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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시험을 참는 자 말씀/ 야고보서 1:1-27 요절/ 야고보서 1:12 | 2024. 9. 29 | |
야고보서 1강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가을에 보석과 같은 야고보서를 배우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야고보서는 공동서신에 속해 있으며, 로마서와 함께 우리의 신앙과 삶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하나님의 책입니다. 야고보서의 주제는 온전함입니다. 오늘 말씀은 시련 중에 있는 독자들에게 시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시련을 이길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욱 순수해지고 성숙해져서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은 야고보이며, 그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전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변화되었고 나중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혈육관계보다 영적 관계를 중시했습니다. 그는 이 서신을 특정한 개인이나 어떤 지역교회가 아니라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는 핍박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외국으로 흩어진 유대인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된 이방인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크리스찬들도 지리적으로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영적인 면에서 크리스찬들은 세상에 흩어져 있는 거룩한 순례자들이요 나그네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모여든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가지고 흩어져서 세상 한 복판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입니다.
2-8절에서 야보고 선생님은 간절하고도 뜨거운 마음으로 시험을 이기는 길에 대해서 알려 줍니다. 첫째,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당시 종교적 핍박과 정치적인 박해가 컸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을 보면 스데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가해졌습니다. 그때 신자들은 고향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모든 땅으로 흩어지는데 구브로, 안디옥까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초기 신자들이 겪고 있던 가장 큰 환난은 같은 동족인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종교적 핍박이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재산을 잃고 고향을 잃었습니다. 또한 신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제국으로부터 대대적인 박해를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할까요? 슬픔과 어두움과 원망과 불평과 무기력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험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잘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 했는가 자책하기도 하고 정죄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런 시험을 당하기까지 아무런 보호도 해주지 않으신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준 사람들을 미워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탓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시련이 빨리 사라지고 평화를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내 원하는대로 시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련은 계속 되고 나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가니 삶의 의욕과 희망을 잃고 사망권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그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험의 의미를 알 때 그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저자는 시험을 믿음의 시련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연단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 우리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납니다. 시험을 통하여 믿음의 불순물을 제거되고 순금과 같은 믿음을 덧입게 됩니다. 제련과정을 통하여 광석에서 순금을 얻을 수 있듯이 시험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순수해지고 온전하고 구비된 인격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3,4절에서 시련이 어떤 열매를 가져오는가에 대해서 명쾌하게 말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시험이 믿음의 시련이요 우리의 인격을 온전하게 하는 것임을 알 때 우리는 시험을 온전히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능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둘째,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 시험을 당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감당키 힘든 시련을 당하더라도 지혜가 있다면 잘 대처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머리와 경험을 믿고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큰 소리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혜를 구합니다.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하기도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경찰서를 찾아가서 고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넓으시고 깊으시고 사랑으로 충만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부모보다 더 뜨겁고 간절하여 좋은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고자 하십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하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색한 분이 아니시며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은혜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 구할 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의심이 들어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 나에게 정말 지혜를 주실까 의심의 바람이 불어서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의심이 섞인 기도, 반신반의하는 기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님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의심을 물리치고 오직 믿음으로 다시 말해 온전한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셋째, 두 마음을 품지 말라. 기도할 때 두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단 마음,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두 마음, 나뉜 마음, 이중적인 마음으로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왜 두 마음이 될까요? 세상가치관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처음 복음을 받았을 때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세상을 향하여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세속주의, 물질주의, 성공주의, 신비주의, 율법주의가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신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붙들었는데 이제는 선택지가 많아지면서 마음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면서도 세상에서도 방법을 찾기도 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의 방식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두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런 사람의 기도에 대해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해야 합니다. 내 속에 깊이 뿌리박힌 세상가치관의 잔재를 뽑아내야 합니다. 세속주의, 물질주의, 성공주의를 물리쳐야 합니다. 또한 순수복음을 해치는 이단적 가르침을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9-11절은 우리 신자들이 진정으로 자랑할 것들이 무엇인지 깨우쳐 줍니다. 교회 구성원 가운데 낮은 형제들도 있고 부한 자들도 있습니다. 낮은 형제는 가난한 신자들이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성도들입니다. 부한 자들은 세상에서 성공한 부자 신자들이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성도들입니다. 경제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고 사회적 지위도 다르니 교회가 하나 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여러 계층이 모여 있는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각자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를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나 같이 비천한 자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높여주신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한 자는 가진 것이 많아 자기 자랑하고 부와 권력과 성공을 자랑하기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고 맙니다. 부한 자도 그 행한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한 자는 무엇을 자랑해야 할까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자인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가, 주님의 겸손을 배우고 겸손의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람들의 종이 된 것을 자랑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12-18절은 시험을 참는 자의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앞에서 시험을 당할 때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시험의 때에 인내는 필수과목입니다. 시험이 빨리 끝난다면 인내가 요구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험은 내가 원하는 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내가 요구되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시험을 참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놀라운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순수케 하고 우리의 인격을 온전하게 하는 복과 더불어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누가 얻을 수 있습니까? 시험을 참는 자요 믿음의 인내를 하는 자요 끝까지 견디어 낸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살이에서 겪는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3절에 언급된 시험은 test가 아니라 tempt입니다. 대개의 경우 시험은 tempt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십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욕심을 이용하여 죄를 짓게 하고 사망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을 때 먼저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한 믿음을 덧입고 하나님께서 주신 훈련을 인내함으로 감당하며 예수님의 인격을 배우고 닮아가는 데 시간과 마음과 열정을 드려야 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사람들도 붙여주시고 좋은 환경도 예비하여 주십니다. 이 모든 은사를 더하여 주시는 근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피조물 가운데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18).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과 경륜을 따라 진리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시험으로 인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연단되고 더 좋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 각자가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진 첫 열매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19-27절은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첫째, 참된 경건은 말의 절제와 정화를 통해 나타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말만 많이 합니다. 그리고 기분 나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성질을 부립니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인데 소통이 되려면 먼저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 말을 귀 기울여서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지 않고 내 말만 많이 하고 가르치고자만 한다면 상대방은 마음을 닫게 되고, 아무리 좋은 말도 무용지물입니다. 들을 귀를 가져야 하며, 말은 절제하고 분노는 통제해야 합니다. 참된 신자는 말의 절제와 정화를 통해 상대방과 소통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참된 경건은 말씀을 행하는 삶을 통해 나타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고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고도 곧 잊어버리는 사람도 같습니다. 거울을 보고 얼굴에 먼지가 묻은 것을 알았다면 먼지를 닦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얼굴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거울이 왜 필요합니까?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린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이며,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습니다. 저자는 복음을 가리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자유를 줌과 동시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능력을 줍니다.
참된 경건은 무엇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부터 과부와 고아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경제적 고통이 큽니다. 스스로 살아가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또한 참된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면 이기적이 되고 자기 중심적이 되고 마음이 메마르게 됩니다. 세상을 본받고 세상방식대로 살게 되면 경건은 사라지고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없게 됩니다. 참된 경건은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를 지키고 순수신앙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셋째, 참된 경건은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참된 경건에 이르는 길은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는 데 있습니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고 그 복음의 말씀이 마음에 심겨져 있습니다. 복음의 씨가 심겨져 있다고 해서 저절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복음, 그 말씀을 온유함으로 새롭게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그 복음과 말씀을 묵상하고 그 거울에 나를 비추어봄으로 나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고 죄사함의 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빛을 나의 삶과 세상에 비추고 말씀을 이루는 삶, 사회적 약자들과 이웃들을 돌보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경건이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험이 있습니까? 물질의 시험, 인간관계의 시험, 믿지 않는 자녀로 인한 시험, 질병으로 인한 시험, 많은 수고를 했는데도 제자의 열매를 맺지 못한데서 오는 시험 등 많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고 매일 규칙적으로 간구함으로 어떤 시험도 견디어 내고 능히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