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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30(수)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고목의 새순처럼
19세기 최고의 시인 롱펠로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은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가 외롭게 숨졌고
두번째 부인은 부엌에서 화재 발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롱펠로의 시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임종을 앞둔 롱펠로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 숱한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당신의 작품에는
진한 인생의 향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롱펠로는 마당의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나무는 매우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단맛을 내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것은 늙은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기 때문입니다."
롱펠로에게 힘을 준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인생은 환경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고목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고목의 새순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 완전히 달라진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이 바로 인생의 새순이다.
- 좋은 글 중에서 -
인생 예찬
A Psalm of Life
- 헨리 W. 롱펠로우( Henry Wadsworth Longfellow) -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영혼의 침체는 죽음과 같은 것
보여지는 것들이 다는 아니다.
Tell me not, in mournful numbers,
Life is but and empty dream!
For the soul is dead that slumbers,
And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Life is real! Life is earnest!
And the grave is not its goal;
Dust thou art, to dust returnest,
Was not spoken of the soul.
우리가 가야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Not enjoyment, and not sorrow,
Is our destined end of way;
But to act, that each tomorrow
Find us further than today.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으니.
Art is long, and time is fleeting,
And our hearts, though stout and brave,
Still, like muffled drums, are geating
Funeral marches to the grave.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지에서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In the world's broad field of battle,
In the bivouac of life,
Be not like dumb,driven cattle!
Be a hero in the strife!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는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하나님이 있다.
Trust no future, howe'er pleasant!
Let the dead Past bury its dead!
Act,-act in the living Present!
Heart within, and God's o'erhead!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치느니,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룰 수 있고
우리가 떠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느니라.
Lives of great men all remind us
We can make our lives sublime,
And, deprting, leave behind us
Footprints on the sands of time;
그 발자취는 뒷 날에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
파선되어 버려진 형제가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지니.
Footprints, that perhaps another,
Sailling o'er life's solemn main,
A forlorn and shipwrecked brother,
Seeing shall take heart again.
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지 않으려나
어떤 운명인들 이겨낼 용기를 지니고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
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지 않으려나.
Let us, then, be up and doing,
With a heart for any fate,
Still achieving , still pursing,
Learn to labor and to wait.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Henry Wadsworth Longfellow)
롱렐로는 불길에서 부인을 구하려다 생긴 화상 흉터를 감추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고합니다.
19세기 미국의 대중적 시인으로 꼽힌다. 롱펠로는 1807년 2월 27일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유망한 변호사의 8명의 자녀 중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양부모 모두 명문가 출생이었으며 뉴잉글랜드 지방의 초기 정착자들의 후손이다.그는 학문에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그는 3세때 이미 글을 깨쳤으며 6세 때엔 라틴어에 아주 능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간 것은 14세 때였고, 22세때 모교인 보도인 대학의 교수로 위촉된다. 모교에서 6년간 근대어교수를 지냈다. 이때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 3년간 유학하고 돌아왔을 때인 1829년이었다. 일찍부터 시에 관심이 깊어 몇 편의 시와 수필을 지방잡지 등에 실었으며, 영국 낭만파시인인 W. 스콧의 경향에 크게 심취하였다. 그러나 그가 시인이 된 계기는 1835년의 두번째 유럽여행이었다. 이 때, 영국·스웨덴·네덜란드·독일 등 북유럽지역을 편력했으며, 그의 시의 기조가 된 낭만주의, 특히 독일낭만주의와 접하여 크게 영향을 받았다. 1836년,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어 어학교수로 18년 동안 있었다.
첫번째 아내 메어리스토어러 포터
1835년 유럽으로 건너가 여행을 하던 중 아내 메리는 유산 후 22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3년 후,롱펠로는 메리와 사랑에 영향을 받은 《천사의 발자국》(Footsteps of Angels)을 썼다. 첫번째 아내가 죽자 극심한 비탄에 잠겼고, 이듬해 귀국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거의 20년동안 교편을 잡는다. 하버드 대학에 재직중 롱펠로는 1843년 재혼을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내마저도 옷에 불이 붙어 타 죽자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정신적 위안을 얻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번역했는데, 이것은 그때까지 나온 가장 훌륭한 번역본 중 하나이며, 단테에 관한 그의 소네트 6편은 수작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여행기인 《바다 건너(1835)》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후 몇 년간 산문·시 등을 많이 썼으며, 첫 시집 《밤의 목소리(1839)》에 실린 <인생찬가>, <별빛>은 큰 호응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마을의 대장장이>를 수록한 《민요와 그 밖의 시(1841)》, 비련의 서정시집 《에반젤린(1847)》, 인디언 영웅시 《하이어워사의 노래(1855)》 등이 있다. 그의 시는 평이한 운율과 감상적인 면이 있으며, 시작(詩作)이라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을 대상으로 하던 그 시기에 개인적인 아픔과 극복하고 대중을 위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 혼
7년간 구애 끝에 결혼한 프랜시스 애플턴(1843년)
롱펠로는 보스턴의 부유한 사업가 네이선 애플턴의 딸, 프랜시스 파나 애플턴과의 교제를 시작했다. 이 교제 기간, 롱펠로는 종종 하버드에서 보스톤 브리지를 넘어 보스턴에 있는 애플턴 집까지 걸어 다녔다. 이 교량은 오래되어 1906년에 재가설되었고 롱펠로 브리지라고 불렸다. 7년 후에 파니와 결혼에 동의하고, 1843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네이트 애플턴은 두 사람에게 결혼 선물로 찰스 강이 내려다 보이는 "크레기 하우스"(Craigie House)를 구매했다. 이 집은 독립 전쟁 중에 조지 워싱턴 장군과 그 참모가 점령한 것이었다. 파니에 대한 롱펠로의 사랑은 1845년 10월에 쓴 그의 유일한 사랑의 시 소네트 〈밤의 별〉(The Evening Star)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엿볼 수 있다.
“오, 내 사랑하는 사랑스런 금성이여! O my beloved, my sweet Hesperus!
나의 사랑하는 아침, 저녁 별아! My morning and my evening star of love!)"
롱펠로와 그녀의 사이에서는 6명의 아이를 가졌다. 론구훼로과 웃기는 사이에 6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찰리 애플턴 (1844-1893), 어니스트 워즈워스 (1845-1921), 퍼니(1847-1848), 앨리스 메리 (1850-1928), 에디스 (1853-1915), 앤 알레그라 (1855-1934) 1847년 4월 7일에 파니의 출산 때 나단 쿨리 유지 박사는 파니에게 마취를 사용하였고, 이것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산부인과 마취가 사용된 사례였다. 1854년 하버드에서 은퇴하고 저술에 전념하기로 했다.1859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떻든 사랑하는 여인을 두번이나 잃은 롱펠로는 그가 겪은 인생의 아픔을 승화 시키고 또 인생의 교훈을 아름답게 남긴 참다운 작가이다.
대표작품들
소 설
《바다를 건너 : 바다를 건넌 순례자》 (Outre - Mer : A Pilgrimage Beyond the Sea, 1835)
《하이 페리온, 로맨스》(Hyperion, a Romance. 1839)
《스페인 학생》(The Spanish Student 3 막 극, 1843)
《카바나 : 이야기》(Kavanagh : A Tale. 1849)
《바닷가와 난롯가》(The Seaside and the Fireside. 1850)
《황금 전설》(The Golden Legend. 詩劇, 1851)
《뉴잉글랜드의 비극》 (The New England Tragedies. 1868)
《하느님의 비극》 (The Divine Tragedy. 1871)
《쿠리스투스》 (Christus. 신비, 1872)
《3권의 노래 책》 (Three Books of Song. 1872)
《아득한 목표》 (Ultima Thule. 1880)
시 집
《밤의 소리 : Voices of the Night : 발라드와 다른 시》(Ballads; and other Poems. 1839)
《발라드와 다른 시》(Ballads and Other Poems. 1842)
《노예시》(Poems on Slavery. 1842)
《브뤼헤의 종탑과 다른 시 (The Belfry of Bruges and Other Poems. 1845)
《에반젤린 : 아카디 이야기》(Evangeline : A Tale of Acadie. 서사시, 1847)
《하이아와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 서사시, 1855)
《마일스 스탄디슈의 교제와 다른 시》(The Courtship of Miles Standish and Other Poems .1858)
《가정시》 (Household Poems 1865)
《길가의 여인숙 이야기》(Tales of a Wayside Inn.시, 1863)
《루스의 꽃》 (Flower-de-Luce.시, 1867)
《그 후》(Aftermath.시, 1873)
《판도라의 가면과 다른 시》 (The Masque of Pandora and Other Poems. 1875)
《녹색 모스와 다른 시》 (Kéramos and Other Poems. 1878)
《항구에서》(In the Harbor.시, 1882)
번 역
《단테의 신곡》 (Dante's Divine Comedy, 1867)
《단 호르게 만리케의 코프라》 (Coplas de Don Jorge Manrique, 1833)
명시선집
《유럽 시인과 시》(Poets and Poetry of Europe, 1844)
《웨이프》(The Waif, 1845)
《시와 공간》(Poems of Places, 1874)
화요일 아침 아들녀석을 여의도 근무처에 내려 주곤 순복음교회 앞을 지나 여의도 광장 4거리로 나왔습니다. 출근길 차량들이 아주 많이 복잡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였습니다. 황사의 영향인 것 같았습니다. 신호등 4거리에는 곧 치루어질 4.13 총선을 앞드고 각 정당들이 내건 길거리 현수막들이 펄럭이는 걸 보니, 다소 짜증스러웠습니다. 각 정당들이 내건 프랭카드는 무질서한 도로와 더불어 무질서한 불법 현수막으로 정치후진국을 대변하는 것 같아 우울하게 만듭니다만, 우리 국민들이 이제는 눈을 똑바로 떠야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회사에 출근해 오늘 할 스케줄을 점검해 보았지요. 오늘 오전 회의에 참석치 않아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밀린 업무를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점심식사는 요즘 마음의 병을 많이 앓고 있는 김전무를 모시고 회사근처 문배동 소재의 유명한 "육칼국수 식당"으로 갔습니다. 점심시간 10분전인데도 사람들이 길에 줄을 서 있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아주 작고 허름한 식당이지만 손님들이 이렇게 붐비는 것은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기대가 컸습니다. 약 20여분만에 좌석에 앉을 수 있었는데, 역시 육칼수가 감칠 맛이 있었습니다. 김전무님을 위로 드리는 차원에서 얼픈 음식값을 계산했습니다. 아주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멧세지에 용산 성당 신부님께서 저녁에 혹시 시간이 있느냐?는 연락이 왔기에 즉각 응답을 했습니다. 일전에도 한번 만나고 싶다는 말씀이 있었으나 당시는 감기몸살이 심해서 연기를 했던 차였기에 지체없이 응답을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특별한 말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분명 약주를 할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어 오후 4시경 일찍 회사를 나와 집 승용차를 집에 두고 몸가짐을 단정히 한 후, 1711 시내버스로 저녁 5시 30분 용산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잔뜩 흐린 날씨였고 보슬비도 부슬 부슬 내렸습니다. 오랫만에 찾은 용산 성당 주변에는 봄소식을 전하는 개나리꽃이 활짝펴 아름다웠습니다.
주임신부님께 도착을 알리는 멧세지를 보내 드렸는데, 곧 성당 뜰로 나오시면서 "자네 차를 타자~!"라고 말씀을 하시기에 "신부님! 저는 오늘 오랫만에 신부님과 약주를 한잔 하고 싶어서 차를 놓고 왔습니다."라고 답변을 드리자 신부님께서는 비가 내리니깐 내차로 가자시며, 용문동으로 안내를 하셨습니다. 소탈하신 품성 그대로 그분이 안내한 식당은 양푼이 동태탕집이었습니다. 며칠전 한번 갔었는데 음식이 참 좋더라고 하시며, 음식점 쥔장과 아주 친분있게 인사를 나누시어 의아했지요. 그리고 오늘 무슨 중요한 말씀을 하실줄 알고 잔뜩 긴장했는데, 신부님께서는 그냥 보고싶고 궁금했다며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저만 괜히 크게 긴장했었나 봅니다. 어떻든 주임신부님께서 저를 불러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기에 마음껏 마셨습니다. 혹시 취중에 실언이라도 할까바 더욱 긴장했었지요. 흑~흑~흑~
이른 시간인 저녁 6시에부터 신부님을 모시고 겁도 없이 소주를 3병이나 마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차량을 갖고 오셨고 또 요즘 건강이 않좋으시기에 약주 몇잔만 받으셨지요. 잔뜩 긴장했기에 저만 무례하게 계속 술잔을 받았습니다. 처음 부임하셨을 때, 사목회장 직무대리를 몇개월 했을 때의 그 고마움을 표현하셨을 뿐인데, 제가 그냥 오버한 것이었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약 2시간 동안 취중 진담이라고 주임신부님께 '부활절 행사를 왜 안하셨느냐?"고 따지는 등 무례를 범한 것이 많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이제 용산 성당 신자가 아니라, 교적을 세검정으로 옮긴 "세검정 성당의 신자"가 되었기에 더 겁없는 짓을 했나 봅니다. 흑~흑~흑~
1711호 시내 버스로 북악터널 근처의 집으로 귀가하면서 행여 신부님의 사목에 분심을 드린 것이 아닌가 싶어 멧세지로 용서를 청하는 글을 몇차례 올렸는데, 신부님께서는 그저 기쁘고 즐거웠다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는 더욱 몸둘 바 몰랐습니다. 무사히 집에 잘 도착했지만, 필름이 잠시 끊켰는지 취중에 한 이야기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행여 신부님께 크게 결례를 드린 것 같아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용서를 청하는 멧세지 글을 보냈는데, 다음날 아침 읽어 보니깐, 맞춤법과 띄어쓰기까지 전혀 틀리지 않아서 다소 안도했습니다. 못난 저를 기억해 주신 우리 신부님께 더욱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떻든 오늘은 그 어느날 보다 가슴 벅찬 하루였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