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곳으로 경관이 빼어나다
뒤로는 산세가 수려한 금련산이 있고 앞으로는 광안리해수욕장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해(背山臨海)의 명승지이다.
수영공원은 조선시대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에 이르는 남해안의 4군영을 관할했던
수군총괄 군영인 경상좌도(慶尙左道)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이 있었던 자리로서
현재는 성은 없고 성지 관련 유적만 수영공원에 남아 있다
수영(水營)이란 지명도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의 준말이었는데 현재의 지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지하철 수영역에서 장산 행 환승장에 서면 스크린 도어에 이런 수영을 알리는 홍보가 보이는데
오늘은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산으로 오르는 대신 수영사적공원(水營史跡公園) 트레킹을 나서기로 한다
수영사적공원은 수영 팔도시장에서도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오늘은 사적공원 위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답사를 하기 위해 망미역교차로(망미로타리)방향에서 접근을 한다
수영역 2번 출구를 나오면 수영사적공원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오고
망미역교차로 쪽으로 가다가 이 안내판이 있는 해운맨션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길 끝자락에 공원이 보이고
왼쪽 주차장 방향으로 가서 25의용단을 시작으로 답사를 하기로 한다
수영사적공원 부설주차장
25의용단(二十五 義勇壇)은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평민출신 의용군 25인을 기리기 위한 사당(祀堂)으로
1853년(철종4년)에서부터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향을 봉행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25의용단(二十五 義勇壇)은 주차장 바로 위에 있는데
외삼문(外三門)인 존성문(存誠門)을 들어가면
왼쪽에 관리사인 전사당(典祀堂)이 있고
정면의 내삼문(內三門)인 영회문(永懷門)을 들어서면
드디어 넓은 마당 한 가운데에 자리한 의용사(義勇祠)가 나온다
의용사(義勇祠)의 문은 굳게 잠겨있고
의용사 앞에는 25인 의용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25기가 좌우로 도열하여 서 있다
25인 의용인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새겨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묵념을 올린다
의용사 앞으로 보이는 수영의 주산(主山)인 금련산
25의용단(二十五義勇壇) 뒤편에는 수영산신당(左)과 독신묘(右)가 있는데
독신묘(纛神廟)는 병영의 군기(軍旗)를 모시는 신당(神堂)을 말한다
이제 공원 중앙부를 향해 올라가는데 .....
길 왼쪽에 커다란 까만 대리석 빗돌이 있어 살펴보니
앞면에는 수영팔경(水營八景) 서사(序詞)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수영 출신 향토 사학자인 최한복(崔漢福) 선생(1895~1968)의
수영팔경 가사비(歌辭碑)로 수영팔경이 새겨져 있다
수영8경을 부산역사문화대전에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1.운대귀범(雲臺歸帆) : 해운대 쪽에서 수영만으로 돌아오는 고깃배의 돛대를 맞이하는 감회를 말한다 조선 중기 동백섬 서쪽 마을을 운대리(雲臺里)라 불렀다
2.봉대월출(烽臺月出) : 장산의 한 줄기인 간비오산(干飛烏山) 봉수대 위로 떠오르는 달과 어우러진 경관을 말한다
3.진두어화(津頭漁火) : 나루터 저 멀리 보이는 고기잡이배의 불빛을 말한다 진두(津頭)는 배로 건너다니는 나루를 말하며, 오늘날 수영구 민락동 수영 2호교 부근에 있었던 포구로 추측된다
4.남장낙안(南場落雁) : 광안해안에 기러기 떼가 날아다니는 장관을 말한다 남장은 수영의 옛 지명인 남촌(南村) 앞 백사장으로 현재의 광안리 해수욕장이다
5.장산낙조(萇山落照) : 지는 해가 장산을 되비추는 경관을 말하는데, 장산은 해가 지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고 원뿔 모양으로 우뚝 솟아 그 경관이 빼어났다
6.백산만취(白山晩翠) : 해질녘 백산(白山)의 푸름과 산의 굴곡, 바위 그림자가 바다로 드리워진 경관이 매우 빼어났다 하여 붙은 말이다. 백산은 민락동에 있는 산이며 꼭대기 언덕을 백자대(白紫臺)라 불렀는데
지금의 부산문화방송과 옥련선원이 있는 산이다
7.재송직화(栽松織火) : 재송 마을 여인네들의 베 짜는 풍경을 말한다. 아낙네가 밤으로 베를 짤 때면 베틀 윗머리에 등잔불이 이집 저집으로 밝히게 되어 수영강 건너편 수영에서 바라볼 때면 소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보였던 것이다
8,연산모종(蓮山暮鍾) : 해질녘 연산 저 멀리서 사바세계를 누비며 들려오는 범종 소리를 의미한다 연산은 수영의 주산인 금련산(金蓮山)이며, 모종은 저 멀리 사바세계에서 들려오는 범종 소리를 말한다 이 산에는 옛 절로 알려진 마하사·반야암·바라밀다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마하사만 남아 있고 반야암과 바라밀다사는 마하사 입구의 맞은편 언덕에 축대만 남아 있다
수영8경 비석에서 조금 더 오르면 '수영민속예술관 놀이마당'이 나오는데
놀이마당은 천정이 돔으로 덮혀있어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없을 전천후 놀이마당이다
놀이마당 한편에는 .....
수영사적원과
수영민속예술관이 있다
수영성(水營城)은 도시화 과정에서 성(城)은 허물어지고 성지 관련 유적만 일부 남아 있었으나
1968년 공원으로 지정되어 수영 공원으로 개장하였고
1995년부터는 문화재 정비 사업을 전개하여 수영 공원을 역사 교육장과 시민 휴식처,
그리고 관광지로 개발하고자 새롭게 단장하여 수영 사적 공원(水營史蹟公園)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안용복장군 사당은 남쪽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안용복(安龍福) 장군은 동래출신 어민으로 수군(水軍)인 능로군(能櫓軍)이었는데
일본에 건너가 왜인들에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약 받아온 업적을 세워
후세 사람들에 의해 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안용복 장군 사당 전경
안용복 장군의 위패를 모신 수강사(守疆祠)
안용복 장군 충혼탑
안용복 장군 동상
왜(倭)의 막부가 독도가 조선땅임을 자인한 두루말이 문서를 오른손에 쥐고
일본을 향해 호령하고 있는 안용복 장군의 늠름한 모습
다시 공원 가운데로 돌아와서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휴게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그 옆에는 33기의 선정비(善政碑)가 모여 있는데
이 33기의 선정비(善政碑)들은 인조 17년(1639년)부터 고종 27년(1890년) 사이의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와 그 부관(副官)의 재임 중 공덕을 칭송하는 비(碑)들인데
수영성 남문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2002년 2월에 이곳으로 모아 새롭게 단장한 것이라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11호인 수령 약550년의 수영동 푸조나무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인 푸조나무는 팽나무와 비슷하여
지역에 따라서는 개팽나무 또는 검팽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아름드리 고목의 형체가 지난한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남문 인근에는 역시 천연기념물 제270호로 지정된 수영동 곰솔이 있다
수령 약450년의 천연기념물 제270호 곰솔
그 당시 수군절도사영(水軍節度使營) 병영(兵營)의 군사들은
이 곰솔이 군영(軍營)을 보호해주는 신성한 존재라고 여기고
나무에게 자신의 무사 기원을 했다고 한다
이제 수영사적공원의 답사는 수영성 남문(南門)을 지나면서 답사를 마치게 되는데
수영성(경상좌수영성) 주문(主門)이었던 남문은 아치형 석문으로 숙종 18년(1692년)에 건조된 것으로
한때 옛 수영초등학교 교문으로 이용되다가
1962년 6월에 수영초등학교가 광안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60년대 말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남문이 있던 원래의 위치는 여기에서 남쪽으로 100m정도만 내려가면 있다
하마비(下馬碑)
좌수영절도사 휘하는 모두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야 했을터
남문 좌우의 돌기둥 위에서 왜구를 감시하고 있는 '박견(拍犬)' 이라는 조선 개 한 쌍
이러한 형태의 돌조각상이 성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독특하다고 한다
남문을 빠져 나오니 저기 팔도시장 입구가 보이는데
그 앞 왼쪽에 기와지붕으로 보존되고 있는 우물이 눈에 들어온다
우물터 안내문
수영성 남문터
수영구에서는 사적공원 입구에 있는 남문을 이곳으로 이전하여 수영성 남문을 복원할 계획으로 있다
수영성 남문 옹성(甕城)
옹성이란 성문을 지키기 위해서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벽을 말한다
수영 팔도시장
한여름 한낮의 시장안은 한산하기만 한데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팔도시장이 이런걸 보면 아무래도 코로나19 탓도 있겠다
전포양곱창
팔도시장을 빠져나와 인근 망미동으로 발걸음을 옮겨 오래된 추억속에 남아있는 맛집을 찾아 나서보는데
이 전포양곱창집은 옛날 전포동 철길 옆에서 오래전 이곳으로 이전을 하였는데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하숙집 인근에 있던 고기집이었다
이 집을 찾은 가장 최근의 기억도 56회 성윤갑 선배가 부산본부세관장으로 부임하여 왔을 때
청기와 멤버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으니 벌써 15년 너머 전의 추억이다
전포양곱창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있는 옥미아구찜 망미동 본점
부산시내에는 옥미아구찜 분점들이 몇 곳 산재하여 있다
이 옥미아구찜 인근이 동기 김규홍의 옛 집이 있던 동네라고 들었다
나이가 들다보니 추억속의 옛것이 그립고 아련해지는 건 인지상정인지 ~~~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역에서 눈에 드는 시(詩)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이 시는 흠칫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시다
첫댓글 '수영사적공원'의 이모저모를 잘 묘사하여 놓았다.
친구의 정성을 다한 마음이 정말 아름답구나.
어릴 적, 이런 한여름이면
동네 아이들과 떼를 지어
양정동에서 수영까지 걸어서 갔다.
해수욕장에 들어가서 목이 잠길만한 조금 깊은 곳으로 가면
발 밑에 미끌미끌한 감각이 전해 져 온다.
잠수하여 모래를 헤집어 건져 올리면
하얗고 맑은 조개가 햇빛에 빛난다.
저녁 때가 되어 불룩해진 조개가 든 주머니를 들고서
다리를 끌고 집으로 오곤 했다.
그 자리를 다시 가보니 아주 높은 호텔이 들어서 있고
신세계백화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구나.
내 고향 삼천포 실안 갯펄에서 쪼꼬만 게랑 조개랑 맛조개랑 개불까지 한 주전자 잡아오면 어머니께서 맛있게 반찬으로 만들어 상 위로 올라오던 어릴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아 옛날이여~
내가 요즈음 다니는 서실이 수영사적공원
바로 옆에 있는데도
별생각 없이간판만 보고 다녔는데
조만간 한번 가봐야겠다
올려놓은 글과 사진은 감사하게 잘보고있네
선비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신언서판이 있다고 했는데 네가지 중 아직 이루지못한 나머지 하나를 완성하기위해 서실에 다니시는 모양이구려
얼굴 본지가 오래되었네
다음 볼때는 훤출한 선비가 되어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