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55
■1부 황하의 영웅 (255)
제 4권 영웅의 길
제 31장 유랑의 시작 (12)
다시 서너 시간을 걸었다. 중이(重耳) 일행은 정신이 몽롱하여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중이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호모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저 나무 밑에서 쉬었다 갑시다."
지칠 대로 지친 중이(重耳)는 호모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몇몇 사람은 아직 뒤에 처져 당도하지 않고 있었다. 호모(狐毛)가 중이를 위로하기 위해 말했다.
"조쇠에게 고기포 한 조각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조쇠가 도착하는 대로 그 고기포로 허기를 면하십시오."
곁에 퍼질러 앉아 있던 위주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고기포가 있다고 하지만 조쇠 혼자서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양인데, 어찌 아직까지 남아 있겠습니까?"
"너라면 혼자 먹어 치웠을 테지만, 조쇠는 그럴 리가 없다."
"조쇠는 별다른 사람이오? 헛수고하지 말고 고사리나 캐어 먹읍시다."
모두들 위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투듯 고사리를 캐서 삶았다. 이미 지겹도록 먹은 고사리였다.
중이(重耳)는 이를 악물고 먹으려 했지만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헛구역질만 나왔다.
그때 개자추(介子推)가 어디서 구했는지 김이 무럭무럭나는 고깃국 한 그릇을 가지고 와 중이(重耳)에게 바쳤다.
중이는 워낙 허기가 진 상태라 정신없이 그 고깃국을 먹었다.
너무나 맛이 좋았다. 옆사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숨에 그릇을 비웠다.
다먹고 나서야 중이(重耳)는 궁금증이 일어 개자추를 향해 물었다.
"어디서 고기를 구했는가?"
개자추(介子推)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그것은 저의 허벅다리 살입니다. 제가 듣기로, 효자는 제 몸을 죽여서까지 부모를 섬기고, 충신은 제 몸을 죽여서까지 임금을 섬긴다고 합니다.
지금 보니 공자께서 너무나 시장하신 것 같기에 제가 허벅다리 살점을 조금 도려내어 국을 끓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중이(重耳)는 큰 소리로 통곡하였다.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옆에 있던 가신들도 고개를 돌린 채 어깨를 흐느꼈다.
"아아, 도망다니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너무나 폐를 끼치는구나. 장차 무엇으로써 그대에게 이 은혜를 갚을꼬!"
개자추(介子推)는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저는 공자께서 귀국하실 날이 오기만을 빌 뿐입니다. 이 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개자추(介子推) -.
본명은 개추(介推)다. 자(子)는 후일에 붙인 호칭으로,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다.
개자추는 산서성 북쪽의 개후(介休)라는 지방의 면상(綿上)에서 태어난 사족(士族)이다
면상은 산간마을이라 면산(綿山)으로도 불린다.
일찍이 큰 뜻을 품고 면산을 떠나 진(晉)의 수도 강성으로 향하던 중 명망이 자자하던 공자 중이(重耳)가 포읍에 거처한다는 소문을 듣고 발길을 돌려 포읍으로 들어가 가신단에 합류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했다.
그래서 좀처럼 중이(重耳)라든가 호언의 눈에 띄지 않았다. 무명의 가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이의 눈에 개자추(介子推)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백적(白翟)마을을 떠나 유랑길에 오르면서부터 였다.
남들이 하기 싫어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개자추가 나서서 해결하곤 했던 것이다.
개자추(介子推)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여 중이에게 바쳤다는 일화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은공을 드러내지 않는 개자추의 성격을 극단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당시의 일을 소상히 기록한 <사기>나 <춘추좌씨전>, <국어> 등에도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 살을 베어 국을 끓였다는 일화는 없다.
다만 <장자(莊子)>의 <도척>편에,
-개자추(介子推)는 충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배고픈 주인을 먹였다-
라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개자추(介子推)의 이 행적을 단순히 허구라고 단정짓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개자추의 성격상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자(莊子)>에 서술된 이 일화는 중이(重耳) 일행이 제(齊)나라로 가는 도중에 겪은 고통과 시련이 얼마만큼 참담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전형이다.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주인을 먹인 개자추(介子推)의 지극한 충성심에 감동하여
한바탕 울음을 터뜨린 중이(重耳) 일행이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데 뒤늦게 조쇠가 그 곳에 당도했다.
호모(狐毛)가 조쇠에게 자리를 내주며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처럼 늦게 오시오?"
"가시에 찔리고 돌부리에 채여 발이 찢어지는 바람에 빨리 걸을 수가 없었소이다."
조쇠(趙衰)는 이렇게 대답하곤 등에 멘 짐에서 고기포를 내어 중이(重耳)에게 바쳤다.
중이가 처량하면서도 안타까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도 배가 고플 텐데, 어째서 먹질 않았소?"
조쇠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저라고 왜 배가 고프지 않겠습니까만, 그러나 어찌 주인을 저버리고 저 혼자 이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호모(狐毛)가 위주를 돌아보며 놀려댄다.
"저 고기포를 네가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쯤 모두 네 뱃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위주는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중이(重耳)는 고기포를 나눠 조쇠에게 먹으라고 내주었다.
조쇠는 고기포를 실처럼 가늘게 찢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중이는 그러한 조쇠의 행동을 보고 더욱 감탄하였다.
'제(齊)나라로 가는 길이 그다지 의미가 없지는 않구나.'
진정한 충신은 시련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고 했던가.
개자추(介子推)의 충성심 이라든가 조쇠(趙衰)의 의리 등은 백적 마을에 머물러 있었을 때는 몰랐던 일이었다.
'아, 나는 행복한 사나이다!'
다시 일어나 걷는 중이(重耳)의 발걸음은 전보다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