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김치칼국수 워뗘(어때)?"
엄마가 물으셨다. 말해 뭐 할까, 당연히 좋지! 메뉴는 분명 김치칼국수였는데 소고기가 한가득이다. 김치는 거들뿐, 소족을 고아 우려낸 고깃국물이 육수로 쓰였다. 양은 또 어떻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한 그릇씩 퍼냈는데도 국수가 그대로인 것 같다. 크게 한 젓가락 뜨면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일반 식당과는 사뭇 다르다. 밖에서는 팔지도 않는 음식이지만 판다고 치면 얼마를 내고 먹어야 할까?
엄마는 손이 빠르다. 손이 크기도 하다. 뚝딱뚝딱 도마 위에서 칼질 몇 번이면 재료 손질이 다 끝나있고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몇 개의 냄비가 동시에 끓고 있다. 푸짐하고 맛깔난 엄마표 반찬들로 차려진 밥상은 사십 년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요즘 식당에서 밥 한 번 사 먹으려고 하면 만 원은 기본인데 엄마 밥은 평생 공짜였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간다. 엄마에게 얼마를 빚지며 살아온 걸까? 먹을 반찬이 없다고 투덜거리던 철없던 날들이여.
결혼을 하고서 가장 힘든 집안일은 단연코 음식을 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집안일은 가전이모님들께서 해주신다. 빨래는 세탁기 이모님, 설거지는 식세기(식기세척기) 이모님, 청소는 로봇청소기 이모님이 도맡아 해 주시니 걱정이 없다. 하지만 삼시 세끼 밥을 차려내는 건 오로지 내 몫이다.
반찬가게에서 반찬 몇 가지 사 오거나 밀키트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주말이나 연휴에는 집밥으로만 버티지 못하고 꼭 외식을 하게 된다. 어릴 때에는 생일이나 운동회처럼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나 외식을 했던 것에 비하면 외식이 일상이 된 나날이다. 반찬가게도, 밀키트도, 외식도 없는 매일의 밥상을 차리는 일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그 시절 엄마의 노고를 이제야 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소중하고 애틋하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직장에 다니는 이유 중 월급, 자아실현이라는 그럴듯한 이유 이외에 집안일을 100% 책임질 수 없겠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식구들 먹일 김장을 하고, 된장과 고추장을 쟁이고, 무를 소금에 절이며 참기름과 들기름, 고춧가루 같은 양념들을 챙기는 그런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그런 일들을 엄마처럼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이 모든 집안일에 서툴러도 괜찮은 단 하나의 면죄부는 '워킹맘'이지 않을까. 일하는 엄마를 둔 탓에 우리 아이들은 평생 '엄마김치', 엄마집밥' 같은 엄마의 손맛은 모르고 살아가게 될 예정이다.
나 자신이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를 자세히 보게 된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을까? 결혼해서 식구들 끼니를 챙기는 게 엄마의 중요한 일과가 되기 전에, 엄마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를 대할 때 엄마에게서 여자를 지우고, 사람을 지웠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내 엄마'였던 것처럼 나를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엄마는 노래를 잘 부른다. 엄마 동창들 중에는 엄마 노래를 들으려고 동창회에 나오는 분들도 계신다. 그 옛날 엄마가 가수의 길을 가고자 했다면 나는 지금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엄마에게 조금의 용기가 있어 '전국노래자랑'이라도 나갔더라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엄마한테는 애석한 일이 나에게는 잘 된 일인 셈이다. 내가 누리는 행복은 어쩌면 저당 잡힌 엄마의 꿈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세상에는 당연한 어떤 것도 없다. 엄마가 되고 싶다고 모두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며 엄마가 된 이후에 한 생명을 오롯이 책임지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엄마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엄마라는 역할의 무게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길이 없다.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은 사랑이고, 엄마의 사랑은 희생의 다른 말이었음을 아이를 낳고 키우며 조금씩 깨닫고 있다.
엄마는 오늘도 식구들 양 볼에 칼국수가 가득 담긴 후에야 젓가락을 드셨다. 자식들이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 찰 때까지 환한 웃음으로 보답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되돌려 드리려 한다. 진심 말고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짜밥을 셈 할 수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