감동스토리가 이어진다.
기자: "가리봉동의 재개발문제가 관건인데, 소설을 쓰면서 이 문제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작가: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면서 가리봉동만의 정체성을 갖는 특화된 캐릭터를 찾고자 노력했어요. 이것은 가리봉동이 재개발되고 변화되어 가더라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찾고자 했던 그 캐릭터는 가리봉동 뿐만 아니라 영등포시장, 탄광촌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더군요."
기자: "소설제목을 '천사의 세레나데'로 정한 이유는?"
작가: "출판사에서는 '가리봉동 차차차'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제가 '천사의 세레나데'로 정하자고 했죠. 가리봉동 쪽방, 철거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은 가리봉동과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죠. "
이명랑 작가는 가리봉동에서 조선족동포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녹음한 것을 가끔씩 저녁 무렵에 혼자 틀어놓고 듣는다고 한다. 녹음테이프에서는 인터뷰내용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생기는 잡음도 잘 조화되어 들려온다. 그럴 때 작가는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1973년생인 이명랑 작가는 25세 때부터 소설을 써왔다. 글을 쓰면서 내가 왜 글을 쓰는가 힘들어 할 때도 있었는데, 조선족동포를 만나면서 내가 글을 쓸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인터뷰=김경록 기자
@동포세계신문 제280호 2012년 11월 8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