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하더니 역시 월요일, 밝게 해가 빛나자 눈은 곧 녹아버립니다. 어제 그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도 도로는 눈자취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아이들 눈밭걷게 해주고 눈사람도 만들어보고 하는 계획이란 역시 제 머리 속의 구상일 뿐...
오늘 너무나 놀란 사실은 완이의 어처구니없는 흰 눈 앞에서 완전 얼어붙는 자세! 한 발짝도 못 떼고 눈밟는 것에 완전 얼어붙어 공포에 벌벌 떠는 모습이란... 설마 눈왔을 때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문열고 나와서 눈밟기에 극심한 공포감을 보이며 거의 30분을 그렇게 서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눈을 쓸어주고나서 걸음을 떼는데 이게 뭐지? 의문에 의문을 더하고. 겨울털신 하나 사주었더니 그건 오늘 처음 신었는데도 거부감없이 잘 신더니...
그렇게 촉각방어가 눈밟는 것에서부터 징하게 올라오더니 오늘 또 애먹은 게 장갑. 당연히 장갑은 안 낄 거라는 건 잘 알지만, 문제는 장갑낀 내손이 닿기만 하면 미친듯이 놀라며 달아나곤 합니다. 바닷가를 걸으니 차거운 바람에 손이 시려울텐데 장갑은 못 낄 망정 장갑낀 손으로 차가와진 손이라도 감싸주려 해도 동물적 방어수준의 놀람반응이 나옵니다.
눈같이 즐거운 기후상황이나 장갑에조차 이런 반응을 보이니 도대체 언제 이런 평범한 방어기전에서 놓여나려는지. 촉각방어는 곧 촉각자극 욕구로 변질되기에 제가 잠시 방심만 하면 등 뒤에 기어오르려 하고 제 무릎에 앉으려 합니다. 제가 딱 거부하니 잠시 삐쳐서 괜히 버텨보기도 하고...
오늘 선택한 표선 민속해안도로는 정말 훌륭하고 독특한 올레길이었습니다. 표선해수욕장 주차장에 차세워놓고 표선 해비치리조트 입구 하얀등대까지 대략 9천보 행군코스였는데 민속해안도로로 갈 수도 있지만 바닷가 가까이 돌길이 쭉 나있어서 멋진 길과 멋진 풍광 그리고 멋진 운동코스였습니다.
표선항에서 다 보이는 소금막해변에서 표선해수욕장 전경. 우리가 갔을 때는 밀물 때라 표선해수욕장에 끝까지 물차있던 풍경은 처음 봅니다. 표선항은 등대 쪽 뿐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도 바닷가 쪽 닿는 길이 여러군데라서 여기저기 다녀보기도 좋습니다.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소였다는 하얀등대로 향할 때는 민속해안도로를 이용했는데 겨울특유의 갈대풍경과 아열대성 식물들의 조화가 묘합니다.
중간에 돌길로 합류, 이 길은 아무래도 소망길같습니다. 소망을 담아 사람들이 쌓아올려 놓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습니다. 방파제격 돌담 위에도 지나는 사람들이 더 올려놓은 소망의 돌들이 티가 납니다. 그 와중에 돌들 사이에 숨어서 시들지 않고 있는 꽃들...
하얀등대 도착! 준이는 등대 가파른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밑에서 하소연하는 얼굴표정만 짓고. 두번째 태균이 사진 뒤로 보이는 무덤 하나. 밀물 때 괜찮을까 걱정이 되는데, 청개구리 아들의 엄마의 마지막 유언은 거스르지 않은 우스운 동화가 생각납니다. 준이의 청개구리 행동을 잠재우기 위해 종일 사랑의 표현, 작렬하게 했습니다. 오늘은 완전 성공인데 내일은 어떨지? ㅎ
돌아올 때는 표선항까지 계속 돌길 행군. 유난히 비틀거리는 준이에게 꼭 필요한 길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태균이까지 옆에서 계속 지켜주려 하니 다행입니다.
종일 어두운 날씨에다 바닷가 특유의 강한 바람에다 육지에 비하면 한파라고 할 수 없지만 제주도의 날씨치고는 꽤 추운 날이긴 했습니다. 이런 멋진 길을 찾아서 오늘도 행군을 해볼까 합니다. 돌아오는 길 서귀포 쪽으로 해안도로를 도는데 문득 드러낸 한라산 정상. 소리질러대며 태균이한테 보라고 하니 함께 봐주네요.
어제 저도 돌담 위에 세 개의 돌을 올리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태균이 더 성숙해지고, 준이 무사히 사춘기 벗어나고, 완이는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성장하기를...
첫댓글 표선 바다가 여러 모습이네요.
저도 대표님의 소망탑에 기도 함께 바쳐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