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암 옆에 흘러내리는 샘물을 받아 만든 지름2m 깊이1m의 작은 연못이 지나치는 사람에게 속살까지 보여 주려 맑은 물을 연신 걸러내고 있었다.
서너 달 전이었다.
아담한 연못 위에 연꽃은 두개가 피었는데 손바닥만한 비단잉어는 한 마리뿐이었다.
내 눈에 속세를 떠나 깊은 산중에 홀로 사는 스님처럼 물고기가 쓸쓸해 보였다.
필시 적적한 스님이 친구 삼아 한 마리만 사 왔을 것이라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료하게 그저 수초와 연꽃사이를 오가며 홀로 노니는 한 마리의 비단잉어를 볼 때마다 나의 뇌리는 몇 해 전 극락으로 홀연히 떠난 수안스님을 떠올렸다.
그분은 화가인데도 상 하로 엮은 장군죽비라는 저서를 한 권 남겼다.
나는 뜻하지 않게 그분이 그린 한 마리의 학을 소장하고 있었다. 홀로 서있는 학을 마주할 때마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몹시 외로울 것 같이 보여 한 마리를 더 그려 넣고 싶었다.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어 그저 한 마리의 학을 바라보며 산사에 홀로 묻혀 고독을 감내하며 정진하고 있는 스님을 연상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수안스님이 그린 학은 내가 도무지 친구를 만들어 줄 수가 없지만 수구암 연못에 홀로 사는 비단잉어는 내가 노력하면 친구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불현듯 가지게 되었다.
연못 앞에서 나는 기어이 수족관을 찾아내어 비단잉어의 짝을 만들어 줄 것이라 다짐했다.
나는 먼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광탄시장을 가 보았다.
이곳 저곳을 한동안 둘러보았어도 비단잉어를 키우고 있는 수족관은 내 눈에 좀처럼 띄지 않았다.
길가 건강원 다라속에는 물고기가 물 반 고기 반이라도 비단잉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며칠 전 나는 방향을 틀어 원당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수족관을 찾기로 하였다.
원당 마트 앞 미화점 수선공은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없었고 숙녀화를 고치러 온 손님만 더위를 식히려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수선공을 기다리고있었다.
저 만치 길가에서 등줄기를 흥건히 적시며 분갈이를 하고 있는 꽃가게 주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수족관을 물어 보았다.
그는 시큰둥해 하며 머리를 옆으로 저었다.
나는 다시 길을 건너 상가를 두리번 거렸다.
열쇠 수리점을 지나치면서 젊은 수리공에게 수족관을 물었다.
그가 열쇠를 갈고 있던 줄로 큰길을 가리키며 길 건너 두개의 불럭을 지나가면 상가가 나오는데 구석진 곳에 수족관이 있을 거라했다.
나는 여러 개의 건물을 뒤로 하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후미진 곳에서 가게를 겨우 찾았으나 수족관이라는 이름의 간판도 없었다.
이미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폐업을 하다 시피 한 점포가 상가와 상가 틈사이 빈 공간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몇 개의 목마른 어항 바닥에는 진흙이 손금처럼 선명하게 갈라져 있었다.
나는 장사를 안 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조리며 비좁은 골목 안을 기웃거렸다. 마침 등이 휜 노인이 호수로 바닥에 물을 뿌리며 정오의 후끈한 열기를 달래고 있었다.
수족관 주인을 마주 대하니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웬지 고맙고 반갑기 그지 없었다.
음침한 곳에서 그가 한 개의 수족관만 가동시켜 물고기를 살리고 있었다.
가게가 누추한 건 나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설사 폐업을 했다 해도 나는 그저 수구암 비단잉어와 친구가 될 짝을 찾아 주기만 하면 나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다.
애타는 내 눈에 짙은 분홍색 바탕에 등줄기가 하얗게 가로 지른, 돼지로 논하자면 햄브셔 같이 검정색 등줄기를 가로 질러 하얀색이 선명하게 그어진, 무늬가 참신한 비단잉어 한 마리가 내 눈을 사로 잡았다.
나는 급히 노인에게 가격을 물어보며 암 수에 대해 질문했다.
노인이 답변하길 숫놈은 몸매가 미끈하고 암놈은 통통하다는 거였다.
동병상련이라고 나는 스님이 사다 넣은 수구암 연못에 잉어는 분명 숫놈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이제 내가 암놈만 사가면 금상첨화라 여겼던 것이다.
나는 주인이 요구한 금액을 흔쾌히 지불하고 저 멀리 도서관까지 걸어가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감각적으로 골목길을 찾아 들뜨게 끌고 왔다.
그사이 노인이 산소를 주입해 봉지가 탱탱한 잉어를 받아 차 안에 실었다.
얼핏보니 봉지 속에 비쳐진 잉어는 엄청 커 보였다.
나는 관속 같이 비좁은 공간에서 헐떡거릴 물고기를 걱정하며 허둥지둥 차를 몰아 산사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뒤 트렁크를 열어 비치해 두었던 노란색 비닐봉지 한 개를 꺼내 들었다.
민감한 스님들 눈에 물고기가 띄지 않게 한겹 더 싼 후 수구암을 향해 달렸다.
스님들이 속세를 떠나 조신히 불도를 닦고 있는 비단잉어를 일거에 파개시키려 내가 짝을 맞춰 주려 한다는 눈총과 질책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수구암 가파른 언덕길을 급하게 뛰어오르니 숨이 차 올랐다.
허리를 굽혀 호흡을 가다듬고 한참을 걸어서 수구암에 도달했다.
마침 암자에도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뿐 숨을 고르며 비닐봉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내었다.
비단잉어는 입을 벙긋거리며 생존해 있었다. 행여 다칠새라 물고기의 얼굴을 매만지며 살며시 연못에 풀어줬다.
영문도 모르는 숫놈은 눈을 검벅거리며 수면 위 연꽃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다.
내가 힘들여 사온 비단잉어는 안심이라도 한듯 실크 같이 연한 수초에 몸을 감추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가끔씩 살아있음을 꼬리를 흔들어 지상에 알렸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수구암에서 도라도 터득한 스님처럼 손을 씻고 속세로 향했다.
연못에서
한눈을 팔다가 호숫가에 빠진
흰 햇살이 비단잉어를 찾아 헤매는
내 그림자에 가려 추운지 몸을 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암자에는
비단잉어 두 마리가 살았었다
내가 사다가 넣은 한 마리는 경전을
50000/1로 축소시켜 한 달만에 떼고
용이 되어서 승천을 하였다
어젯 밤 그 뒤를 이어 한 마리마저
사라진 것이다 스님이 곡할 일이다
혼자가 된 호수는 물말아 먹다가
남긴 밥 알처럼 멀건히 떠있었다
*경기 REN에 원고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