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소감 - 최영미
내가 정말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멀쩡한 종이를 더럽혀야 하는
네기 장밀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신문 月評 스크랩하여
비평가 한마디에 죽고 사는
내가 정말 썩은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안 해도 뭔가 하는 중인
건달 면허증을 땄단 말인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지리멸렬한 고통
내게 칼을 겨눈 그들은
내 영혼의 한 터럭도 건드리지 못했어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리멸렬한 고통이 제일 참기 힘들지
봄날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목련
왜 피어나야 하는지도 모르고
겨울을 밀어내며
잎은 꽃이 된다
너의 커다란 손이
닿기도 전에 나는 터졌지
네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며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음악을 틀고----
그만해.
태양도 식어.
너와 나의
하얀 목련이 토해내는
다시 오지 않는 것들
거룩한 문학
그가 아무리 자유와 평등을 외쳐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짓밟는다면
그의 자유는 공허한 말잔치
그가 아무리 인류를 노래해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비하하면
그의 휴머니즘은 가짜다
휴머니즘을 포장해 팔아먹는 문학은 이제 그만!
-2019년 이미출판사 刊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시집에서 옮김
-약력
서울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이수문학상 수상
시집/서른잔치는 끝났다, 돼지들에게, 이미 뜨거운 것들 외
소설/흉터와 무뇌 외 다수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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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소감 외 - 최영미
안병석
추천 2
조회 32
25.02.10 08:2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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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솔함이 묻어 나오네요.
잘 잘 지내시는지~~~ 최영미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