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경제학과 2016110864 구자흠
※ 결심
스무살의 끝자락, 군대라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나는 PC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게임도 너무 많이 하면 질린다는 사실을 이맘때 처음 깨닫게 되었던 시기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친구와 PC방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무료하던 삶에 입대 전 남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친구와 이야기하던 중 자연스럽게 여행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서로 가본 적 있는 곳들을 이야기하였다. 친구는 일본을 가봤다고 했고, 나는 일본과 중국을 가족들과 가본 적이 있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흥미였을까, 아니면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친구와 여행을 떠나자는 말은 너무도 간결하게 나왔다. “여행 갈까?”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얼마의 돈이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핸드폰으로 서로의 잔고를 확인해보았다. 그 당시 나에게 있던 돈은 100만원, 친구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100만원을 여행자금으로 갈 수 있는 나라들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결정된 여행지는 베트남, 우리는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 3일 후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하였다. 돌아오는 비행기표는 예매하지 않았다. 계획을 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비행기는 돈이 다 떨어져갈 때 예매하기로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위험한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날짜에 가까워질수록 비행기표는 싸질 것이고, 핸드폰 어플만 있으면 언제든 비행기표를 예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 계획
여행 계획이라고는 이야기할게 별로 없다. 당장 비행기표를 예매한 날을 제외하면 2일 밖에 시간이 없었고, 우리는 대강적인 코스만 알아보았다. 친구와 나는 배낭여행은 처음이었다. 둘 다 여행 경험은 있지만 패키지 여행으로 다녀왔기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은 매우 합리적인 여행이다. 그 여행지에서 꼭 가봐야 할 곳들을 여행사가 미리 선정하여 스케쥴을 짜고, 여행객들은 시간 내에 둘러보고 돌아오는 형식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간 내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자 한번 휙 둘러보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우리가 짠 계획을 보면 너무 허술하다. 변압기도 도착하고 콘센트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사러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와 나는 여행 준비부터 끝날 때까지 베트남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베트남어로 표기된 것을 읽는 연습, 숫자, 인사말 등등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했던 것 같다. 이번 베트남 여행을 직관 에피소드로 뽑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직관이란 그 순간에 최선을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닌 내가 내린 판단을 최선의 판단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직관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베트남을 보다 더 즐기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 여행
당연히 여행은 시작부터 삐걱되었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서 환전을 하였는데, 공항에서 환전을 하면 수수료가 엄청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또한 공항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택시에서도 사기를 당해 이렇게 가다가는 집에 갈 날이 멀지 않았구나라는 생각과 좀 더 알아보고 미리 계획해서 여행을 왔어야한다는 후회가 지배하였다.
(여담으로 베트남을 여행하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하노이, 호찌민과 같은 대도시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사기가 넘쳐나요...)
첫 배낭여행의 실망감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사기를 당했는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 오늘 당한 사기 목록들을 노트에 정리해두고, 똑같은 수법에 당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며 하루를 마칠 정도였다. 숙소는 당일 묵을 숙소를 어플로 예매를 하였는데, 호텔스컴바인, 트리바고 등의 어플을 이용하면 모든 도시에서 숙소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날그날 현재 위치를 고려하여 숙소를 정했다. 이 때문에 특정 도시가 맘에 안 들면 다음 도시로 그날 넘어가기도 하고, 너무 좋은 도시가 있으면 며칠 간 더 머무르기도 하는 등 유동적인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하노이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뒤 하롱베이로 이동하였다. 이동수단 또한 베트남어를 공부해서 기차역, 버스정류장 등을 현지인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음식도 길을 걷다가 현지인들이 많은 음식점에 들어가서 아무거나 시켜먹었다.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몇 가지 꼽자면, 달랏이라는 도시는 우리 계획에 있던 도시가 아니었다. 여행을 하던 중 원래 다음 도시인 무이안이라는 곳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한 분이 달랏을 추천해서 선택한 도시였다. 달랏은 고산도시여서 시원하고, 호수가 너무 예뻤다. 그곳에는 달랏 대학교라는 대학교가 있었는데, 베트남의 대학교가 궁금해서 처음으로 가본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베트남 친구들을 만났다. 너무 신기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들과 수업 같이 듣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우리는 달랏 대학교 한국어학과 수업을 청강할 수 있었다. 그곳의 교수님은 한국인 분이셨는데, 외교관 일을 하시다가 이곳 교수직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흔쾌히 청강허락도 해주시고, 수업 시작 때 한국어로 자기소개도 시키셨다. 다른 나라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어보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경험해본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방문하여서 겪었던 일들이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되어 베트남-캄보디아-태국의 경로로 여행일정을 수정하였다. 우리가 방문한 두 번째 나라인 캄보디아, 다들 아시겠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와트가 매우 유명한 여행지이다. 앙코르와트는 시내에서 차로 10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우리는 그곳을 여행하려면 뚝뚝이라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나 자동차택시를 예약해야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대신 우리가 선택한 것은 자전거였다. 새벽 자전거를 타고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러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오에 접어들고 주변 온도가 30도를 웃도는 더위에서 그 넓은 앙코르와트를 구경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앙코르와트 입장료는 하루 이용권이 한화로 3만원 정도였는데, 우리는 돈이 부족해서 그날 하루 동안 앙코르와트를 전부 구경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8시간을 자전거 타고 앙코르와트를 전부 돌아본 뒤 돌아오면서 ‘내 앞에 달리는 내 친구가 쓰러지면 구급차를 어떻게 불러야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든 경험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가끔 친구와 베트남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친구는 그 때 너무 힘들었는데, 그걸 해낸 나는 모든 해낼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직관경험담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이와 같은 나의 베트남 여행이었다. 어찌보면 흔한 주제일 수 있으나, 직관과 가장 잘 맞는 주제라고도 생각한다. 숙소 결정부터 여행지, 음식, 일정 등도 모든 직관적으로 결정하였고, 그로 인해서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들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숙소는 현재 내 위치와 가장 가깝고 가성비 좋은 숙소를 정하는 등 현재의 최선의 선택도 하였고, 베트남 여행을 최고의 여행으로 만들고자 과정 속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