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순 한국타임즈 칼럼니스트] 전국의 어린이집에는 장미꽃 넝쿨이 아예 없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꽃 중의 꽃'이라는 아름다운 장미꽃 울타리를 강제로 뿌리째 없애야만 했다.
국가 정책으로 어린이집 보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다는 명분하에 2005년도부터 실행해 온 '평가인증'의 '안전영역'에서 위험요인으로 감점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모두 없애야만 했다. 관찰용으로 비치해 둔 '소라껍질'도 애물단지가 되어 모두 버려졌다. 껍데기 귀퉁이가 눈곱만큼만 떨어져 나간 것도 감점 대상이요, 식물이나 애완용 동물도 아예 키울 수가 없다.
교사용 테이프커터기와 색종이 자르는 칼이 교사용 서랍에 있는 것도 잠금장치가 없으면 감점 요인이고, 이번에야 조정됐지만, 교직원들의 커피, 차, 건강식품의 유효기간까지 체크 사항이다. 심지어 장난감 사이에 놓인 잠궈진 상태의 옷핀조차도 지적사항이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해야할 시간에조차 평가인증을 받기위해서는 장난감자동차 바퀴 속 하나하나까지 살펴봐야만 한다.
한창 자라날 아이들에게 심미감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한 정서교육이건만 그런 건 아예 무시한 채 우리나라 어린이집 평가인증은 전국의 어린이집을 획일적인 잣대로 동일한 보육과정 속에서, 동일한 지표로 점수를 매기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전국의 아이들이 동일한 평가인증의 지표 아래에 지역적인 특성이나 시설의 특성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틀 속에 강제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실내에서의 '상호작용'에 관한 점수매기기이다. 영유아들간의 상호작용, 교사와 영유아간의 상호작용을 수치화해 한 쪽에 관찰자가 앉아서 점수를 매긴다. 현장에서 수십 년 경험을 한 교사들은 느낄 것이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얼마나 짧다는 것을! 낯선 이들이 교실 안에 있으면 더 산만해지고 소란스러워진다는 것을... 그 상황에서 교실 한 켠에 자리 잡고 앉은 관찰자가 아이들과 교사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며 평가를 하고 있다. 수십 년 교사 경력을 가진 자도 아닌 단기간의 교육을 거쳐 배출된 현장관찰자들이 말이다.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아도 부족할 판국에, 각종 문서와 지표에 따른 서식들에, 어린이집 원장들과 교사들은 평가인증 때마다 지칠 대로 지치고 더러는 못 견디고 이직하고 마는 이들도 다수이다. 평가인증을 하는 어린이집을 피해 다니는 이른바 '평가인증 기피철새족'들이 늘어나고 재직 중에도 인증 준비가 힘들어 퇴사하는 교사도 허다해, 교사 이직률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보육의 질적 서비스 향상을 저해시키는 가장 위험한 요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충분히 쓸 수 있는 장난감이나 완구에 조금만 흠집이 생겨도 안전영역에 감점되니 멀쩡한 장난감 자동차나 완구도 버리고 새로 장만해야만 한다.
물건 하나라도 아껴 쓰고 폐품도 이용해야할 형편에, 평가인증 지표대로 꾸미느라 자원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몇 년 더 일찍 시작된 사회복지시설평가는 이 정도는 아니다. 동일한 유아교육기관인 유치원 교육평가 또한 장학지도 차원의 평가이며, 현장 지원에 더 주력해 격려와 지도를 위주로 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평가는 동일한 잣대로 점수매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필자는 2차 '재인증 평가인증'이 시작될 무렵인 2007년도에 전남 지역의 평가인증을 통과한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평가인증 효과에 관한 연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향상이 있었다는 의견이었지만, 교사들의 잡무가 늘어나고, 초과근무가 한 달 이상 늘어나서 아이들의 보육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평가인증이 끝나고 나면 형식적인 사항들은 유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의견도 다수였으며,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는 우리나라 보육 현장의 실정을 무시한 정책이 빚어낸 결과의 단편일 것이다.
우리가 자라던 유년시절에는 장난감이나 인형이 거의 없었다. 종이 인형을 만들고, 흙과 돌맹이로 소꿉놀이를 하면서도 마냥 행복하게 웃으며 꿈을 키워 왔다. 장미 가시에 찔려 '아하~장미는 가시가 있어 조심해야겠구나~'라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됐으며,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을 스스로 깨닫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숲속에서 나뭇가지로 칼과 총을 만들어 노는 아이들도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친구를 때리면 아프고 위험하다'는 것도, '양보하고 배려해야 친구가 많다'는 것도 직접 체험하며, 심신이 튼튼한 아이들로 잘 자랄 수 있었다.
지금의 선진국의 '숲 유치원'은 자연 속에서 실컷 놀이를 즐기며 건강한 아이들로 성장하게 하고 있다. 위험한 것들과의 대처법도 배우고 또 깨달으며, 건강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평가인증국 직원들을 반드시 '숲유치원'으로 파견 보내야 할 듯 싶다. 물에 빠질까 무서워 아예 물가에 못 가게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어린이집 평가인증은 지나치게 '안전'을 위한 모든 걸 지표로 정해 수치로 규제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평가인증인가? 영유아를 위한 정책인가? 학부모를 위한 정책인가? 교사들을 위한 정책인가? 평가인증국과 관찰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함인가?
이즈음에서 '어린이집 평가인증'의 '허와 실'에 대해서 심도 있게 짚어 봐야할 것이다. 백년지대계의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가장 초석이 되는 보육 현장의 보다 나은 보호와 교육의 질적 성장을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만 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물가상승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5년 째 보육료를 동결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운영은 알아서 하라는 책임회피이며 일종의 방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단기간의 교육을 거쳐 보육과 교육을 단시간에 수치로 평가하는 막중한 지위를 가진 '현장관찰자'. 전국의 어린이집을 평가하러 다니는 이들에게 쏟아 붓는 비용의 절반만이라도 보육교사들의 초과수당이나 장기근속 수당 등의 처우개선에 투입한다면 우리나라의 보육의 질적서비스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게 될것이다.
'보육의 질은 곧 보육교사의 질에 달려있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보더라도, 진정으로 보육의 질을 위한다면 3D직종으로 하락해 버린 보육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최소한 국공립 유치원교사 급여 수준은 돼야 할 것이다. 일은 훨씬 고되게 많이 하면서도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보육교사들의 처우개선은 평가인증 보다도 앞서 시정되었어야 할 정책이다.
지금의 어린이집 평가인증이 지나친 국비 낭비는 아닌지, 보다 효율적인 비용 지출이 어떤 것인지, 정부나 국회, 정책 입안자는 보육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시행된 정책에 대한 철저한 현장 평가를 통해 과감하게 버리고, 자르고,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평가인증인지, 영유아와 학부모, 보육인들 모두가 WIN WIN하는 합리적인 정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