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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와 ‘거짓말’은 어떻게 다를까.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진리’여부에 달려 있다. ‘거짓말’은 적어도 ‘진리’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으나 ‘개소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또 ‘개소리’는 개소리이기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거짓말>이라는 에세이를 들어 우리가 흔히 ‘거짓말’이라고 칭하는 것의 대부분이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진짜 거짓말’이 아니고 ‘오직 거짓말과 기만을 행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하는 거짓말’이라고 세분화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 하는 말은 ‘거짓말’에도 속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진리’와 ‘사실’에는 관심 없는,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을 목적으로 되는대로 뱉어내는 소리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야당이 탄핵을 통과시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나란데 종북 좌파들에게 넘겨주게 생겼다’ ‘촛불을 꺼버리고 헌정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 반국가 세력이 나라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등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마구 주장하는 개소리 행위에 과도하게 탐닉하다 보면, 사태의 진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상적 습관은 약화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같은 게임 속에서 반대편으로 활동한다. 그들 각각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사실에 반응한다. 비록 한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따르고, 다른 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저항하며 그 요구에 맞추기를 거부하지만 말이다. 개소리쟁이는 이러한 요구를 모두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 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 본문에서 -
최근 조대환 민정수석과 채명성 대통령 변호인단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각각 그 직책을 맡기 전에는 자신의 개인 SNS에 대통령의 탄핵과 뇌물죄에 대해 인정했던 사람들이 단 몇 주 만에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입장 중에 어떤 것이 진짜 자신의 생각일까. 말이 너무 쉬운 사회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의 말’ 들이 난무하게 됐을까 그리고도 그것에 대해 부끄러움조차 모르게 됐을까. 과연 우리 사회에서 ‘개소리’는 단지 ‘개소리’라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국가란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개인이 국가를 위해서 뭔가를 희생할 때는 국가의 약속을 담보로 한다. 그런데 그 국가가,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개소리’를 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면 어떤 국민들이 국가라는 대의를 위해 어떤 희생을 하려고 할까. 결국 국민들은 이런 세상에서 약속을 지키고 사는 것이, 정직하게 사는 것이 바보라는 생각으로 과정을 무시한 결과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다. 미래도 공동체도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 ‘개소리’의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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