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놀골?답곡(畓穀(?양전(羊田4)?송동(松洞)
마을 뒤에 못이 있고 논이 많은 골짜기라 하여 '논골'이라 불리며 또 이 마을에 양을 많이 사육하여 '양전'이라 하였다. 그리고 소나무가 많이 있다고 하여 '송동'이라고도 한다. 흥해 배씨(興海裵氏), 용궁전씨(龍宮全氏) 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1983년에 안동대학교가 이 마을 뒤에 자리잡고 있어 대학촌으로 변모되었다.
137. 보나리?보나루?포진(浦津)
이 마을은 안동대학교의 동남쪽에 잇다. 약 350 년 전 강릉유씨(江陵劉氏), 안동권씨, 평해황씨(平海黃氏), 흥해배씨 4성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부산에서 소금배가 들어와서 소금을 내리고 양곡을 싣고 가는 나푸터가 있었던 곳이었기 대문에 '포진'이라 하였다고 한다.
--기우정: 포진에 있는 우물이다. 가뭄이 심할 대 마을 내의 유지가 기우정에 음식을 차려 우물에 넣어 정성이 지극하면 음식이 없어지면서 비가 내리고, 부족하면 음식이 우물 밖으로 흘러나오고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은 간이상수도 집수정(集水井)으로 사용하고 있다.
138. 신부락
이 마을은 송천초등학교가 개교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신부락'이라 한다.
139. 새뫁
새뫁은 갑술년(1934) 대홍수 때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송천동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주로 김해김씨, 진천송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140. 선어대(仙魚臺?선녀대(仙女臺)
옛날 선녀(仙女)가 내려 와서 놀았다고 하여 '선녀대'라고 했다고 하며, 그 뒤 깊은 소(沼)에 고기가 많이 있다고 하여 '선어대'라 했다 하기도 한다. 또 신선(神仙)이 이곳에서 고기를 낚았다고 하여 유래된 '선어대'란 바위기 있기 때문에 불려진 마을이라고도 한다.
141. 원당골
솔뫼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당이 있어 '원당골'이라 한다. 한성부 자윤을 지낸 송서인(宋瑞 )선생의 재사가 있다고 한다.
142. 천변(川邊)
이 마을은 선어대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위치가 강가에 있어서 '천변'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143. 하리(下里)?송하(松下)
1450년 경 반변천이 극심한 홍수로 인하여 물길이 지금의 반변천으로 흘렀다. 당시의 강변이 퇴적되어 농토가 조성되면서 마을로 이루어졌다. 송천동의 자연마을 중 제일 이래에 위치하였다 하여 '하리'라 한다.
144. 영락(嶺洛)?마지9磨芝)
조선조 숙종 때 이용우(李龍右) 선생이 한양에서 내려와 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영락'이라 하였다. 그 후 이용우(李龍右) 선생의 삼대손(三代孫) 이종협(李鍾協) 선생이 '마지'라 개칭하였다고 구전되고 있으며 '마지락골'이라고도 한다.
145. 건지기골?건직(乾直)
이 마을은 마지락골 입구의 왼쪽 편에 위치하고 있다. 가뭄으로 인하여 농작물 수확이 거의 없고 메마르다고 하여 '건직'이라 불렀다고 한다.