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크리스토프
작가 ; 로맹 롤랑(
초판 ; 1904-12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로맹 롤랑(Romain Rolland)프랑스의 작가 · 사상가 · 음악학자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은 1866년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니에브르 지방의 클람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여러 대에 걸친 그 지방의 공증인이었고, 어머니 쪽은 열렬한 가톨릭 신자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독일 음악에 대한 깊은 사랑을 배웠다. 그의 일가는 롤랑의 교육을 위해 파리로 이사했는데, 세기말의 물질주의적이고 퇴폐적인 이 대도시의 공기는 그를 매우 힘들게 했다.1889년에 고등사범대학을 졸업한 롤랑은 로마의 프랑스 학원으로 유학했다. 르네상스 예술에 둘러싸였던 이 체류 기간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니체와 바그너의 여자 친구였던 늙은 이상주의자 말비다와 알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롤랑은 모교의 교단에서 교편을 잡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음악사 강좌를 담당하게 되었고, 동시에 음악평론가와 극작가로서도 폭넓은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의 창작 활동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03년에 잡지 『레 카이에 드 라 켕잰』(‘반월수첩’이라는 뜻)에 발표한 『베토벤의 생애』였으며, 그 뒤를 이은 『장 크리스토프』(1904~1912)1) 의 집필과 간행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그는 스위스로 가서 잇달아 반전 논문을 발표했고, 그것은 『싸움을 넘어서』(1915), 『선구자들』(1924) 등에 수록되었다. 이렇게 해서 ‘뜻하지 않게’ 정치 문제 속으로 휘말려 든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국주의와 나치즘, 파시즘 등 새로운 형태의 전쟁과 계속 싸웠다. 또한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을 지지함과 동시에 인도의 깊은 종교적 영혼들에 공감을 표하는 등 그의 활동은 더욱 확대되었다.두 번째 대작인 『매혹된 영혼』(1922~1933)을 완성하고, 3년 뒤에 고향과 가까운 베즐레 마을로 돌아가 말년을 베토벤 연구로 완성하고 『페기』(1944)를 저술하면서 보낸 롤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4년 말에 베즐레에서 사망했다. 그의 일생은 소설과 희곡, 전기, 음악 평론 등 다양한 창작 활동뿐 아니라 항상 자기 시대에 성실하게 대처한 지성인의 빛나는 생애였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 문학계에서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로맹 롤랑의 삶과 글은 당대의 사회와 정치 및 정신 세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과 깊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구체적으로 프랑스 군부의 반유대주의를 폭로한 드레퓌스 사건, 파시즘에 대한 투쟁, 세계대전에 맞선 평화에의 추구 등과 같은 관련을 맺고 있다.
고등사범학교 시절 철학자 스피노자와 문학과 톨스토이의 글에 심취했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갔다. 가장 중요한 작품은 <<장 크리스토프>> 이다. 이 작품은 인간성을 존중하고 진리에 호소하는 내용을 감수성이 풍부한 문체에 담았는데, 주인공 장 크리스토프는 베토벤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을 깊이 사랑하였으며, 생활과 사상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주장한 이상주의자이다. 스스로 국제 적십자사의 포로 수용소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19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 운동의 선두에 나서는 등, 항상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였다. 정신적인 자서전 <내면의 여로>를 집필하다가, 1944년 파리 해방을 앞두고 죽었다.
작품으로 <장 크리스토프>가 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의 청년 로맹 롤랑이 대문호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쓴
다. 1888년의 일이다. 어차피 답장을 기대하고 보낸 편지는 아니었다. 편지에는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한 청년의 깊고 순수한 고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뜻밖에 답장이 왔다. 60대에 들어
선 거장은 생면부지의 청년이 보낸 편지에 다정한 답장을 해왔다. "참다운 작가의 조건은 인류를 사
랑하는 것"이라는 톨스토이의 답장에 감명을 받은 청년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문학의 길에
들어선 로맹 롤랑은 19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가져다준 작품은 '장 크
리스토프'였다. 거장의 삶을 동경했던 롤랑이 존경했던 또 한 명의 인물은 악성 베토벤이었다. 그는
베토벤에 대해 "그는 이제 승리자였다. 인간의 옹졸함을 정복한 승리자였고, 자기 자신의 운명과 비
애를 극복해낸 승리자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베토벤이 장 크리스토프의 모델이다.
라인 강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장 크리스토프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난과 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에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풍부한 상상력과 강한 생명력을 가진 크리스토프는 어느 날 할아버지에 의해 음악적 재능이 발굴된다. 모두 10권으로 이루어진 이 장대한 서사시적 대하소설은 1904년부터 12년에 걸쳐 잡지 『레 카이에 드 라 켕잰』에 발표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유럽의 예술과 문화, 정치,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이 작품에는 작가의 웅대한 이상주의가 반영되어 있으며, 일부 사람들로부터는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많은 독자들로부터 열광적인 공감을 얻으며 크게 환영받았다.
장 크리스토프라고 하는 이 기묘한 인물은 자연의 근원적인 힘 그 자체와도 같은 생명력을 지닌 사람이다.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을 ‘오늘날의 세계에 사는 베토벤과 같은 인물’로 만들겠다고 어떤 편지에 쓴 적이 있는데, 어린 시절의 크리스토프에 관해 ‘같이 놀 친구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 서로 이해하며 지내지 못했다. 마을 장난꾸러기들은 크리스토프와 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것은 크리스토프가 놀이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바람에 항상 너무 세게 때리기 때문이었다’라고 적고 있다.모든 사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부정도 용서하지 못해 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에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이 인물의 성격은 평생 변함이 없었다.인생이 자기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 베토벤과 크리스토프는 서로 많이 닮았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렇게 되었다.‘이렇게 해서 크리스토프는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될 수 있는 식의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나 그가 내면에서 비추는 빛의 잔영(殘影)이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아 있었다.’이런 ‘내면에서 비추는 빛의 잔영’은 그가 걸어간 이 작품의 모든 길마다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완결되었을 때, 프랑스의 작가 장 리셜 블로크는 “‘장 크리스토프가 죽었다!’는 소식이 이 세상에 전해진 뒤 몸을 떨면서 울었다고 고백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라고 쓰기도 했다.
롤랑은 작품 속에서 베토벤의 삶에 자신의 삶을 절묘하게 오버랩시키면서 소설을 이끌어간다. 롤랑 역시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의 지식인이었다. 대학에서 예술사를 강의하면서 글을 쓰던 그는 인문학적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해 평화주의를 부르짖었고,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드레퓌스 사건 때는 드레퓌스를 강렬하게 옹호했다. 이후 톨스토이와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지지하고 나치즘과 파시즘을 비난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장 크리스토프처럼 스위스에서 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쓰기도 했던 그는 열정적인 예술지상주의자였다. 그가 예술에 대해 바친 헌사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태양은 도덕적이지도 부도덕하지도 않다. 그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어둠을 정복할 뿐이다. 예술도 그와 마찬가지다."
<줄거리>
궁정 악단의 지휘자인 할아버지와 궁정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은 장 크리스토프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신동이었다.
조부가 별세하고 주정뱅이 아버지 마져 실직을 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피아노 가정교사,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가정의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가난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남과 타협할 줄 모르는 괴퍅한 성격 또한 그의 삶을 더욱 피곤하게 한 요소였을 것이다. 자유 분방한 예술적 기질이 그를 외톨이로 만들고 만다. 예술에 대한 집념으로 파리행을 원하지만 병약하고 가난한 어머니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어느 술집에서 군인들과 집단 패싸움을 벌려 체포될 운명에 처하자 국경을 넘어 파리로 도피를 한다.
파리에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가 어렵사리 후원자를 얻지만 파리 사회와 음악계의 부패를 보고 좌절한다. 그 때 프랑스 시인 올리비에를 만나 예술적 교분을 나누며 파리에 정착할 수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강인한 생명력과 열정을 가졌다면 올리비에는 조용한 지성을 지녔다. 그들의 만남은 조화를 이루며 단단한 우정으로 맺어진다. 올리비에가 결혼한다. 장크리스토프는 그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켜보면서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한다.
파리에서는 사회의 빈곤 문제가 부각되더니만 마침내 노동운동을 기반으로한 혁명이 일어난다. 그 와중에 올리비에가 사망한다. 크리스토프는 경관을 죽이고 스위스로 도망을 간다.
....삶은 시간을 타고 흘러간다. 육체와 영혼은 냇물처럼 흘러간다. 세월은 흘어서 나무에 연륜을 만든다. 형상을 가진 모든 세계는 소모해 가고 쇄신해 간다. ....
장 크리스토프의 작품은 온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진실과 예술을 추구하여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언제나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의 힘, 즉 근원적인 생명력, 신의 사명을 지고 가는 사명감에서 오는 인내력, 그리고 항상 앞서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창조력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토프는 어떤 경우든 신념을 가지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힘의 필요를 느꼈다. 그 힘은 근원적인 생명의 힘이지만 그것은 더욱 의지의 힘이기도 하다. 수없이 쓰러지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지의 힘이기도 하다. 진실과 사랑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힘을 갈망하고 힘을 분발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뒤집어서 말하면 이상이 나에게 그 힘을 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스위스 어느 거리에서 그 옛날 스토뱅가에서 보았던 이탈리아 소녀 그라치아를 만난다. 그녀는 이제 아름다운 백작 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달전 남편이 죽어 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치아를 만난 후 크리스토프는 사랑을 느낀다. 결핵을 않던 아들이 죽자 그라치아도 병이 들어 죽고 만다. 크리스토프는 올리비에( 프랑스어로 '지성'/ '지혜'를 뜻하는 단어)를 통해 예술을 배웠고 그라치아(이탈리아어로 '신의 사랑'을 뜻하는 단어)를 통해 사랑을 배웠다. 이제 그는 예술은 물론 인간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는 그라치아의 딸과 올리비에의 아들에게 친 부모와 같은 사랑을 쏟는다. 그리고 두 젊은이들은 사랑을 느껴 결혼을 한다. 그는 파리로 돌아간 뒤 예지와 감정이 조화를 이룬 작품을 작곡하고 영혼의 평화르 누리면서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 전기 작가 답게 창조된 한 인물의 파란만장한 삶을 밀도 있게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