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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지역 대표음식들의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각 지역의 한국인들이 어떤 밥상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는지를 알수 있다.
저도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인데, 특히 어려운 시절에 한국인들이 먹었던 밥상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전쟁중 1950년 흥남부두에서 피난민들이 승선한 <매러디스 빅토리아호>가 출발했다.
1만4천여명의 피난민들이 거제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거제도민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피난민들을 대접했다고 한다.
아주 어려운 시절에 한국인들이 먹었던 밥상이 바로 주먹밥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자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어떤 밥상을 준비하실까? 궁금하지 않는가?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고난의 시간에 엘리야를 먹이셨던 하나님의 밥상을 소개려고 한다.
1. 북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시작되었다(1)
본문에 갑자기 엘리야가 등장한다.
마른 하늘에 갑자기 우박이 떨어지듯이, 방향 지시등을 사용하지 않고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염치 없는 운전자처럼 예고도 없이 엘리야가 등장한다.
엘리야가 아합왕을 방문하여 북이스라엘 땅에 몇 해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것이라고 예언한다(1)
비가 내리지 않으면 흉년이 찾아온다.
흉년이 오면 먹을 거리가 부족해진다.
이런 현상을 "기근"이라고 한다. "기근"? 흉년으로 인하여 먹을 거리가 부족한 상태를 지칭.
북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시작되었다. 원인은 무엇일까?
성경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죄로 인하여 육적 궁핍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16:29-34)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섬겼고, 바알의 신전을 건축, 아세라상을 만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다(34)
이로 인하여 기근이 시작되었다.
혹시 여러분의 가문이나 가정에 기근이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기근을 겪는 중인가?
혹시 그 기근이 영적인 일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는 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신다(2-7)
기근이 시작되자, 하나님이 제일 먼저 엘리야를 피신시키신다(2-3)
하나님의 관심은 엘리야에게 있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살았다.
우리 미준교회가, 우리 인생이 이렇게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관심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아합의 보복으로부터 엘리야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피신 장소를 지목하셨다.
요단강 동편에 있는 그릿시냇가이다.
"the brook Cherith" (KJV)
"brook"? "개울"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일종의 실개천을 뜻.
"그릿"? 히) "단절"을 의미.
하나님은 엘리야를 물이 콸콸 솟아지는 강이 아니라 작은 개울이 흐르는 외진 곳으로 몰아 가셨다.
그릿시냇가는 외부와 단절된 아주 열악한 장소라는 의미이다.
엘리야는 이곳에서 숨어지냈다. 하나님의 종이 숨어지냈다.
그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그저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행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아주 열악한 장소에서 숨어지내개 된다.
엘리야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자신같은 신실한 사람이 왜 이런곳에서 지내야 하는지 신세 한탄할 수도 있었다.
엘리야에게도 이런 찐 무명의 시절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숨어 지냈던 때가 있었다.
지금 이런 시절을 지내는 중일 수도 있고, 다행히 아직 그런 시절이 닥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시절이 오면 가장 염려하는 것이 먹고 사는 문제이다.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히 말한다.
생계를 염려하는 것은 육적인 일이 아니다. 하찮은 일도 아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영적인 문제이다.
하나님도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신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기도원에 가라고 하지 않으셨다. 성경만 읽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40일 금식기도하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주님의 위대란 종들에게도 생계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기근의 시절에는 더욱더 그렇다.
하나님께서 기근의 시절에 엘리야에게 무엇을 어떻게 먹이시는가?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하여 까마귀 밥상을 준비하신다(4)
"까마귀들이 아침 저녁으로 먹을 것을 날라다 줄 것이다"(공동번역본)
까마귀? 참새과에 속하는 조류이다.
까마귀의 습성중 두 가지를 소개한다.
암컷이 알을 부화하는 동안 수컷이 암컷을 먹인다고 한다. 사람의 행태와 비슷하다.
아내가 입덧을 시작하면 남편이 먹을 것을 사다 나르지 않는가?
이 기간이 약 20일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까마귀는 잡식성이다.
곡식이나 나무 열매뿐 아니라 곤충이나 작은 짐승의 새끼같은 육식성 먹이감도 섭취한다.
이런 까마귀의 습성을 고려해 볼때, 까마귀는 약20일 동안 엘리야에게 온갖 음식을 날라다 주었을 것이다.
1)"까마귀 밥상"? 예상치 못한 밥상을 의미한다.
"까마귀가 사람을 먹인다"는 생각을 할수 있었을까?
"까마귀 밥상"이란?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대접을 받는 밥상을 가리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기근의 시절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먹이신다.
우리가 단절되고 열악한 공간에 갇혀 지낼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까마귀를 보내신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백성들을 먹이신다.
이 사실을 잊지마라.
그런데 얼마 있다가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그릿시냇가를 떠나라고 명령하신다(7)
"얼마 후에" "After a while"(KJV)
그릿시냇가가 말랐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기근으로 인하여 지하수가 말랐던 것이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에도 기근이 찾아온다. 그릿시냇가는 하나님이 친히 지정하신 장소가 아닌가?
엘리야가 적응할만하니,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하신다.
그릿시냇가를 떠나는 순간부터 더 이상 까마귀는 나타나지 않는다.
2) 까마귀는 잠시 동안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준다.
"까마귀 밥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일시적인 공급을 의미.
3) 하나님은 우리가 까마귀 밥상에 익숙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까마귀 밥상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까마귀만 기다린다.
그리고 나중에는 까마귀가 하나님인줄 착각한다.
잊지마라.
우리가 기근의 시절에 까마귀의 도움을 받았지만, 까마귀 밥상은 우리가 영원토록 기다려야 할 밥상이 아니다.
까마귀가 우리를 먹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인다(4) "명령하여"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밥상에 익숙해져야 한다.
3. 그리고 하나님은 홀여인을 통해 엘리야를 먹이신다(8-10)
단절된 장소를 떠나 엘리야가 도착한 장소는 사르밧에 있는 홀여인의 집이었다(8-9)
그릿시냇가에서 사르밧까지는 약100킬로미터 정도이다.
그릿시냇가는 이스라엘 동쪽끝에 위치했고, 사르밧은 시돈땅이니, 이스라엘 서쪽끝에 위치했다.
그러니깐 엘리야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을 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엘리야를 위하여 홀여인 밥상을 준비해 두었다(9) "과부"
남편을 잃은 여인을 가리킨다.
그 당시 과부는 사회구제대상이었다. 사회적 약자에 속했다. 매우 경제적으로 궁핍한 계층이었다.
홀여인 밥상? 가난한 자들이 공급해주는는 밥상을 말한다.
12절을 읽어보라.
엘리야가 사르밧 홀여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여인은 마지막 만찬(?)을 준비중이었다.
기근은 가난한 가정에 더욱더 큰 고통을 주었다.
그리서 이 여인은 마지막 식사를 하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가난한 홀여인이 자신과 아들이 먹어야 할 밥상의 일부를 엘리야에게 내어주었다(13)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은 기근의 시대에도 엘리야를 먹이셨다.
하나님은 단절된 장소에서는 까마귀 밥상으로, 사르밧땅에서는 홀여인 밥상으로 엘리야를 먹이셨다.
지금도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하여 까마귀 밥상을 준비해 놓았다.
하나님은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물질을 공급해주신다.
정말 감사하다.
기근의 시절에 까마귀 같은 분을 만나게 되면 너무 고맙다.
하지만 기억해라.
까마귀 밥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시적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래토록 까마귀 밥상만을 기다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하여 홀여인의 밥상을 준비하셨다.
가난한 자들이 준비한 밥상이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런 경우, 우리는 대접을 받아야하나 고민이 생긴다. 미안할 정도이다.
그런데 홀여인은 엘리야를 정성껏 대접하고 큰 복을 받는다(15-16)
교훈은? 이 구절은 주님의 종을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아니다.
우선순위를 지키면 복을 받는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하다.
홀여인이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내어준 근거는 엘리야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14-15)
재정 사용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재정 지출이 가장 우선이다. 두 번째가 저축이다.
홀여인은 저축하지 않았다.
그녀는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먹을 것을 내어 놓았다.
우선순위를 지키면 하나님도 우선순위를 지키신다.
그래서 기근의 시절 내내 이 가정에 먹을 것이 공급되었다.
기근의 시절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신다.
때로는 까마귀 밥상으로 때로는 홀여인밥상으로
전도사님이 11월 21일에 영국으로 출국한다. 6개월간 체류할 예정이다.
영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전도사님은 외국인 신분이 된다.
이때부터 문화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기근이 시작될 것이다.
인종차별도, 물질 기근, 문화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 한국에 거주중인 외국인들을 보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마라.
하나님이 전도사님을 먹이실것이다. 엘리야를 먹이신 방식으로 하나님이 전도사님을 먹이실 것이다.
그리고 고마운 분들을 만날 것이다. 까마귀도 만나고 홀여인도 만날 것이다. 이들로부터 유용한것들을 대접받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라. 이들의 도움은 아주 일시적이다. 전도사님이 기다려야 할 밥상은 까마귀 밥상이 아니다. 홀여인밥상도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밥상을 기다려야 한다.
11월 첫주일이다. 하나님의 밥상을 기다리며 11월을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