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요한계시록 2장 8-11절)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와 더불어 유이하게 칭찬만
받은 교회입니다.
과연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칭찬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서머나’라는 지역은 현재 터키의
‘이즈미르’라는 지역입니다.
지금도 터키의 3대 도시 중 하나인 만큼
예전부터 규모가 상당했었습니다.
특히 요한이 계시록을 쓰던
당시에 서머나는 항구도시로 유명했습니다.
항구도시의 특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니
종교도 많았습니다.
특히 우상 숭배가 만연했고,
황제를 숭배하는 도시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황제 숭배가 강요되던 도시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겐 큰 어려움이 있었겠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핍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교회를 향해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8절을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우리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
편지하시며 ‘처음이며 마지막이요’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역사의 주관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시고
마지막 심판주가 되신다는 말이죠.
또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이 말씀이 왜 중요할까요?
다음 9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9절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여기 보면 주님이 아신다고
하는 게 있어요.
뭔가요?
‘환난과 궁핍’입니다.
환난이라는 말은 원어로
‘압박을 받다’, ‘큰 바위로 짓누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당시 서머나 교인들은 신앙 때문에
엄청난 핍박을 받아야 했어요.
날마다 큰 바위로 짓누르는 것 같은
아픔 속에 살아야 했죠.
‘궁핍’이란 단어는
‘가난’이란 말과 같습니다.
서머나라는 도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곳이었지만,
신앙인들은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받은 핍박은 없어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님은
그러지 않으셨다고 해요.
주보에 실린 감사봉헌을 보면 아시겠지만,
어릴 적부터 주일성수를 위해
눈치를 이겨가며 살아오셨다고 해요.
군대에서는 고참에게 주먹과 몽둥이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교회를 다니셨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며 때론
핍박도 받으시죠.
이보다 더 큰 환난과 궁핍을
경험했을 분들이
바로 서머나 교인들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이 모든 상황을
아신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을
주님이 아신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아무도 모르게 흘렸던
그 눈물을 주님은 아신데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집안에서 눈치 보며
살던 그 순간을 주님은 아신답니다.
예수쟁이라며 욕 먹던 그 날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 시간 그 주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34편 18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시편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마음이 상한’이란 표현이 영어로 보면
‘broken heart’입니다.
조금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라
깨진 것을 의미하죠.
마음이 깨져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러면 분노와 원망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죠.
지금도 그 과정 속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깨진 마음을 가진 자를
가까이 한다”
또한 주님은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어요.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새번역 성경에서는
‘영혼이 짓밟힌 사람’이라고 번역했어요.
경쟁사회 속에 영혼이 짓밟힌 분 계십니까?
주님은 그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어요.
그 주님께서 오늘 당신을 살리실 것입니다.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상한 마음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좋은 조건이나 좋은 환경에서만
좋은 신앙이 자라는 게 아닙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요셉이나 다윗,
다니엘처럼 인내와 소망을
이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심령이 깨진 상태라면
주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서마나 교회의 실상은
거지꼴 아니었겠어요?
그러나 주님 보실 때는 달랐던 거예요.
주님이 보실 때 서머나 교회는
부요했습니다.
이건 역설적 진리입니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지만,
믿음으로는 부자였던 거죠.
이와 관련하여
야고보서 2장 5절을 읽어볼까요?
야고보서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답니다.
예수님께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마 5:3)
예전에 돈이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돈을 쓸 곳을 찾다가
매일 파티를 열어서
먹고 즐기기에 바빴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서 놀다보니
구원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 집 앞에 거지 한 명이 살았습니다.
이름은 나사로였죠.
비록 그는 궁핍한 삶을 살았고,
몸은 병에 걸려 죽어갔지만
믿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죽었는데
부자는 지옥에 가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여러분, 이 둘 중에 누가 더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거지 나사로죠.
이는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유명했지만
성경에 이름하나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거지는 세상에서 무명했지만,
성경엔 그 이름 석자가 기록되었어요.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여,
우리도 그 은혜로 천국에
우리 이름 석자가 기록되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이 땅에서 힘들고
지쳐도 낙심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어느 CCM 가사를 기억하십시오.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 손을 잡고 이 땅에서 우리는
하늘에 상급을 쌓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부를 얻기 위해 불의를 일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고
주님을 따라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며
진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지혜로운 자가 되길
축복합니다.
다시 서머나 교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 10절을 읽어봅시다.
요한계시록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마귀가 가장 잘하는 공격이
뭔지 아십니까?
‘두려움’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볼까요?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믿음의 조상’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까지 왔어요.
그것도 75세 나이에 말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가는 길에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겠어요?
그러나 그는 꿋꿋이 걷고
또 걸어서 가나안에 도착했어요.
바로 이곳에서 인생의 위기를 만납니다.
‘기근’이었어요.
기근은 단순히 비가 내리지 않아서
식물이 자라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아요.
한 해 농사를 망치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리고 그 식물을 거두려면
또 시간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2년 혹은 3년이란 기간동안
먹을 게 없다는 의미죠.
아브라함은 고민 끝에
애굽으로 가기로 합니다.
약속의 땅을 벗어나고 말죠.
그리고 애굽에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왜 그랬죠?
아브라함이 이런 말을 해요.
창세기 12:11-12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가 너무 예뻐서
애굽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보면 “내가 알기에”란 단어를 쓰죠?
이건 자기 중심적인 해석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려움 때문이었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겁을 먹고 보니
어리석을 선택을 하게 됩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아내를 바로 왕에게 넘깁니다.
여러분,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도
사탄이 던져 놓은 두려움에 빠지면
실수 할 수 있어요.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할 때
두려워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경계해야 합니다.
서머나교회를 향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신실하게 믿어도
고난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살아가더라도 기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도
이런 기근이 찾아온답니다.
십 일 동안 환난을 받는다고 했어요.
십 일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건
고난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죠.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고난은 잠깐입니다.
반면 우리가 맞는 영광의 날은 영원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고난은 잠깐입니다.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겁니다.
바울은 이 확신 속에서
로마서 8장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했습니다.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의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이 확신으로 똘똘 뭉친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이 확신 위에 선 가정은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 함께 외쳐봅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을 수 없기에
나는 망하지 않는다!
나는 망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주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승리의 관’이며
‘영생’을 상징합니다.
더불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이라면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첫 번째 사망입니다.
이후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육체로 살 때
무엇에 충성했는지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충성하는 것은 구원받는 자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비록 인생을 살다보면
충성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되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게 바로 ‘성화’입니다.
성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죠.
예수님도 성육신 사역 속에서 십자가라는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이게 너무 힘들 것을 아셨기에
“이 잔을 옮겨주소서.”라고 간구하셨죠.
그럼에도 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셨습니다.
끝까지 사명을 위해 ‘충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우리들은
어떠해야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길에 충성해야 할 줄 믿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한다면
충성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진리를 지키기 위해
힘쓰길 바랍니다.
아버지로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십시오.
정직과 거룩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어머니로서 기도의 본을 보여주십시오.
저는 이런 면에서 저희 부모님께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봉천동 단칸방에서
네 명의 식구가 함께 살았습니다.
밤이면 쥐새끼가 천장 위를 기어다녔고,
겨울이면 연탄을 떼며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어느 때는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요.
달동네를 벗어나 꿈에 그리던
이사를 해서 간 곳이
반지하였습니다.
저는 그곳도 행복했어요.
그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가계 빚도 있고,
사춘기 두 아들이
방황과 반항을 일삼았지만,
부모님은 가정을 지켜주셨거든요.
힘든 일이 생기면 함께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충성하셨던 것 같아요.
교회 일에도 충성하셨죠.
교회가 건축한다고 하자
성도들이 많이 빠져 나갔거든요.
그때 교회를 든든하게 지키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참 충성된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믿음으로 각자의 삶에
충성하길 바랍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교회에서 말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찬송가 369장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입니다.
여기 2절 가사가 마음에 와닿아
여러 번 불렀습니다.
함께 불러 볼까요?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 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실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할 때입니다.
주님께 우리 자신의 드리시며
충성된 자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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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영상 및 설교문
2024년 12월 8일 함요셉 목사님의 주일 예배 설교문입니다
사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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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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