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
ㅡ김경주.
내 가슴엔 문신이 하나 있어
DNR(do not resuscitate)이라는 글씨야
의학용어로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는 뜻이야
내 심장이 멈추면 더 이상 날 살려 주지 말아 줘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이제 그만 해줘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화장을 하고 자곤 해
마지막 화장일지 모르기 때문에 곱게 하고 싶어
벽에 돌아누워 화장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눈물을 흘려
어느덧 내 머리칼은 흰 폭설로 하얗게 변했어
이불 속에 누워서 삶이 가여워서 나는 웃곤 해
다시 아침이 온다면 살아서 웃음이 날 것 같아
열심히 삶을 속여도 늙는 건 못 막아
열심히 삶을 속여도 늙는 건 못 막아
밤이면 발이 차가워지고 별이 차가워지고 눈물이 차가워지곤 해
내 쇄골은 빗물이 가득 고일만큼 파였어
심장이 멈추어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다면 행운이야
가장 인간다운 자연사라고 하니까
방구석에서 지내다가 죽어서 썩어 발견되긴 싫어
내 앞가슴의 문신을 읽어 줘
DNR do not resuscitate
열심히 삶을 속여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난 이불 속에 누워서 삶이 가여워서 웃곤 해
아침이 온다면 살아서 웃음이 날 것 같아
/<문장웹진> 201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